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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지혜 Jul 09. 2024

파리에서의 14시간

캐나다 주민의 파리 여행기

    운이 좋았다고밖에 말할 수가 없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정말로 운이 좋았다. 아이들 여름방학에 맞춰 가느라 무려 9개월 전에 예약한 비행기표는 몬트리올에서 프랑스 파리를 거쳐 일본으로 갔다가, 인천공항에서 다시 파리를 거쳐 캐나다 집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었다. 유럽을 들러서 가는 긴 여정이었지만 성수기인데도 약 500만 원에 세 명 비행기표를 구입했으니 꽤 괜찮은 조건이었다. (미리 덧붙이자면, 돌아올 때는 인천에서 파리 가는 비행기의 출발이 지연되는 바람에 추가비용 없이 몬트리올로 바로 오는 에어캐나다 직항 편으로 바꿔주기까지 했다) 게다가 가는 길에 파리에서 온전히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원래 아침 10시에 도착해서 밤 10시에 출발하는 12시간 레이오버 예정이었는데 나중에 비행기 스케줄이 바뀌면서 14시간이 되었다. 아침 8시부터 밤 10시, 우리는 샤를 드 골 공항을 빠져나와 파리를 거닐어보기로 했다. 아이들은 처음, 내게는 30년 만의 파리여행이었다.


    샤를 드 골, CDG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다. 분명 출국장으로 나갔는데 어쩌다 보니 프랑스 입국심사를 받고 있었다. 공항 직원에게 물어보자 불어로 열심히 설명을 해주었다. "꽁프리?"라고 하길래 대충 알아들었냐고 하는 것 같아서 (당시는 프랑스어를 거의 못했지만 눈치로) 고개를 끄덕였더니 흐뭇하게 내려다보던 그의 표정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워터 슬라이드 파이프 같은 통로가 사방에 뻗어있던 아방가르드한 공항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때는 없던 제2 터미널에서 나는 4개국 현금과 세 명의 여권을 복대에 넣은 채 또 헤매기 시작했다. 미리 신청해 둔 eSIM이 안 돼서, 짐 맡기는 곳에 줄이 길어서, 기차표를 사는 줄은 더욱 길어서, 공항에서 빠져나오는 데만 두 시간이 걸렸다. 덕분에 베르사유로 갈까 하던 계획은 접었다. 그래도 파리는 파리니까 갈 곳은 많았다. 


    대범하기로 악명 높은 파리의 소매치기를 피하려고 파리 북역(Gare du nord)을 지나 샤틀레 레알(Châtelet les Halles) 역에서 내렸다. 여권이라도 잃어버리면 여행의 시작과 동시에 집으로 돌아와야 했을 터였다. 핸드폰은 끈을 달아 손목에 잘 묶어두고, 도난방지용 팩세이프 크로스백을 바짝 매었다. 단단히 마음을 먹고 기차역에서 올라온 순간 우리를 맞이한 것은 야외 콘서트장이다. 아무 이벤트도 없는 빈 좌석뿐인 공간이었지만 파리의 젊음이 느껴졌다. 그때까지의 긴장이 순식간에 무너지면서 그렇게 파리와 재회했다. 몬트리올을 가리켜 북미의 파리라고 부른다. 하지만 파리는 파리, 파리는... 파리. 그 이상 어떤 표현이 필요할까? 오래전, 한 작은 호텔 꼭대기 층의 창문을 열어 본 첫날 아침, 끝없이 이어진 청회색 지붕들을 향해 나도 모르게 "Bonjour, Paris!"를 외쳤던, 그 파리. 30년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라따뚜이의 파리'를 만났다는 것이었다. 

이 귀여운 쥐의 이름은 라따뚜이가 아니라 레미(Remy)다

    2007년, 픽사가 제작하고 디즈니가 배포한 애니메이션 '라따뚜이'는 1억 5천만 달러를 들여 6억 2천만 달러를 벌어들이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낭만의 파리를 심어놓았다. 주인공인 요리천재 레미는 파리 미슐렝 레스토랑에서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 쥐다. 요리를 향한 레미의 열망을 포기시키기 위해 아빠쥐가 데려간 곳은 죽은 쥐가 잔뜩 걸려있는 가게였는데, 이번에 그곳을 지나다 우연히 발견했다. Destruction des animaux nuisible. 해가 되는 동물을 죽여주겠다는 이 업소는 실제로 1872년부터 파리에서 영업 중이다. 파리에는 약 4백만 마리가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는 2020년도 기사를 찾았다. 파리 인구가 당시 2백만이 좀 넘었으니 거의 사람의 두 배 가까이 되는 쥐가 서식하는 셈이다. 

걸려있는 쥐들은 다행히 모두 모형이다

    레미를 경악하게 했던 가게를 뒤로 하고 파리를 효율적으로 보기 위해 보트를 타기로 했다. 생 샤펠 성당의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를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예약은 이미 꽉 찼고 건물을 빙 둘러 줄이 길었다. 시테 섬을 가로질러 이층으로 된 지하철을 타고 두 정거... 였으나 거꾸로 가는 바람에 다시 뒤로 네 정거. 바토 무슈엔 사람이 많았지만 그만큼 탈 수 있는 인원도 충분해서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다. 획일적이고 단순한 센강 투어였지만 덕분에 한 시간 만에 에펠탑과 오르세이 미술관을 겉으로나마 볼 수 있었다. 알프레도가 레미를 차마 죽이지 못하고 놓아줬던 그 강가도.

