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서 오려낸
나의 월화수목금토일

<카프카의 골목길> 제4 신

by 윤지형

1883년에 태어나 1924년에 사라진 체코의 카프카는 적잖은 일기를 남겼다. 멀고 먼 나라 대한민국의 솔 출판사가 2017년에 펴낸 그의 일기장은 900쪽이 넘는다. 그는 자신의 일기장을 세상 사람들이 읽어주기를 바랐을까? 죽기 전 자신의 모든 소설을 불태워버리라고 절친 막스 브로트에게 부탁도 했던 그였다.


나도 오랜동안 일기를 써 왔다. 일기는 왜 쓰나? 지나가버린 시간을 왜 굳이 돌아보는가? 붙잡고, 가두고, 정돈하고, 요모조모 만져보며 필요하다면 가공도 하고 싶어서겠지. 그러면 내 흐릿한 존재는 좀 형체를 갖추게 되는가? 아무려나 나는 언어로 만든 집에서, 편집된 기억과 함께 조금은 안심을 하게 되는 것이다. 생존의 확보. 하지만 불어오는 바람을 보자기에 싸 둘 수는 없다. 바람은 부는 바람이다. 나도 그건 안다. 날아가는 새를 잡을 수는 없다. 나는 그저 바라볼 수 있을 뿐이다. 내내 바라볼 수도 없다. 저물녘, 저 놈은 저 전봇대 끝에 홀로 앉아 있구나 하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린다. 저 허허로운 허공 속으로. 그런가 하면 거짓말처럼 반짝, 다시 나타난다. 동트기 전 동쪽 하늘의 샛별처럼, 명멸하듯. 오늘 아침 산책길에서는 늙은 소나무 아래 떨어져 죽어 있는 한 마리 갈색 새를 보았다. 날지 않는 새. 낙엽에 덮여 썩어갈 새. 거기에도 햇살은 비치고 바람은 불고 별빛도 쏟아질 것이다.


6월의 일기 중 첫 주 것을 한번 들춰 보았다. 짧은 메모도 있고 제법 길게 쓴 날도 있다. 아무리 길게 쓴들 하루의 이야기를 깡그리 다 담아낼 수가 있을까? 그 수많은 순간들 사이에는 종종 크레바스를 건네주는 눈 덮인 얼음 다리가 놓여 있다.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건너는 나를 크레바스는 매번 무심히 지켜보았을지도 모른다. 내 일기는 그런 비밀의 크레바스는 대충 지나치기 마련이다. 어설프게 덤비다가 행여 빠지면 끝장이다. 하루 스물네 개의 작은 봉우리 중 몇 봉우리만 주마간산해도 벅찬 게 내 일기다. 두세 시간짜리 영화가 때론 1000년의 역사를, 때론 70년짜리의 무수한 인생을 다 담고 있는 것처럼 우리를 곧잘 속이지만 내 하루의 일기를 담은 그릇만 해도 구멍은 숭, 숭, 숭, 숭 뚫려 있다. 온전히 하루를 담아낼 지상의 그릇은 없다.

월요일.

날짜만 있고 메모가 없는 걸 보면 별일이 없었던 모양이다. 근데 별일이 없었다는 건 무얼 뜻할까? 별일은 있는 게 좋은가, 없는 게 좋은가. 그날도 밥은 먹었을 것이고 (밥은 곧 하느님이라고 언명한 사람이 있다), 늘 나서는 산책길에 숲과 하늘과 떠도는 흰 구름을 나는 보았을 것이다. 우리 아파트 우리 라인 일층에 사는, 곱게 늙으신 팔순 할머니가 정성껏 먹이를 주곤 하는 길 고양이 두어 마리도 화단이든 어디든 만나게 되었으리라. 어미 놈은 최근 새끼를 낳았다. 아파트 지하실 어느 구석에서였겠지. 생각하면 니야오옹, 하는 소리도 들려오고 빛나는 작은 구슬, 뭐라 말할 수 없는 슬픈 물음표 같은 두 눈동자가 떠오른다. 녀석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허공의 커튼 뒤로 사라졌기에 내일이면 다시 허공의 커튼을 젖히고 톡 튀어나올 것이다. 니야오옹, 하고 울며. 그 날카로운 어린 이빨이 무서워질 때가 있다.


화요일.

