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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의 급식을 세어보아요

급식에 충성하는 자, "給食, 忠"

by 웅숭깊은 라쌤

당신과의 급식을 세어보아요

: 우린, 한솥밥 먹는 사이



아이돌 그룹 ‘르세라핌’의 리더 ‘채원’이 외쳤다.


“피어나, 내 동료가 돼라!”


‘피어나’는 르세라핌의 팬덤명이다. Fear not, 두려움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르세라핌과 팬들이 함께 모든 순간을 새롭게 피워낸다는 의미라고 한다. 물론 채원의 발음이 꼬여 ‘피어나, 내 도도독!’이라 외친 장면이 더욱 화제가 되었지만, 어쨌거나 만화 <원피스>의 명대사이기도 한 이 멘트에선 서로가 서로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 ‘동료’라는 단어가 핵심이다. 나는 과연, 누군가의 동료가 될 수 있을까?


과거에 인연이 있던 이와의 만남, 특히 경조사가 있을 때 이뤄지는 재회는 아마 소개팅에 나갔을 때의 그것처럼 어색하고 낯설기 마련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금세 관계가 회복되고 그 시절의 우리가 되어 웃고 떠들썩해지기도 한다. 특히나 학창 시절, 함께 급식을 나누며 정을 쌓았던 이들이 그렇다. 얼마 전 고교 동창의 결혼식에서도 그랬다.

피로연장의 그릴 코너 앞에 줄을 섰다가 우연히 만난 J는 원래도 그랬지만 훨씬 더 훤칠해져 있었다. 국내 항공사의 기장이 된 녀석과 식사 자리를 잡으려는데 누군가 슬그머니 다가왔고, 그건 G였다. 유명 매체 기자이자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던 그는 요즘 휴식기를 보내고 있다며 소식을 전했고, 우린 이런저런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금세 어색함을 지웠다.


“우리 담임은 요새 뭐하려나?”

“어? 쟤 걔 아니야? 우리 옆 반 키 크고 축구 잘하던 애. 맞지?”

“그나저나 너흰 약 뭐 먹어? 영양제 좋은 것 좀 추천해 줘.”


파릇파릇했던 10대 청소년들이 청년을 넘어 아재가 되어 만났으나 함께하는 우리의 장면엔 어색함은커녕 여전한 생기가 돌았고 철없던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짜릿함도 있었다. 이런 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십수 년 만에 만났음에도 금세 관계가 회복될 수 있는 비결, 당연히 ‘급식’ 아니겠습니까!


한집에 살며 끼니를 함께 하는 이를 ‘식구’라 부르고 흔히 이를 ‘가족’으로 연결 지어 생각한다. 그런데 ‘식구’ 말고, ‘한솥밥을 먹는다’란 말도 있다. 공동체의 유대감을 표현함에 있어 가장 대표적인 구절이 아닐까? 이걸 영어로 번역하면 ‘worked together’, ‘to be close colleagues’ 따위의 표현들이 나열되겠으나 역시나 먹는 데에 진심인 우리 민족은 ‘한솥밥’이란 단어 하나로 관계에 대한 정리를 완벽히 해냈다.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동료들이 바로 한솥밥을 먹는 사이일 것이며 특히 나에겐 ‘같은 급식을 먹는 사이’라 할 수 있겠다. 연간 수업일수가 190일 정도이고 10년 넘게 같은 학교에 출근하고 있으니, 최대치로 잡으면 거의 2,000끼 가까이 함께 나눈 동료도 있을 법하다. 매일 같은 시간 점심 식사가 이뤄지는 건 아니어서 마주 앉아 먹지는 않았어도 같은 메뉴, 같은 급식을 먹긴 했을 테니까.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한솥밥이 아니겠는가!


14.jpg 글과 이미지는 전혀 관련이 없으나 하여간에 제가 먹는 급식이긴 합니다


문제는 실제로 한솥밥을 먹고는 있으나 과연 서로가 진정으로 식구이자 가족으로 여겨지는가, 하는 부분이다. 학창 시절 동창들의 만남이 어색하지 않았던 이유는 사실 급식에만 머무르지 않았을 것이다. 힘겨운 수험생 시절을 함께 이겨내며 소소한 추억들을 쌓아온 덕분이지 않을까? 같은 직장에서 같은 메뉴 같은 급식을 먹는다고 무조건 동료애가 생기는 건 아니다. ‘나만 아니면 돼’, ‘나만 편하면 돼’, ‘너의 힘듦은 너의 몫이고 나의 힘듦은 나누어야 해’와 같은 식의 분위기가 깔린 곳이라면 동료들로부터 결코 애정을 느낄 수 없다. 동료는 무슨, 경쟁자이자 싸워 이겨야 할 적일 뿐이겠지.

그래서 궁금하다. 나는 과연, 누군가의 동료가 될 수 있을까? 솔직히 모든 이의 동료가 되겠다는 건 욕심이자 자만일 수 있다. 그 정도의 능력을 지녔다면 성직자가 되어 전 인류의 평화를 위해 애써야 하겠지. 자신이 인도의 ‘간디’나 프란치스코 교황님쯤 되지 않는다면 과감히 포기하자. 모두를 챙기려다 가장 가까운 이에게 상처를 남기는 수가 생긴다. 그러니 내게 동료가 되어 주는 자들의 동료가 되어 주는 것부터가 먼저다. 그들을, 챙겨야 한다. 아니, 그보다 내가 그들의 동료가 되어 주는 것부터가 먼저다!


집단이 집단인 이유는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집단 공통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역할 분담을 하고, 논의를 하며, 최선을 찾는다. 다들 알겠지만 그렇게 살다 보면 때는 반드시 온다. 무슨 때? 도움이 필요할 ‘때’,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할 ‘때’! 그럴 때만 한솥밥 운운하는 건 못된 관리자들이나 하는 짓이란 것 역시도 다들 알고 있겠지? 목적을 가지고 ―언젠가 받을 도움에 대비하여― 타인에게 접근해선 안 되겠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하는 것이 도리다. 미리미리 마일리지를 적립해 놓아야 한다.


물론 나도 이러한 삶의 진리를 알고 있으며 다행히 나는 과연, 누군가의 동료가 될 자신이 있다. 그리고 외친다.


“내가 먼저 너의 동료가 되어 줄 테니 너도, 내 동료가 돼라!”


14. 한솥밥.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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