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몬트리올에서 처음 맞는 겨울이었다. 늦은 저녁 시간에 누군가 시끄럽게 경적을 울리며 지나갔다. 월드컵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삐뽀거리며 지나가는 차는 마치 임금님 행차라도 알리듯 천천히 움직였다. 길에 주차되어 있던 차들은 견인되었다. 거대한 제설차가 나타났다. 제설차는 거대한 진공청소기처럼 쌓여있는 눈을 빨아들였고 뒤따라 오는 트럭이 나란히 움직이며 받아냈다. 눈으로 가득 찬 트럭은 뒤따라 오는 다른 트럭에게 바통을 넘기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나는 처음보는 그 풍경에 눈을 떼지 못했다.
지난겨울, 몬트리올 시에서 제설작업에 들인 비용은 1억 6천6백만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요즘 캐나다 달러가 900원 언저리니까 대충 눈으로만 계산해도 대략 천오백억 원에 달하는 엄청난 비용이다. 한 번의 겨울이 왔다 가는 동안 보통 한 번에 30에서 50cm 정도 쌓이는 폭설은 네 번에서 여섯 번 정도 오는데, 그때마다 교통이고 뭐고 크게 곤욕을 치른다. 그래도 도시가 마비되는 일은 여간해서 없다. 그동안 쌓인 노하우 덕분이고 잘 정비된 시스템 덕분이었다.
캐나다 생활이 20년에 접어든 지금, 단독주택에 살면서부터는 눈을 치우는 일이 큰 과제가 되어버렸다. 누군가 밟아서 단단한 얼음이 되기 전에 집 앞뒤로 사람이 다니는 길은 치워야 한다. 중고로 샀던 스노리무버는 너무 무거워서 한 번 써보지도 못한 채 팔아버리고 올해는 배터리를 장착한 스틱형으로 구매했다. 진공청소기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다른 점은 눈을 빨아들이지 않고 날려버린다는 것이다. 폭이 30센티 정도로 작은 기기지만 충분했다. 행복한 것도 잠시, 갑자기 툭 꺼져버렸다. 들여다보니 나뭇가지가 잘려서 안에 걸려있다. 손가락을 다칠까 봐 배터리부터 빼두고 안을 청소했다. 차라리 삽질로 돌아가기로 했다.
눈이 오는 날 출근을 하려면 적어도 30분 이상 삽질을 해야 한다. 간밤에 내린 눈이 30cm라면 내가 치워야 하는 하는 눈의 높이는 그 두 배, 세 배가 넘는다. 밤새 제설차가 찻길에 있는 눈을 옆으로 밀어놓고 가기 때문이다. 간신히 차를 빼서 일을 다녀오면 저녁에는 또 주차장 입구가 아침보다 단단해진 눈더미로 막혀 있다. 여름에는 뾰족한 쇠 삽, 겨울에는 네모난 플라스틱 삽. 이민생활이 끝없는 삽질인 줄 알았더라면, 단풍국이 아니라 설국인 줄 진작에 알았더라면...
현관 앞 계단의 눈을 제때 치워두지 않아 단단해지거나 녹았다 얼어버리면 소금을 뿌렸다. 그러면 빠직빠직거리는 소리가 나면서 이내 구멍이 송송 뚫렸다. 그것만으로도 미끄러워 넘어지는 건 면했다.
언젠가 읽었던 지역 신문기사에서는 눈을 백금 White Gold이라고 불렀다. 눈 치우는 일이 돈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아무리 좋은 장비가 있어도 일할 사람이 없으면 그만. 인건비 비싼 나라에서 겨울에만 하는 일이고, 심지어 야간작업이 필요한 일이다. 눈이 내린 지 열흘이 지났는데 내 집 앞에는 아직도 제설작업을 위한 주차금지 사인조차 걸려있지 않았다. 인력난이 심한 올해, 과연 무사히 날 수 있을지. 창 밖엔 살랑거리는 눈이 또 내리기 시작했다. 차갑고 예쁘고 하얀... 지긋지긋한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