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이고 어르신, 파스타도 드실 줄 알아야 해요

급식에 충성하는 자, "給食, 忠"

by 웅숭깊은 라쌤

아이고 어르신, 파스타도 드실 줄 알아야 해요

: 이젠, 그런 시대



한국 사람은 밥심이다. 한식은 밥과 국, 반찬이라는 기본 구성을 취하고 있어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 비타민, 미네랄 등 필수영양소를 섭취하기에 아주 적합한 식단 구성을 취하고 있다. 기름져서 느끼한 서양 음식에 비해 속이 편해 소화 기능에 좋다는 장점도 있는데, 그렇다고 맛이 뒤처지는 것도 아니다. 끓이고 찌고 볶고 부치는 다양한 조리법은 식재료의 특성을 가장 잘 살리는 방식으로 이뤄지며 여러 조합을 통해 최고의 맛을 끌어내기도 한다. 비빔밥, 삼합, 다들 아시죠?

그렇다고 말입니다, 아무리 좋아도 말이죠, 그렇게만 먹고 살 순 없습니다. 파스타도 먹을 줄 알아야 하고요, 국 대신 크림수프도 쭉 들이키셔야 해요! 왜냐고요? 이젠, 그런 세상이니까요.


수요일은 일주일 중 ‘쉬어가는’ 느낌이 강한 날이다. 학교마다 차이가 있겠으나 우리 학교 수요일 오후는 창의적 체험활동으로 잡혀있어 있어 정규 수업은 오전에만 이뤄진다. 오후에는 동아리 활동이나 각종 행사가 편성되어 아이들도 수요일을 좋아하는 편. 그리고, 수요일엔 급식 메뉴도 특별식으로 구성될 때가 종종 있다. 예를 들면 ‘분식 데이’. 미니 후리카케밥, 꼬치 어묵 우동, 로제 떡볶이와 같은 메뉴는 꽤 신선하게 다가온다. 고급 분식을 접하는 기분이랄까? 파인애플 볶음밥, 분짜, 짜조 롤로 구성된 베트남식 식단도 빼놓을 수 없지. 마침 그날엔 동남아 스콜처럼 짧은 시간의 집중 호우가 함께 하기도 했다. 일단 밥이 있어서인지, 여기까진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교직원 식당에 탄식이 자자했던 날이 있었고 그날엔, 미트소스 스파게티와 양송이수프, 돈까스, 양상추샐러드가 차려져 있었다.


“느끼해, 느끼해. 애들은 이런 걸 대체 왜 좋아하는 거야?”

“한국인은 말이지, 뜨끈한 빨간 국물이 있어야 하는 거여!”


학교에서 교사의 연령대는 20대부터 60대까지 굉장히 폭넓게 구성되어 있다. 처음 교사가 되었을 땐 부모님보다 연세가 높은 선배 선생님도 계실 정도였는데, 아무래도 당시 어르신들에겐 서양식 식문화가 낯설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파스타는커녕 가락국수 한 그릇도 먹기 힘들었다던 그분들의 어릴 적 사연을 떠올리면 자다가도 눈물이 왈칵…… 그런데 말이죠, 이젠 그래선 안 됩니다. 파스타도 먹을 줄 알아야 하고요, 국 대신 크림수프도 쭉 들이키셔야 해요! 왜냐고요? 이젠, 그런 세상이니까요. 세상이, 바뀌어도 너무 많이 바뀌었으니까요.


15.jpg 글과 이미지는 전혀 관련이 없으나 하여간에 제가 먹는 급식이긴 합니다


입시제도만 해도 그렇다. 2025년 기준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은 대입과 관련하여 엄청난 혼란 속에 놓여 있다. 2028 대입 개편안이 발표되고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며 이들은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시행착오 속에서 수험생활을 해나가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이들이 고3이 되었을 때, 그땐 누군가는 성공하고 누군가는 실패하겠지. 성공하는 이들은 아마도 변화에 잘 대처한 이들일 것이다.

그저 교육과정만 변화하는 것이 아니다. 해마다 새로 입학하는 아이들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능동적인 학습이 가능했던 세대가 있었던 것과 달리, 소위 ‘코로나 키즈’라 불리는 아이들은 사회성이 떨어지고 문해력이 뒤처지며 무엇보다, 전자기기에 대한 중독 수준이 심각한 정도이다. 그렇다면 교사들은? 새로운 아이들의 학습 능력을 끌어 올리기 위해 더불어 능동적이고 무난하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연구하고 고민하며 결국은 변화를, 추구해야만 한다.


<논어>에는 ‘學如 逆水行舟 不進則退 학여 역수행주 부진즉퇴’라는 성어가 있다. 배움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와 같아서 나아가지 않으면 퇴보하게 된다는 의미. 과연 배움에만 해당할까? 모든 분야가 그러하다. 특히나 학교는, 세상이 바뀌고 교육과정이 개편되며 새로 입학하는 아이들의 성향이 해마다 달라도 너무 달라지는 가운데 우리의 학교는, 더더욱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줄 알아야 한다. 과거에만 얽매여 있는 집단은 도태될 테니까. 계속 뒤처지며 결국 그간 모르고 있던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린, 더욱 급식에 충성을 다할 필요가 있다. 급식엔 새로운 시대가 있고, 다양한 문화가 있으며, 광활한 세계가 담겨 있으니까. 그리하여 이를 받아들이는 순간 우린 모두 성장할 수 있는 셈이다. 어찌 충성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언젠가 어르신이라 불리는 날이 오면 ―지금은 미래 식량이라 불리는― 식용 곤충 따위가 급식 메뉴에 담길지도 모르겠으나 그날이 정말 온다면, 기쁜 마음으로 식판 위 모든 음식을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고 말겠다. 나는야 진심으로 급식에 충성하는 인류이니까, 그래서 꼭 일류가 되고 말 테니까!


15. 파스타.pn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