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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날, 수요일은 다 먹는 날

급식에 충성하는 자, "給食, 忠"

by 웅숭깊은 라쌤

수다날, 수요일은 다 먹는 날

: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수다날’. ‘수요일엔 다 먹는 날’이라고 하여 잔반 없는 날을 만들기 위해 재정된 특별한 날이다. 음식물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고 탄소 중립을 실천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살짝 의미가 전도되어 ‘맛있는 반찬 나오는 날’ 정도로 여겨지는 듯하다. 잔반이 생성되지 않도록 일부러 학생들의 선호도가 높은 식단으로 구성되는 측면이 있다.


모 학급에선 이러한 행사의 목적을 온전히 실천하기 위한 나름의 학급 이벤트를 실시했다. 담임 선생님은 생맥주를 따를 때 피어나는 거품처럼 한없이 부드럽고 새하얀 사람이었다. 그의 주도하에 이뤄진 이 이벤트는 ‘급식을 다 먹고 자기 식판 사진 찍어 단체대화방에 올리기’의 시스템이었는데, 음식을 남기지 않은 학생들의 포인트를 누적하여 학기 말에 선물을 지급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환경도 보호하고 건강도 지키는, 개인적으론 꽤 신선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타 학급 교사도 있었으니, 자기 반 학생들이 찾아와서 불평을 터뜨린다는 것이었다. ‘우리도 이런 이벤트를 하자’란 게 아니라, ‘우리도 점심시간에 핸드폰 가지고 있게 해주세요’가 핵심이었고, 여기서 파생되어 결국 ‘점심시간 내내 아이들이 폰만 붙잡고 있지 않겠냐’라는 문제 제기로 이어졌다.

여기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런가를 함부로 판단할 순 없다. 어떤 접근법이냐에 따라 해석은 달라질 수 있고, 교사마다 지닌 교육관이 다르기에 어느 정도의 존중도 필요하다.


17.jpg 글과 이미지는 전혀 관련이 없으나 하여간에 제가 먹는 급식이긴 합니다


집단 내에서, 특히 학교에서 교사들 사이에서 이러한 유형의 갈등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비일비재하다. 대표적인 것이 1박 2일로 떠나는 학급 여행. 아이들은 당연히 좋아할 수밖에 없는 행사다. 청소년기, 부모님의 그늘에서 벗어나 ‘합법적으로’ 친구들과 밤을 지새울 수 있다는 건 쉽지 않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아마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선물과도 같은 순간이 되겠지? 하지만, 이걸 위해 준비하는 과정은 좀처럼 쉽지 않다. 학급 담임 교사는 숙소와 교통편을 탐색 및 예약해야 하고 이에 대한 사전 답사는 필수다. 각종 관련 서류를 준비하고 이를 기반으로 학부모 운영위원회의 안건에 상정하여 위원들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만큼 아이들을 위한 엄청난 정성이 더해져야 하며 교사 개인의 시간을 일정 부분 포기해야 가능하다는 것.

그런데 사회적으로 안전 문제가 크게 부각된 뒤로 학교 외부 행사는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수련회나 수학여행 등의 행사가 학사일정에서 아예 지워진 학교도 굉장히 많다. 그럼에도 담임교사가 굳이 학급 단위의 여행을 추진한다는 게 다른 교사에겐 곱지 않은 시선으로 비칠 수 있다. 더불어 꼭 학급 여행만이 학생들을 위한 유일한 선택지인 것도 아니다. 그 노력과 공을 학생 상담으로 돌릴 수도 있고, 수업의 질적 성장을 추구하기 위한 준비의 시간으로 삼을 수도 있는 거니까. 무엇보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전적으로 옳은 일이어도, 그래서 그걸 동참하는 게 당연히 옳다고 생각되더라도, 생각지 못한 부정적인 변수가 생길 수 있는 데다가 그것이 여건이 안 되어 실행할 수 없는 혹은 능력적인 한계를 지닌 이들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역시나, 일류가 되는 길은 참으로 험난하다. 애쓰고 노력해도 비난이 따르는가 하면 잘못을 저질러도 무분별한 찬양이 이어지곤 한다. 늘 모순이 가득하고 비논리가 지배하는 것이 우리 같은 평범한 인류의 삶이다. 그렇다고, 일류가 되길 포기하겠는가! 이럴 때일수록 말이다, 우린 급식의 미학에 관해 한 걸음 더 다가설 필요가 있다. 급식의 역사는, 오직 인류를 위한 방향으로 흘러왔으니까. 절대 실리를 따진다거나 허울뿐인 명분만 갖춘다거나 하지 않았다.

지금의 ‘수다날’ 역시도 그러하다. 수다날의 재정 목적은 음식물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고 탄소 중립을 실천하기 위함이지 않았던가. 그저 맛있는 반찬 나오는 날이 아니다! 지구 육지 면적의 75%에 사막화가 진행되어 아포칼립스가 도래하고 있는 지금, 태평양 한가운데 매년 800만 톤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유입되어 해양 생태계를 모조리 파괴하고 있는 지금, 급식은 인류의 삶의 터전인 지구를 되찾기 위한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누가 이 사투를 비난할 수 있겠는가. 옳고 그름을 굳이 따지지 않아도 될 참된 도리이자 진리인 것을.


우리도 그저 급식처럼 살아가면 된다.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과감히 내려놓고, 남들을 나의 주관적 잣대로 판단하지 않으며, 누가 봐도 필요한, 올바른, 그래야만 하는 것들을 실천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급식에 충성하며 살다 보면 어느덧, 우리 모두 일류가 되어 있지 않을까?


17. 수다날.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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