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뉴욕에 사는 지인이,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회사에 다니던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월요일이면 직장에서 영어가 잘 안 나온다고. 한 동료가 말을 걸었다가 금방 답을 못 하는 걸 보고 "아, 월요일이지" 하면서 가더란다. 그 이야기를 캐나다의 치과에서 근무를 시작하면서 나도 느끼기 시작했다. 한국인이 한 명도 없는 첫 번째 직장이었다.
몬트리올의 치과들은 대부분 한여름에 2주, 연말연시 2주 간은 문을 닫는다. 휴가가 끝나고 새해 첫 출근을 하던 아침이었다. 밝은 얼굴로 들어오는 동료 동료들이 인사를 했다.
"휴가 어땠어? How was your holidays?"
나는 대화를 짧게 끝내고 싶어서 이렇게 대답했다.
"짧더라. Short."
그녀는 웃으며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갔고 나는 자리에 앉았다. 여행을 다녀온 친구, 가족이 모인 이야기 등을 나누기에는 바쁜 아침이었다. 전화가 울렸다. 순간, '어쩌나?' 싶었다. 어쩌긴? 받아야지. 하루종일 전화를 걸고 받는 게 주요 일과인 내가, 주저하다 손을 뻗어 수화기를 들었다. 영어로 간단히 응대하고 끊었다. 프랑스어를 하는 환자가 아니었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한국에 살던 때부터 외국인 회사에서 근무했으니까 직장에서 영어를 쓰는 일엔 부담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날, 사무실 탕비실에 젓가락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한국인은 커녕 아시안이 하나도 없는 직장이라는 사실이 그제야 현실로 다가왔다. 치과에서의 일은 대체로 간단했다. 스케줄 관리가 주업무였으므로 특별히 까다로운 환자거나 보험 등의 문제가 없으면 통화는 금방 끝났고 동료들과 업무이야기를 하는 데 필요한 전문용어도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려면 약간의 워밍업이 필요했다.
거의 한국어로만 생활하던 휴가에서 일상업무로 던져진 첫 날은 응급환자들로 바빴다. 사무실에서 가장 경력이 많은 지니가 불어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어쩐지 내 눈을 피하는 느낌이었다. 거침이 없는 성격의 그녀가 평소보다 목소리가 작고 말이 빨라졌다. 영어를 더 많이 사용하는 지역에 있는 직장이었고 동료들이 대부분 세계 각국에서 온 이민자여서 사무실 내에서는 영어로 소통하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그녀는 오후가 되자 슬며시 말을 흘렸다.
"오늘은 영어가 잘 안되네. 자기가 이해해."
물론 이해하고 말고! 퀘벡 토박이인 지니는 불어만 사용하는 가족끼리 두 주 동안 좋은 휴가를 보내고 왔을 것이다. 외국어는 매일 기름칠을 해줘야 하는 기계와도 같아서 조금만 게을리해도 삐걱거린다. 그래서 이민생활의 월요병은 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