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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지혜 Apr 22. 2024

월요일의 영어

슬픈 나의 외국어

언젠가, 뉴욕에 사는 지인이,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회사에 다니던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월요일이면 직장에서 영어가 잘 안 나온다고. 한 동료가 말을 걸었다가 금방 답을 못 하는 걸 보고 "아, 월요일이지" 하면서 가더란다.


이틀 간의 주말도 그럴진데 2주 간의 휴가는 오죽할까. 연말연시 휴가가 끝나고 첫 출근을 하던 아침이었다. 동료들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 앉은 자리에 전화가 울린다. 순간, 어쩌나? 싶었다. 받아야겠지? 하루종일 전화를 걸고 받는 게 주요 일과인 내가, 주저하다 손을 뻗어 수화기를 들었다. 다행히(그나마!) 불어는 아니었다. 간단히 응대하고 끊을 수 있었다. 한심한 일이었다.


나의 업무는 대체로 간단했다. 스케줄 관리가 주업무였으므로 특별히 까다로운 환자거나 보험 등의 문제가 없으면 통화는 금방 끝났고 동료들과 업무이야기를 하는 데 필요한 전문용어도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말이 부드럽게 나오려면 약간의 워밍업이 필요했다. 거의 한국어로만 생활하던 휴가에서 일상업무로 던져지면, 뒷걸음치다가 무대로 나와버린 발레리나 같은 느낌이었다. 뭐라도 해야했다. 


연휴 직후라 응급환자들로 바쁜 날이었고, 우리 비서들 중 가장 경력이 많은 지니가 불어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어쩐지 내 눈을 피하는 느낌이었다. 거침이 없는 성격의 그녀가 평소보다 목소리가 작고 말이 빨라졌다. 영어를 더 많이 사용하는 지역에 있는 직장이었고 동료들이 대부분 세계 각국에서 온 이민자여서 사무실 내에서는 영어로 소통하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오후가 되자 슬며시 말을 흘린다. "오늘은 영어가 잘 안되네. 자기가 이해해." 물론 이해하고 말고! 퀘벡 토박이인 지니는 불어만 사용하는 가족끼리 두 주 동안 좋은 휴가를 보내고 왔을 것이다. 언어는 매일 기름칠을 해줘야 하는 기계와도 같아서 조금만 게을리해도 삐걱거린다. 그래서 이민생활의 월요병은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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