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문을 부수다......?

<카프카의 골목길> 제5신

by 윤지형

대규모 집회가 열리고 있던 서울 한 대학의 본관 건물 안으로 급히 뛰어 들어가려다 무엇엔가 호되게 부딪쳐 나가떨어진 적이 있다. 안경이 날아가 깨졌고 이마도 찢어졌다. 잘 닦인 두꺼운 유리의 벽을 통로 아닌 통로로 알았다. 새들은 그렇게 온몸으로 유리벽을 들이박고선 죽기도 한댔다. 순간이나마 그걸 실감했다. 열린 듯 보이지만 꽝꽝 닫힌 문. 그걸 보지 못하는 바보 같은 눈. 생각이 딴 데 가 있으면 코앞에 것도 보지 못하는 청맹과니 눈. 오이디푸스 왕은 그런 한심한 눈을 스스로 찔러버렸다고 그리스 비극은 전한다.


나는 왜 유독 카프카를 내 ‘골목길’ 여정의 동반자로 택했을까? 세상엔 술술 재미나게 읽히면서도 실로 심오하기까지 한 작가들이 적지 않은 데도. 사실 카프카는 좀 난해하다. 그의 ‘성(城)’처럼 난공불락은 아닐지라도 숱한 의문부호와 마주치지 않고는 가까이 다가서기가 쉽지 않은 게 그의 소설들이다. 하지만 내가 그에게 끌리는 것은 바로 그래서다. 나를 캄캄한 곳으로 몰아세워 장님으로 만들어 버리곤 하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내게 카프카는 통째로 하나의 질문으로 다가온다. 절벽 같은 질문. 일억 광년 너머의 별에도 생명체는 존재할까? 물은? 산소는? 같은 질문이 아니라 저 빛나는 별을 바라보는 지금 너는 누구인가와 같은 질문 말이다.


1980년대 중반쯤으로 기억한다.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로 해외에서 이름을 날리던 백남준이 처음으로 귀국해 온 나라가 들썩일 무렵이다. 대학 졸업을 앞둔 나는 어쩌다 백남준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게 되었다. 한두 호를 내고는 망해버린 신생 예술잡지사로부터였다. 백남준도, 그의 비디오 예술에 대해서도 아는 건 쥐뿔도 없었지만 무조건 쓰겠다고 했다. 언론에 노출된 몇몇 언행들만 봐도 그가 얼마나 매력적인 사람인 가는 금방 눈치챌 수 있었던 것이다. 내 보기에 그는 따뜻한 휴머니스트에 발랄한 우상 파괴자였다. 휴머니즘은 빈약한데 우상파괴의 망치부터 드는 사람을 나는 믿지 않는다. 그는 무섭거나 경멸의 대상일 뿐이다. 백남준은, 당연 아니었다. 왠지 그랬다.


당시 백남준이 게스트로 출연한 TV의 한 방담 프로가 내 뇌리에 깊이 남아 있다. 한여름임에도 그가 양복에, 와이셔츠에, 내복까지 입고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나운서는 그 이유를 물었었다. 그는 무심히 대답했다.


“추우니까요.”


나는 짧고도 명쾌한 그 한마디에 매혹되었다. 실은 그냥 여름 감기 때문이었다? 그럼 그는 그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특별해 보이기 위한 고도의 포석이나 허튼 제스처였다? 바보 같은 소리다. 그는 이미 넘치도록 유명한 사람이었다. 내복은 뭐, 추워서 입었소. 나는 그 대답이 고승의 선문답(禪問答)처럼 들렸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성철 스님의 게송과 뭐가 다른가. 나중에 만나 본 그의 작품들은 문외한인 내겐 당연히도 어려웠다. 알듯 모를 듯했다. 하긴 나만 그렇진 않았을 것이겠지만 그야 아무래도 좋았다. 내게 그는 다이아몬드 같은 질문의 결정체였을 뿐이다. 그게 나는 좋았다. 나중에 그의 저 유명한 작품 ‘TV 붓다’를 발견했을 때는 내심 무릎을 치기도 했다. 폐쇄회로 안 TV, 그 TV에 모습을 드러낸 붓다, 그 이미지를 거울 앞에 선 사람처럼 바라보는 좌정한 붓다. 뭔 진 모르지만 알 것 같았다. 사람은 그럴 때가 있다. 뭐라 설명은 할 수 없지만 온몸으로 다 알 것만 같은 그런 순간. 어쨌거나 당시 내가 쓴 백남준에 관한 글의 내용은 잊어먹었지만 그 제목만은 지금 생각해도 제법 그럴듯해 보인다.


‘열린 문을 부수다 - 백남준의 예술 세계’


한여름에 입고 나온 그의 내복이 내 하찮은 상상력에 잠깐 불을 붙인 결과였을 것이다. 한여름 속에도 겨울(을 느끼는 사람)은 있는 법이고, 열린 문이라고 해서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문은 아니다, 내게는 열린 문이 당신에게는 전혀 닫힌 문일 수도 있다, 부처가 대중에게 꽃을 들었을 때, 말하자면 ‘법’(진리)으로 들어갈 문을 가리켰을 때, 그 열린 듯 닫힌 문을 성큼 제 손으로 열고 들어가며 미소를 지은 이는 마하가섭 밖에 없었다, 운운.


카프카의 <법 앞에서>라는 장편(掌篇) 소설에는 ‘언제나 열린 문’ 앞에서 평생을 그것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는 ‘시골 사람’이 등장한다. 문지기는 노쇠하여 죽음이 임박한 그에게 말한다. 이 문은 ‘당신만을 위한 문’이었는데 당신은 영영 떠날 판이니 이젠 이 문을 닫고 나는 가겠소,라고.


아, 우리는 늘 열려 있(다고 믿었)던 문이 꽝 하고 닫히고 났을 때야 비로소 눈을 번쩍 뜨게 되는 아둔한, 무명(無明)의 족속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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