저녁에 합창 연습하러 가다. 이렇게만 적혀 있다. 내 화요일의 일상이니까. 그날도 우리는 열 곡 이상을 딱 두 시간 동안 연습했다. 그중에서도 ‘바람에 지는 꽃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마라’……. 시인 김남주가 ‘5월 광주’를 포효하듯 노래한 이 시에다 서정과 전투, 비극과 햇살을 씨줄과 날줄로 직조한 멜로디로 새롭게 생명을 불어넣은 이는 우리 합창단의 지휘자다. 우뚝한 그는 일흔 살의 아름다운 백발, 그의 혈관으로는 청년의 코뮤니스트가 그날도 콸콸 흐르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오워얼 오월은 왔다, 아이 밴 어머니의 배를 가르는 대검의 병사와 함께-

오워얼 오월은 왔다,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들의 눈동자를 파-먹-고-


이 노래를 부르기 전에는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를 연습했었다.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


혁명의 길에 앞장선 시인 김남주의 사랑과 그 길섶에 핀 붉은 꽃의 가수 양희은의 사랑은 어떻게, 어떤 길에서 만나야 할까. 김남주와 양희은 사이에도 하얀 눈이 덮인 좁은 얼음 다리가 놓여 있다. 그 밑으로는 천 길 얼음 낭떠러지, 크레바스가 입을 쩍 벌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기에, 그 다리는 노래를 부르며 건너야 한다. 어릴 적 밤의 동네 무덤을 지나면서 부러 크게 휘파람을 불었던 것처럼. 그날도 우리 합창단의 사내들은 그렇게 노래를 볼렀었다.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이 세상도 끝나고' …….


수요일.

이날의 일기는 목요일에 썼다고 되어 있다. 어제는 백병원의 신경외과에 다시 갔다…. 그렇지. 수요일은 일주일 전 주치의가 지시‧조언한 대로 혈관 조영술이란 걸 받는 날이었다. 뇌혈관의 어떤 부분에 문제가 있는지를 정밀 검사할 필요성이 생긴 거다. 사타구니의 큰 혈관에 구멍을 뚫고, 거기로 주입한 조영제가 혈관 구석구석까지 퍼지도록 한 다음 내 두개골에다 여러 번 CT 촬영을 했다. ‘당장 큰 문제는 없겠는데 오른쪽 미세 혈관의 한 부분이 매우 좁아져 있군요.’ 아직 아랫도리가 벗겨진 몸으로 검사대 위에 누워 있는 내게 주치의는 시원시원하게 말했다. 그는 CT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내 뇌혈관의 상태를 컴퓨터 모니터로 바로바로 확인한 모양이었다. 하룻밤 입원을 명했다. 사타구니 대동맥 혈관에 낸 구멍이 안전하게 아무는 것을 병원에서 지켜봐야 했기 때문이다. 5인 병실. 내 곁을 지켜주던 아내가 집으로 돌아간 밤 11시경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나는 잠을 거의 이루지 못했다. 커튼으로만 겨우 분리된 다섯 개의 침대 중 나를 뺀 네 침대의 환자가 각기 내뱉는 심음 소리, 외침 소리, 악을 쓰는 소리……에 나는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었다.


아야아야아야아야---. 천지를 모르고 뛰놀다 호되게 다친 어린아이와도 같이 연신 아프다고 우는 늙은 사내. 그는 내 침대의 오른쪽이었다. ‘보소. 침대 좀 올려주소. 아니, 이 다리만 좀 올려 주오. 조금만 조금만. 아니, 아니, 이쪽 다리를……. 후우, 나, 정말 죽겠소. 의사 좀 불러주소. 의사는 언제 오는 거요…….’ 칠순이 가까운 게 틀림없어 보이는 여자 간병인에게 단 한 번도 욕설이나 하대는 하지 않는 또 다른 늙은 사내. 나와 마주 보는 침대 위의 그는 40도 정도로 구부려 세운 상체에 두 다리는 베개를 받침대로 올려놓은 상태였다. 나중에 들으니 그는 척추가 망가지고 뇌혈관에도 문제가 생긴, 도무지 손을 대기가 힘든 환자였다. 그의 큰 딸과 아내가 잠시 찾아왔다가 돌아간 건 저녁 무렵이었다. 노인이 장성한 딸에게 뭔가를 호소하자 늙은 아내는 노인에게 얘는 직장에 나가잖아요, 변명 같은 걸 했고, 딸은 아버지 또 올게요, 하고는 제 어머니를 앞세우고 병실을 나섰었다. 딸도 아내도 노인이 가망 없다는 걸 알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래서 밤은 고용한 24시간 간병인의 몫이 되었을 것이다. 여자 노인 간병인은 이래도 아프고 저래도 아픈 환자 때문에 밤새 어지간히 시달렸었다. ‘이 짓도 이젠 못 해 먹겠다…….’ 캄캄한 속에서 혼자 작게 내뱉는 늙은 간병인의 한탄 소리를 나는 들었다. 그녀도 간호를 받아 마땅한 가련한 신세였다. 그런 그녀가 이윽고 아침이 와 커튼이 열리자 정면 침대의 나를 보고는 “밤새 시끄러워서 잠도 못 잤지요?” 하며 미안해했다. 무슨 말씀을. 다들 너무 아프셔서 그러신 건데요. 하는데 괜스레 목이 메었다. 당신은 지장보살입니까? 당신은 지금 지옥의 문 앞에 서서 고통의 바다에 빠져 아우성치는 저 안의 중생들을, 또한 당신 자신의 슬픈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입니까……?


