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지혜 Aug 02. 2024

한여름밤의 몬트리올 판타지아 영화제

'범죄도시 4'와 '밤낚시

    몬트리올은 매년 한여름에 판타지아 국제영화제를 개최한다. 제목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주로 신기한 이야기나 SF, 공포물 같은 걸 상영하지만 유럽이나 아시아의 저예산 영화를 초청하기도 한다. 하여간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성이다. 사회자가 영어로 소개하고, 감독은 한국어로 인사하고, 행사 관계자가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핸드폰을 꺼놓기 않으면 어떻게 응징할 것인지를 프랑스어로 협박하는 그런 행사가 몬트리올이 아니면 어디서 열린단 말인가? 그런데 몬트리올 판타지아 영화제의 관객들에게는 특이한 습성이 있다. 농심 광고영상에 환호한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농심이 영화제를 후원하는 것이 한두 해가 아닌 만큼 자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꽤 반가운 장면인 듯했다. 너구리 하나씩 나눠준 '범죄도시 4' 상영관에서 사회자가 받은 라면 들어보라고 하니 모두들 신이 나서 흔들어댔다. 라면 하나에 행복한 사람들. 나는 내가 사서 나눠주기라도 한 것처럼 괜히 뿌듯한 마음마저 들었다.

올해는 해산물 너구리인가
내가 몬트리올의 여름을 사랑하는 이유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한다. 좋은 영화는 반드시 극장에서. 유튜브 동영상이 실제 여행을 대신할 수 없는 것처럼, 극장 의자에서 오롯이 영화에만 집중하며 보는 그 느낌은 넷플릭스로 대체할 수 없다. 특히 아무리 홈시어터를 잘 갖춰도 극장에서만 누릴 수 있는 요소가 있는데, 바로 관객이다. 물론 핸드폰을 열어본다던가 시끄럽게 구는 옆자리 민폐손님도 있지만, 그 상영관 안에서 나와 같이 있는 이들은 같은 감독을 좋아해서, 혹은 어떤 배우의 팬이어서, 하여간 비슷한 기호를 가지고 기꺼이 만원 전후의 티켓값과 거기까지 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 공간 안에서 함께 웃고, 눈물짓고, 결국은 비슷한 표정으로 문을 나선다. 보통의 극장 안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일인데 하물며 영화제에서는 오죽할까. '올드 보이' 때부터 한국영화에 심취한 캐나다인들, 영어가 아닌 영화에 대한 호기심으로 찾아온 사람들, 아니면 극장에서 한국어로 영화를 보고 싶은 교포들, 동기는 제각각이지만 같은 영화에 대한 마음 하나로 뭉쳐서 웃고, 놀라고, 함성을 지른다. 라면 광고에 박수치고 고양이 마스코트에 객석 곳곳에서 냐옹거리는 사람들. 몬트리올 사람들은 그런 걸 무척이나 좋아한다. 겨울이 긴 대신 여름은 진하게 즐기는 그 열정을 나는 사랑한다. 


    영화 '범죄도시 4'는 언뜻 판타지아 영화제와는 맞지 않는 장르일 것 같지만 그래도 모두에게 사랑받았다. 작년에 3편에 이어 올해 다시 나타난 Don Lee(마동석)의 표정 하나하나, 특히 그의 주먹 한방에 "오우!!"를 연발하면서 몬트리올 사람들은 열광했다. 범죄도시가 코미디인 걸 생각하면 영어자막 제작이 쉽지 않았을 텐데 꽤 잘 만들어졌다. 대사 중에 '동기(synchronize)'라는 단어를 주인공이 이해하지 못해서 '동기들이 몰려온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대신 같은 문장 안의 '클라우드(cloud)'를 '사람들(crowd)'로 바꾸면서 영어사용자들이 웃음을 터트리게 만들었다.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즐거움을 만끽할, 실로 대단한 축제였다. 영화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이 이 광경을 같이 보았다면 가슴이 벅찰 정도로 기쁘지 않았을까. 

    이번 영화제에서 편집상을 수상한 단편영화 '밤낚시'는 범죄도시 4와 같이 상영되었다. 시상을 위해 무대로 나온 문병곤 감독에게 모두들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아직 영화도 상영하기 전인데 캐나다에서 무명이나 다름없는 그를 우리는 그야말로 열렬히 환영했다. 문감독은 이렇게 소리 질러 맞아줄지 몰랐다며 오늘밤은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 기대에 답이라도 하듯 자동차 카메라로만 찍은 그 짧은 영상은 강렬하고 대담했다. 열정과 즐거움이 내년에도 후년에도 이어지기를!


   문감독님도 또 좋은 영화 만들어서 다시 오세요. 몬트리올의 여름은 여전히 '와일드하면서도 현대적인 매력이 있는 도시'를 보여드릴 겁니다.


편집상을 수상한 영화 '밤낚시'


이전 04화 남자들은 웃지 않는 농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