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이혼이 나쁜 점은, 실패한 것이 결혼이 아니라 인생 전체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젊은 날의 이혼은, 아이가 있는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시 인생을 설계할 시간이 있고, 황혼이혼은 어쩌면 휴식 같은 느낌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나이 40-50대에 이혼을 한다는 건 최악의 타이밍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도 세월은 어떻게든 흐르고 갓 깨진 유리 같던 감정은 천천히 마모된다. 나이 50이 코 앞에 닥쳐오자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누가 널 좋아하겠냐?"
그의 외도가 확실하게 증명되었을 때 첫마디였다. 아니라는 부정도, 잘못했다는 사과도 아닌 뜬금없는 이 한 마디에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조금도 상처받지 않았다. 이것밖에 안 되는 남자와 18년을 살았다는 자괴감은 들었지만, 결혼생활 내내 한 번도 다른 남자에 눈 돌린 적이 없는 이유가 아무도 내게 관심 두지 않아서였던 건 아니다. 그래도 이후에 누군가를 만나볼 용기를 얻는 데는 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의 이름은 잭이었다. 프랑스어를 쓰는 사람이니까 자크 Jacques인데 영어처럼 잭이라고 불렀다.
"네 남자친구는 절대 해고될 일이 없어"
코비드가 한창 심각해지고 있을 때였다. 당연히 종합병원 간호사였던 그의 몸값은 최고였을 터였다. 심지어 백신도 개발되기 전에 일터에서 코비드에 걸렸던 그는 혼자 지독하게 앓아야 했다. 전쟁으로 치면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셈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고마운 마음도 들었고, 면역이 생겼으니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아무 데도 문 연 곳이 없는 가운데 길거리 데이트를 시작했다. 세 번째쯤 만났을 때, 그는 느닷없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한국 여자들은 남편을 잘 돌본다며?"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의 눈을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전남편이 어떻게 됐는지 말해줄까? Do you want to know what happened to my ex?"
그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여자들은 배를 잡고 웃는 이 이야기를, 재미있어하는 남자는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한국 남자이건, 외국 남자이건, 내게 관심을 갖는 남자나 별 상관없는 남자거나 간에, 진지한 얼굴로 생각하는 표정이 돼서 머쓱한 분위기가 되곤 했다.
그런데 사실은, 딱 한 번, 엑스를 죽인 여자를 본 적이 있다.
치과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였는데, 교도소에서 가석방 중인 환자를 한 명 보냈었다. 무슨 죄를 져서 연방교도소까지 갔었는지 그때는 몰랐다. 형량이 2년 미만이면 주교도소에서 복역하니까 제법 큰 범죄에 연루됐을 거란 건 확실했다. 나이는 40대, 제멋대로 자란 갈색머리에 체격이 조금 큰 편인 평범한 백인이었다. 그녀는 온화하거나 순한 느낌은 아니어도 그저 어디에서나 볼 법한 인상이었다. 미드에서 오렌지색 수의를 입힌 모습을 상상한다면, 뭐 나름 어울릴 것도 같은 그 정도. 아직 젊다면 젊은 나이었는데도 이 상태가 엉망이어서 틀니를 만들어야 했다. 감방 친구로 보이는 다른 한 명과 같이 와서 밝은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모처럼의 바깥공기가 좋은 듯했다. 그런데... 본만 뜨고 다음 예약에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번호도 더 이상 연결되지 않아 우리는 농담으로 다시 들어간 게 아닐까 했는데, 정말로 몇 달 후에 교도소에서 연락이 왔다. 완성된 틀니를 보내달란다. 그녀는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다시 그곳에 들어가 있었다. 틀니라는 건 적어도 세 번은 방문해야 만들 수 있다는 설명으로 답을 보냈다. 아직 비용도 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곁들여서.
결국 교도소에서는 클리닉에 다른 환자와 마주치지 않게 해 달라는 요청과 함께 예약 스케줄을 잡았다. 그 한 사람을 위해 다른 환자들 예약은 앞뒤로 조금씩 미뤄서 두 시간의 공백을 만들어 두었다. 하지만 한 시간이나 일찍 와버렸다. 얼마나 걸릴지 몰라 일찍 출발했다며 뒷문으로 짧게 자른 각진 머리의 여성교도관이 들어섰다. 다시 말하지만 연방교도소라는 건, 중범죄자들을 수용하는 기관이라는 거고, 따라서 경계레벨이 더 높다는 걸 의미한다. 키가 크고 방탄조끼를 입은 두 교도관의 모습에 압도된 다른 환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스케줄을 조정하는 바람에 대기실엔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데스크로 다가왔다.
"How are you?"
그러자 그녀는 대답 대신 입을 삐죽 내밀며 수갑 찬 손을 내밀어 보였다.
치료가 모두 끝난 뒤, 나는 그녀의 이름으로 기사를 검색해 보았다. 짐작했던 대로 죄목은 살인이었고, 지역 신문에 꽤나 시끄럽게 보도되었었다. 10년 이상 나이 차이가 나는 전 애인의 집으로 찾아가 십여 차례 칼로 찔렀다고 한다. 계획된 범죄니까 아마 형량이 가볍진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복역 중이었던 졸리에트 연방교도소는 몬트리올에서 동북쪽으로 약 80km 떨어진 곳에 있다. 1997년 오픈, 수용인원은 132명. 여성들만 들어가는 이 교도소를 다녀간 사람 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은 단연 호몰카다. 연쇄성폭행범 폴 버나도의 아내였던 칼라 호몰카는 남편의 사디스트 성향을 맞춰주기 위해 최소 세 명의 십 대 소녀를 납치/살인에 가담한 혐의를 받았다. 심지어 첫 번째 희생자는 친동생 태미 호몰카였다. 토론토 출신인 이 희대의 악녀는 2005년 출소하면서 하필 몬트리올에 정착해 결혼해서 세 명의 아이까지 낳았다. 이 여인이 개명을 신청했다거나, 아이들 학교에서 자원봉사 한 사실이 밝혀진다거나 해서 아직도 종종 사람들의 관심사로 떠오르곤 한다. 그런데 가장 뜨거운 이슈는 뭐니 뭐니 해도 그녀의 형량 문제다. 남편의 범행의 증거를 제출하면서 감형받은 호몰카는 사실 범행에 깊이 가담한 사람이고, 폴 버나도는 호몰카를 만날 때까지 연속 성폭행범이긴 해도 살인은 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폴은 종신형을 받아 아직 감옥에 있다.
혹시 그럼 잭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직 궁금하시다면,
전날 밤샘 근무로 피곤하다면서도 굳이 불러내는 그를 만나 병원 근처 아주 작은 공원에 앉았다. 그는 이내 잠이 들었다. 날은 화창한 봄날인데 깔개 하나 없이 나무 둥치에 엉거주춤 두 시간을 앉아있던 나는 부아가 나기 시작하면서, 이 남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