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순, 「죽은 새」
김혜순 시인의 시, 「죽은 새」는 그리움의 정서를 감각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화자의 체험과 발화가 동시에 일어나는 본 시는, 독백적 진술을 통해 ‘보고 싶다’라는 감정을 스스럼없이 드러낸다. 이처럼, 이 시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어렵지 않다. 다음은 시의 전문이다.
죽은 사람이 보고 싶다.
보고 싶음만으로 숨이 막힌다.
숨막힘 속에서
머얼리
돌을 던진다.
새가 한 마리 힘껏 뛰어든다.
혹은 죽은 새의 날아감일까?
한 마리의 죽은 새의 보고 싶음, 그만큼
서글픈 돌이 뜬다.
죽은 사람이 보고 싶다.
보고 싶음만 높이 뜨고
죽은 새 한 마리
내 가슴에 떨어진다
새와 함께 나도 떨어진다.
-「죽은 새」 전문
첫 행에서 보여준 그리움의 정서가 2행에서 더욱 강화된다. ‘숨이 막힌다’라는 표현은 그리움을 넘어, 어쩌면 한(恨)으로도 느껴진다. 김혜순의 시 세계는 한의 색채를 풍기기도 하는데, 『죽은 새』에서 등장하는 그리움의 정서 역시도 맥락적으로 같다고 볼 수 있다. 죽은 사람을 보고 싶어 하는 시의 화자는 ‘숨막힘 속에서 / 머얼리 / 돌을 던진’다. 그리고 그곳으로 ‘새가 한 마리 힘껏 뛰어든’다. ‘새’는 분명 ‘힘껏 뛰어’ 들었지만, 화자는 그 ‘새’를 보며 ‘날아’가는 것처럼 느낀다. 이러한 ‘새’는 첫 행에서 화자가 드러낸 ‘죽은 사람’을 향한 그리움이, 여덟 번째 행에서 ‘죽은 새’로 변주된 것을 볼 때 그리움의 대상, ‘사람’을 뜻한다. 그렇다면 앞선 해석을 바탕으로, 5행에서 나타난 ‘돌을 던진’ 행위는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이 시에서 ‘돌’은 ‘보고 싶음’, 즉 그리움의 정서와 대응한다. ‘한 마리의 죽은 새의 보고 싶음, 그만큼 / 서글픈 돌이 뜬다’라는 행이 그 근거로 작용한다. 따라서 ‘돌을 던진’ 행위는 그리움의 정서를 해소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해석된다.
‘돌’을 그리움의 정서, ‘새’를 그리움의 대상으로 보며 시를 계속 읽어보자. ‘서글픈 돌’은 다시 떠오르고, ‘보고 싶음’ 역시 높이 뜬다. ‘숨이 막’힐 정도의 그리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음을 화자는 느낀다. 마지막에 ‘죽은 새’는 ‘내 가슴에 떨어’지며, ‘새와 함께’ 화자도 떨어진다. 결국 화자는 한을 해소하지 못하고, 가슴 속에 그리움의 대상을 남긴다. 사무치는 ‘보고 싶음’은 쉽게 사그라뜨릴 수 없다는 것을 재강조한다. 이렇듯, 『죽은 새』는 ‘누군가’를 대상으로 한 보고 싶음, 그리움, 한의 정서를 가진 시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김혜순 시인의 시 세계를 볼 때, 단순히 특정인을 그리워하는 정서만 담아낸 것으로 이 시를 읽는 것은 분명한 아쉬움이 있다.
김혜순의 시 세계에서 등장하는 새는 공통적으로 죽음을 경험한다. 그렇기에 그 세계의 ‘새’는 사회학적으로 죽음을 맞이한 존재이자 타자의 재현이다. “이들은 죽음을 맞이해야만 무대라는 사회에 진입할 수 있는데, 이 무대의 폭력성과 무의미함을 시적 주체는 질문”이라는 전유적인 어법을 통해 노출한다. 시 세계의 ‘새’의 속성에 ‘사회학적 죽음을 맞이한 타자’가 전유 되어 있다면, 『죽은 새』에서 ‘새’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 ‘죽은 사람’에도 그 상징이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관념이나 상징이 아닌, 누가 봐도 명확히 고정된 ‘죽은 사람’이라는 단어에 다른 의미가 내포되는 것은 김혜순 시인의 특징 중 하나다. “시인의 언어관은 기표의 고정된 의미나 주체화를 거부한다.” 즉 ‘죽은 사람’으로 명시된 기표조차도 무정형의 주체이며, 어떠한 상태로든 변할 가능성을 지닌다. 그렇기에 ‘죽은 새’의 변주인 ‘죽은 사람’도 ‘사회학적 죽음을 맞이한 타자’를 은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읽는다면, 방금까지의 해석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시가 읽힌다. 사회학적 타자에 대한 연민의 정서, 타자의 사회학적 죽음을 막지 못한 한의 정서, 타자의 사회학적 죽음에 이입되어 함께하는 슬픔의 정서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사회학적 죽음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시인의 타자를 향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시 세계의 화자는 주관적 감정을 드러내는 일상적 자아가 아닌,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인간 정서를 드러내야 한다고 한다. 이러한 전제에 따라 시를 볼 때, ‘죽은 새’를 단순히 사람의 은유로 해석하는 것과, ‘사회학적 죽음을 맞이한 타자’로 해석하는 것 모두 적합해 보인다.누군가를 향한 그리움, 사회적 타자를 향한 안타까움, 둘 중 어떻게 해석하든, 김혜순 시인의 시, 『죽은 새』를 읽는 독자는 ‘새’와 함께 죽음의 정서를 경험하리라. 새와 함께 독자도 떨어지리라.
- 참고문헌:
안상원, 『김혜순 시에 나타난 ‘새’의 사유이미지 연구 ― 「피어라 돼지」, 「죽음의 자서전」, 「날개 환상통」을 중심으로』, 국제한인문학연구, 2021.
이주언, 『김혜순 시의 수사적 특성 연구(1980년대의 시를 중심으로)』, 한민족어문학회,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