목요일 오전, 퇴원 수속은 아내가 했다. 이 보살에게 병원 가까운 곳에 있다는 코오롱 상설 매장에 한 번 가보자고 했다. 여름 반바지와 바람막이용 윗도리, 내 것만 샀다. 점심은 한 번 씩 가는 맛집인 밀면집에서 먹자고 했다. 나도 좋아요. 보살은 내게 뭐든 해 줄 태세였다. 얼음처럼 시원한 밀면 두 그릇과 갓 쪄낸 물만두 한 판. 엄마는 심각한 병을 의심하여 데리고 간 병원에서 별 문제없다는 진단을 받은 아이에게는 더욱 애틋해지는 법이다. 눈이 말똥말똥한 아이는 햇살로 쏟아지는 그 사랑의 눈부심에 좀 어리둥절해지는 것이지만, 내 속의 아이야 괜찮다. 내일은 다시 흐리고 비가 올지라도 오늘 이 시간만큼은 이리도 찬란하고 가슴이 벅차잖니.

금요일. 더 파티라는 뷔페식당에 가다. 아내, 두 딸과 함께. 간단한 한 문장. 각종 요리를 실컷 먹고 잘 놀았으니 달리 쓸 말이 없었을 거다. 작년에 직장 동료들로부터 선물로 받은 넉 장의 티켓을 여태 안 쓰고 있었다. 한 장에 4만 원. 아껴 둔 것이다. 나는 한 끼에 만 원 이상 가는 밥은 죄악이라고, 그렇게 먹진 않으리라 허망한 결심을 한 적이 있다.


토요일. 이날 일기는 아예 텅 비어 있다. 이는 오히려 별일이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가까운 한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이 내 폰 카톡방에 몰래 날아든 것은 전날 뷔페에서 아내와 두 딸과 포도주 잔을 쟁그랑, 부딪칠 때였다. 예고된 죽음. 말기 폐암으로 2년 가까이 사선을 몇 번이나 넘기며 여태 버텨온 그였다. 쓰러지기 며칠 전까지도 그는 파업 농성 중인 노동자들에게도 달려가고 ‘민주’가 붙은 시민단체 사람들과 낮이고 밤이고 어울렸었다. 4.16 유가족들이 부산으로 왔다 하면 그들에게도 달려갔다. 촛불 집회에도 단골이었다. 그의 별명은 돈키호테. 가톨릭 냉담 신자였던 그가 사랑한 사람은 고난 받는 ‘작은 예수들’이었다. 고난에 굴하지 않고 불의와 투쟁하는 사람들이 예수가 아니면 누가 예수겠어? 내게도 몇 번이나 한 그의 말이 귀에 쟁쟁하다. 허공으로 사라졌나 했는데 어느새 허공의 장막을 찢고 돌아온 새를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새가 아니다. 죽음이라는 변신 앞에서는 어떤 새의 메타포도 힘을 잃는다. 우리 마음속에는 언제까지나 당신은 살아 있어요. 새처럼 훨훨 날아가셨다가 새처럼 훨훨 돌아오세요……. 거짓말이다. 자기 위안일 뿐이다. 아름다운 거짓말, 생존을 위한 처절한 자기 위안. 빈소에 척, 포즈를 취한 듯 걸려 있는 영정 속에서 그는 활짝 웃고 있었다. 내 손으로 만져본 가까운 죽음들, 그 몇이던가. 누구는 병사했고 누구는 사고로 죽었고 셋은 자살을 했다.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꿈에도 돌아온 적이 없다.


일요일의 일기도 비어 있다. 그러면 그날은 없는 것과 같다. 아니면 뭘까? 있다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나물 먹고 물 마시며 하늘을 보고 땅을 걷고, 텔레비전에서 명멸하는 세상사에 얽혔다가 풀려나오고는 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안식일이라며 멀쩡하게 높이 솟은 교회를, 어떤 이는 만복을 바라며 고색창연한 사찰을 찾았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 따위 기만의 성소에 불을 지르고 싶어 했을 것이고.


무척이나 지루한 프랑스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보통 사람의 하루 24시간에서 2시간 정도를 내 멋대로 잘라내 보여주는 것 같은 영화. 너 지겹지? 그런데 왜 그러고 있어? 내내 이렇게 묻는 것만 같은 영화였다. 그래서 그 영화가 좋기도 했다.


저 허공으로부터 오려낸, 내 일주일 분의 길고 또 지루도 했을 영화는 여기서 막을 내린다. 하여, 캄캄한 무대 오른쪽 뒤편 구석에 나타난 슬픈 물음표 눈을 한 고양이 한 마리, 니야오옹, 운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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