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는 광고 카피가 유행한 적이 있다. 이때의 변신은 외모의 가벼운 변신을 말한다. 화장, 의상, 헤어스타일의 변화 같은 것. 미용 성형도 여기에 포함될 것이다. 말할 것도 없지만 여자건 남자건 변신은 필요하다. 고루한 사람들이 유죄의 올가미를 씌우든 말든 간에. 만물은 끝임 없이 변화하는 것, 변신은 인간의 숙명이기도 하다. (변화를 거부하는 자, 회칠한 무덤 속에서 살지어다.) 아름다운 처녀 다프네가 월계수로, 강의 딸 이오가 암소로 마구 변하는 그리스 신화 속 신비스러운, 해피엔딩의 변신은 떠올리기만 해도 유쾌하다. 나로 말하면 바다 갈매기의 몸으로도 살아보고 싶고 하얀 목련 나무로도 살아보고 싶다. 출렁출렁 흘러가는 강물이면 어떻고 아득히 깎아지른 절벽이면 또 얼마나 아슬아슬하게 자유로울 것인가.
그러나 세상엔 ‘무죄’로서의 변신, 사랑스러운, 어여쁜 변신만 있는 게 아니다. 카프카의 <변신>에서와 같은 끔찍한, 돌이킬 수 없는 ‘변신’도 있다. 최후의 변신으로서 죽음이야 왕궁의 왕녀든 문지기든 누구나 한 번은 맞닥뜨려야 할 변신이니까 차치해 두자. 내가 아는, 나와 함께 길을 걷고 차를 마시고 한껏 웃음을 터뜨리기도 한 이들 중에도 <변신>의 그레고르 잠자와 같은 신세가 되어 버린 이가 한 둘이 아니다. 우리 어머니만 해도 파킨슨병으로 오래전부터 두 다리를 못 쓰신다. 혼자 힘으론 침대에서 내려오거나 휠체어를 타고 바깥 구경을 할 수가 없다. 2급 장애 판정을 받은 ‘변신인’이다. 작은 이모님도 같은 병으로 고생하셨는데 돌아가실 즈음에는, (오, 이모님, 이런 표현을 용서해 주소서) 굽은 허리에 사지는 제멋대로 떠는 한 마리 큰 벌레와도 같았다. 고왔던 이모님의 순정한 영혼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변신한 그 몸이 그래 보였다는 말이다.
카프카의 그레고르가 정말 견디기 힘들었던 건 변신 자체 이상으로 몸은 이상하게 변해버렸는데 정신은 어느 때보다도 더 말똥말똥했다는 사실에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벌레’ 그레고르는 자랑스런 누이동생이 켜는 바이올린의 선율을 ‘벌레’ 이전보다 더 또렷이 들을 수 있다고 했으니까. 그는 홀로 반문한다.
“음악에 이렇게 감동을 하는데도 내가 동물이란 말인가?”
마음은 그대로인데 몸은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는 것, 내 몸을 마음이 어쩌지 못한다는 것, 혹은 마음은 생생한 스무 살인데 몸은 여든 살 냄새나는 쭈그렁 망태기가 되어 있다는 것 ……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오, 신이여. 내 몸의 변신에 맞춤한 마음의 변신도 부디 함께 주소서.)
나도 ‘변신’을 당할 뻔한 적은 몇 번 있다. 그중 하나는 2002년 한일월드컵이 한창이던 6월의 일이다. 우리의 ‘태극전사’들이 이탈리아를 꺾고 ‘4강 신화’의 기적을 이룬 바로 다음 날 새벽 나는 아내의 차에 실려 부산 백병원 응급실로 직행해야 했다. 혈압이 270에 180. 뇌출혈이었다. 우리말로 ‘풍’을 맞은 것이다. ‘붉은 악마’로 변신(!)한 군중은 거리에서, 광장에서, 골목 식당과 술집에서 대-한-민-국을 외치며 무상의 즐거운 축제를 만끽하고 있는 중에 나는 ……. ‘풍을 맞았다’는 말만큼 섬뜩하게 들리는 말도 있을까. 치명적인 일격에 속절없이 당하고 만, 돌이킬 수 없는 ‘변신’을 떠올리게 하니까. 풍이란 사건은 시간을 다툰다. 18년 전 아내의 침착하고도 민첩한 대처가 없었더라면 나는 어찌 되었을까,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아침 산책길에 한 번씩 스치게 되는 한 중늙은이 사내를 며칠 전에 또 만났다. 풍을 맞은 게 분명한 그는 그날도 다리를 절룩이며 완만한 산길을 힘겹게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서툰 춤을 제멋대로 추듯이. 문제가 있는 건 왼쪽 다리만이 아니다. 왼쪽 팔도 기형적이고 앙다문 입도 왼쪽으로 비틀어져 있다. 전형적인 뇌졸중 후유증. 머리 오른쪽의 미세혈관 어딘가가 터졌거나 막혀 뇌 손상이 왔을 테고 지금은 재활 치료 차 열심히 걷고 있는 게다. 아, 그렇지만 당신은 예전의 몸으로 돌아가진 못하리라……. 다시는 힘껏 달음박질을 할 수도, 잘 빠진 양복에 멋진 구두를 신고서 멋을 부리지도, 춤을 추지도 못할 것이다……. 그의 소망이 무언 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돈? 명예? 멋진 로맨스?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게요? 난 말이오. 그저 사지 멀쩡한 보통 사람들처럼만 살고 싶을 뿐이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