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보니 전기가 나갔다. 몇 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다. 엊저녁부터 내리던 비가 어느새 눈으로 변신해 바람에 휘날리는 중이었다. 아마도 이 근처 어디엔가, 언제나처럼, 커다란 나뭇가지 하나가 눈보라를 버티지 못하고 쓰러져 전깃줄을 끊어낸 모양이었다. 제설차는 눈을 밀어 내 집 앞에 몰아놓고 갔다. 평소 같으면 새벽부터 일어나 삽질을 했겠지만 백수가 된 나는 저 눈이 녹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3월이었으면 눈더미가 굳어서 얼음이 되기 전에 어떻게든 치워야 한다. 2024년 4월 4일, 공식적으로 봄이 시작된다는 춘분으로부터 보름이나 지난 날이었다.
몬트리올의 겨울은 길다. 기온은 체감온도가 영하 20도 밑으로 내려가는 일이 일 년에 두어 번 있을 정도이니 견딜 만 하지만,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겨울의 길이는 20년이 넘게 살면서 익숙해지지 않았다. 몬트리올에서 대를 이어 사는 사람들조차 '나도 마찬가지'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겨울이 길다 보니 3월 봄방학(영어로 Spring break라고 불러야 하지만 아직 봄이 아니므로 3월 방학, 즉 March break라고 부른다)이 되면 추위에 지친 많은 사람들이 남쪽으로 휴가를 간다. 따라서 비행기표도 이때는 비싸지지만 다행히 모든 학교가 같은 날 문을 닫는 것은 아니어서 한꺼번에 몰리는 것만은 면했다. 그렇게 맞이하는 4월은 대체로 날이 따뜻해지는 듯하다가 한두 번은 불현듯 눈발이 날린다. 눈만 오면 다행인데 3-4월에 간혹 어는 비(freezing rain)가 내린다.
'어는 비'란 비가 내리다가 차가운 표면에 닿는 순간 얼어버리는 것을 말한다. 이게 왜 위험하냐 하면, 도로에 블랙아이스를 만들어서 교통사고가 나기 쉽기 때문이다. 거기에 오래된 가로수가 많은 몬트리올에서는 나무가 얼음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꺾이면서 전깃줄을 끊거나 주차되어 있는 차량을 덮친다. 지난해에 특히 심각해서 몬트리올 주민의 상당수가 일주일 가까이 전기 없이 지내야 했고, 온타리오 주와 퀘벡주 각각 한 명씩 쓰러진 나무에 깔려 사망했다.
그렇게 눈과 비와 바람과 추위를 견디고 난 몬트리올에도 봄은 기어이 찾아온다. 겨우내 쌓였던 눈이 녹으면서 그 밑에 숨어있던 담배꽁초와 개똥과 온갖 쓰레기가 모습을 드러내고 시(city)는 물청소를 시작한다. 나는 언젠가부터 몬트리올의 4월에 시간표를 만들기 시작했다. 마지막 눈이 내리고 나면 봄맞이 대청소를 하고, 오래된 집을 보수하고, 마당을 정리하고, 해먹을 매어놓고 나면, 그러면 튤립의 봉오리가 빨갛고 노랗게 물들기 시작할 것이다.
몬트리올의 봄은 짧다. 그래도 매년 봄이 돌아온다는 사실만큼은, 세상에는 의심하지 않아도 될 희망이 있다는 증거 같아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