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지혜 Oct 21. 2024

목수 개미의 습격

    긴 여행을 가면서 걱정했던 것 중에 하나는 개미였다. 캐나다에 살면서 미워하게 된 세 번째 생물. 부지런한 일꾼에서 내 보금자리의 침입자로 머릿속에 각인되는 데는 일 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집안에서 날아다니는 개미 몇 마리를 발견하던 날은 정말이지 기절할 것 같았다. 녀석들이 터마이트가 아니란 걸 확인하고서야 겨우 진정하고 그 후로는 봄마다 출몰지역에 미끼를 놓았다. 올해는 5주가 넘는 여행을 하필 개미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는 봄에 떠났는데, 개미약을 충분히 놓고 갔는데도 비가 많이 오고 유난히 더웠던 탓인지 개미들이 몇 번이나 다시 돌아왔다. 결국 방제업체를 찾아 견적을 받았다. 500달러나 되는 금액을 부르면서도 10개월까지밖에 보장 못 한다고 했다. 그럼 내년 여름에는 다시 불러달란 말인가? 캐나다살이의 필수작업, DIY로 해결하는 수밖에.

    

    목수 개미는 확인하기 어렵지 않았다. 갉아서 파낸 나무로 톱밥산을 만들어내는 습성 때문에 어디로 들어오는 지도 금방 찾았다. 녀석들은 젖어서 약해진 나무를 좋아했다. 터마이트와는 달리 나무를 먹지는 않지만 그래도 집을 지탱하는 기둥이 약해지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 해로운 곤충임에는 틀림없었다. 집에 물 샐만한 곳은 없는데 목수 개미는 왜 자꾸 출몰하는 걸까? 데크에 의자를 놓고 느긋하게 오후를 즐기던 중에 문득, 데크 아래에 놓인 팔레트 하나가 생각이 났다. 물감 덜어내는 팔레트도 아니고 아이섀도 팔레트도 아닌 지게차 작업에 사용되는 나무 팔레트 판 하나를 나는 말 그대로 깔고 앉아 있었다. 


    팔레트는 한쪽이 시커멓게 변해서 손으로 살짝 만지기라도 하면 두부처럼 부스러졌다. 처음 집을 사서 레노베이션할 때 사온 시멘트 포대를 쌓아놨던 거니까 8년 동안 거기 깔려 있던 거였다. 근처에 미끼를 놓아 유인해서 먹이고 더 이상 개미가 나오지 않게 된 일주일 후, 한 개에 2kg짜리, 아니 이미 굳었으니 훨씬 무거워졌을 시멘트 덩어리 다섯 개를 손잡이도 없이 굴려서 덜어내고 밑에 있던 팔레트를 꺼내서 버렸다. 뭔가 개운치가 않았다. 마당 구석에 화단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화단에 쓰인 나무가 곳곳에 썩어서 구멍이 나 있었다. 지름이 1cm는 되는 거대한 못으로 고정되어 있던 나무는 이미 약해져서 쉽게 들어낼 수 있었다. 안에서 검고 붉고 단단하고 말랑한 벌레들이 천재지변이라도 겪는 듯 난리가 났다. 그렇게 끙끙거리며 썩은 나무를 처리하고 개미약을 수시로 뿌려대던 어느 날, 이번엔 데크 위에 만든 작은 화단이 눈에 들어왔다. 한쪽 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열어보니 안쪽 기둥 하나가 형체도 없이 무너져 없어졌다. 지붕에서 빗물이 떨어지는 자리였다. 


    이상하게도 일이 점점 커지고 있는 개미와의 전쟁에서 오히려 자신감은 높아졌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모르는 두려움이다. 눈에 보이는 여러 종류의 개미는 땅 밑에 수십 개의 군락이 숨어있다는 걸 의미했다. 뒷마당의 수많은 개미들 중에 몸집이 큰 목수개미의 실체를 확인했고 다니는 길도 알아냈다. 나는 군대 없는 장군이라도 된 것처럼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배터리가 내장된 대용량의 개미용 살충제와 두 가지 종류의 미끼, 그리고 규조토와 그걸 뿌리는 펌프까지 사 왔다. 원래 있던 살충제까지 박스에 모아 담아 놓고, 각각의 사용법과 주의사항을 포스트잇에 크게 적어 붙였다. 끈적이는 액체 개미약은 코팅된 종이조각에 얹으면 여물 먹는 소처럼 개미들이 모여들었다. 강아지의 콧김 하나에도 소스라쳐 흩어졌다가 이내 진열을 가다듬었다. 덩치가 큰 목수 개미는 개미약도 금방 먹어치웠다. 나는 아침마다 넉넉하게 더 부어주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에서 그는, 외계인이 나타난다면 아마 그들이 원하는 대화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개미일 거라고 말했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에 나지 않지만 개미조직의 완벽한 효율성에 대한 대단한 찬사였다. 


  좀 수상해 보이는 돌을 젖히면 하얗고 길쭉한 작은 쌀알 같은 개미알이 빽빽하게 놓여있었다. 필사적으로 알을 이고 도망가는 일개미 머리 위로 살충제를 뿌렸다. 나는 개미집 가장 안 쪽에 앉아 공장처럼 알을 찍어내고 있을 여왕개미를 상상했다. 개미보다 훨씬 큰 나는 수천수만 마리의 개미에 맞서는 단 하나의 개체일 뿐이었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니까. 드라마 '송곳'에서 프랑스 할인마트 까르푸의 이름을 푸르미 Fourmi, 즉 개미로 바꿔 불렀던 것처럼, 때로 인간도 개미의 그저 큰 버전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전 06화 50대에 EDM 페스티벌이라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