    파리의 노점상은 마카롱을 팔았다. 마카롱은 어디에나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파리의 하루는 길거리 마카롱으로 시작해서 공항 마카롱으로 끝났다고 해도 될 정도로 널려 있었다. 아쉽게도 가격은 싸지 않았지만 덕분에 '장미맛' 같은 독특한 맛을 볼 수 있었다. 신용카드도 받느냐고 묻자 "Bien sûr (물론!)"란다. 겉으로는 중세유럽의 도시 같지만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대도시 파리의 인프라는 훌륭하다. 수백 년 된 건물이 보존되어 있는 구시가에 몰리는 관광객들이 '라 데팡스'로 대변되는 현대적인 도시 파리는 제대로 볼 기회가 없어서 생기는 괴리감 때문에 파리는 두 개의 이미지가 존재한다.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본사를 두는 첨단의 도시 파리와 낭만의 파리. 혹시나 해서 바꿔간 약간의 유로화는 결국 한 번도 쓸 일이 없었다. 

    세계적인 미식의 도시로서 파리의 명성은 요리뿐만 아니라 서비스에도 드러난다. '라따뚜이'에서 전설적인 요리사이자 레스토랑 오너였던 오귀스트 구스토의 친아들 알프레드 링귀니는 요리에는 재능이 없어 쥐인 레미와 손을 잡았지만 웨이터로서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좋은 웨이터는 손님에게 메뉴를 설명하고 적당한 것으로 추천하며 주문받은 음식을 빠르고 정확하게 갖다 준다. 갸르송(Garçon)이라고 하면 예전에는 웨이터를 부르는 말이기도 했다. 원래 Boy라는 뜻이니 낮춰 부르는 것 같아서 지금은 쓰이지 않는다. 하지만 갸르송으로서의 전통은 남아서 지금도 Course des garçons de café라고 해서 웨이터들이 쟁반에 음식을 얹고 달리는 경주를 벌인다. 이른 저녁을 먹으러 들어간 샹젤리제의 레스토랑에는 지긋한 연배의 웨이터가 우리를 맞았다. 비싸지 않은 평범한 식당이었는데도 제대로 갖춘 웨이터 복장에 아이들은 신기해했다. 게다가 계산서에는 팁이 붙지 않는다. 팬데믹 이후로 캐나다와 미국의 팁문화는 점점 정도를 넘어 커피 한 잔, 아이스크림 하나에까지 팁이 붙어 기본 18% 이상을 요구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는데 정작 웨이터의 서빙에 진심인 파리에서는 팁이 없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라따뚜이에 나오는 알프레도의 링귀니의 이름이 이탈리아 음식에서 따왔다는 점이다. 알프레도는 스파게티의 얹는 크림소스이고 링귀니는 납작한 파스타면이다. 알프레도는 몰라도 링귀니는 음식이름에서 가져온 걸 부정하기 힘든 그런 이름이다. 그런데 왜 미식의 도시 파리의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벌어지는 스토리에 하필 이탈리안일까? 알프레도는 구스토의 아들이지만 사생아였던듯 어머니의 성을 딴 것 같다. 그렇다면 어머니는 이탈리아 사람이었다는 말인데,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사람들이 의도는 모르겠지만 나는 메디치 가문의 카트린을 떠올렸다. 앙리 2세와 결혼한 이 파란만장한 인생의 여인은 이탈리아에서 요리사들을 데려와 프랑스 음식문화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리 거리를 점령한 마카롱마저 카트린 드 메디치가 들여왔다고도 한다. 알프레도의 이탈리아 이름은 구스토의 모토처럼 '누구나 요리할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프랑스 음식문화에 들어온 이탈리아의 파격적인 영향을 표현한 것이었을까? 

    갤러리 라파예트를 가보기로 했다. 샹젤리제 거리의 라파예트는 크리스마스트리가 화려했던 옛날 기억의 그 라파예트가 아니었다. 그 라파예트를 찾아 버스를 타고 구글을 탐색하며 찾아간 라파예트에는 이제 전망대가 있었다. 

    보너스처럼 주어진 이 풍경을 마지막으로 서둘러 공항으로 향할 때까지 내가 모르고 있었던 것이 있다. 이 날 일본 하네다 공항으로 가는 에어 프랑스는 두 번이나 지연되어 밤 12시가 넘어서야 겨우 탑승할 수 있었다. 만약 알았더라면, 레미가 그랬던 것처럼 센강 너머로 반짝이는 밤의 에펠탑을 바라볼 수 있었을 텐데. 베르사유 궁전엘 가거나 오르세이 미술관에서 인상파 전시를 보고, 하다못해 라파예트 백화점에서 타르트를 사려는 아이를 채근해서 걸음을 재촉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인생에서 하루를 파리에 묻고 나는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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