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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지혜 Aug 27. 2024

50대에 EDM 페스티벌이라니

몬트리올 장 드라포 공원

   미니 크로스백, 보조배터리, 선글라스에 까지, 완벽하게 준비한 줄 알았는데 베리위캄(Berri-UQAM) 역에서 장드라포 공원으로 가는 지하철 갈아타면서야 깨달았다. 일기예보만 확인할 줄 알았지 모처럼의 음악 페스티벌인데 어떻게 꾸미고 가야 할지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 스무 살이나 됐을까 싶은 여자아이엉덩이를 다 내놓은 바지, 아니 팬티를 입고 탔다. 여기저기 망사를 대충 걸쳐놓은 듯한 옷도 보였다. 블랙 레이스 티셔츠가 비교적 얌전해 보여서 얼굴을 보니, 남자였구나. 몬트리올엔 프랑스계가 많아서 키는 큰 편이 아니지만 대체로 날씬한 데다 비율이 좋아 웬만한 여자들 허리 높이가 나보다 한 뼘은 높다. 은근 주눅이 들었다. 젊은 사람들이 대부인 가운데  옆자리에 흰 수염의 남자 군복바지를 입고 정교한 문신으로 가득한 팔을 내놓고 있었다. 짐짓 내 시선을 피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아줌마도 가쇼?'

나는 볼 것도 없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제 와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모두의 목적지는 바로 일소닉(ÎleSoniq), 몬트리올에서 가장 큰 EDM 페스티벌이었다.

몬트리올은 섬이다, 라고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되묻는다. "몬트리올이 섬이라고?" 그것도 모르고 왔냐고 핀잔을 주는 나도 사실은 여기에 발을 내딛을 때까지도 몰랐다. 몬트리올은 생 로랑 강에 있는 하나의 큰 섬이라는 것을. 말하자면 여의도 같은 것인데 사이즈가 좀 많이 크다고나 할까? 잠깐 여행도 아니고 무려 이민을 오면서 몬트리올이 섬인 것도 몰랐으니 지금 생각하면 참 무식하고 용감했다. 하여간 이 거대한 고구마 같이 생긴 섬 옆에 또 다른 섬, 생텔렌 (Sainte-Hélène)은 원래 몬트리올 방어요새로 사용하던 작은 섬이었는데 1967년 만국박람회(EXPO) 개최를 위해 주변을 매립하고 지하철역을 만들어 지금까지도 몬트리올 시민의 여가생활을 위한 중요한 장소로 남았다. 그리고 지하철 역 이름인 장 드라포(Jean Drapeau)는 당시 몬트리올 시장이었던  사람의 이름으로, 엑스포물론1976년의 올림픽까지 유치한,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시절의 몬트리올을 30년 가까이 이끌었던 인물이다.


   1967년은 퀘벡주가 '조용한 혁명'의 시기를 지나 전성기를 맞이하던 때였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1966년 인구센서스에서 몬트리올은 1,225,255명, 토론토는 664,584명을 기록했다. 당시 5천4백만 명이 방문했다는 엑스포 67은 20세기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받는 엑스포 중 하나로, 지금도 그때 건물이 여러 채 남아있다. 환경박물관으로 쓰고 있는 바이오스피어가 당시 미국관이었고, 카지노가 들어선 곳이 프랑스관이었단다. 그런데 장드라포 역에서 내리면 바로 앞에 보이는 것한국관이다. (이 한국관 운영을 위해 한국에서 출장을 나왔던 사람들 중의 하나가 바로 우리 아버지였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막내딸이 후에 살 도시를 일찌감치 답사하셨던 셈이랄까) 원래 행사용 임시건물이었던 터라 기둥과 지붕만 남아있다. 옆에 목조탑도 있었는데 붕괴 위험 때문에 몇 년 전에 철거했다고 한다. 20세기 한국의 현대건축을 대표한다는 고 김수근 씨 작품이다.

한국관의 원래 모습
오랫동안 폐허로 남아있던 이건물을 복원하려는 노력이 진행중이다
바이오스피어 Biosphere

   그렇게 큰 섬이니까 대형 무대를 몇 개씩 설치해도 서로 간섭받지 않고 주변에 시끄럽다고 불평할 주민들도 없.  몬트리올의 놀이공원인 라롱드와 조정경기장, 수영장 등의 시설이 있는 데다 포뮬러 1 같은 대형 행사도 유치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섬이다. 그곳에서 일소닉이 시작된 건 2014년부터라는데, 어쩌다 보니 40대도 아닌 50대가 되어서야 처음  일렉트릭 댄스 뮤직 페스티벌이라는 걸 보게 됐다. 몇 달 전 예매할 때만 해도 한창 테크노 듣던 시절이 생각나 들떴는데 날짜가 다가올수록 슬며시 귀찮은 생각이 났다. 솔직히 말하자면 괜한 짓을 하나 싶었다. 행사장에 들어서자 아직 이른 시간이었는지 무대 앞에는 관객도 별로 없고 고 온 우비가 무색하게 뜨거운 태양빛이 온몸에 꽂히고 있었다. 다른 무대를 보려고 발길을 옮기는데 그 순간, 다프트 펑크의 노래가 나오기 시작한다. 음악이 몸에 흘러들면서 나는 허리를 곧펴고, 당당하게 걷기 시작했다. 

포토타임

   캐나다가 온갖 인종의 모자이크라고 하지만 하루 입장료 $140(약 14만원)부터 시작하는 콘서트의 인종지도는 백인에게 편중되어 있다. 분하지만 현실이 그렇다. 그래서 나이까지 많은 나는 거기서 소수 중의 소수, 정확히 표현하자면 유일한 중년의 아시안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의외로 남의 일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중간에 보안요원이 붙잡고 찾는 거라도 있느냐고 물었던 거 외엔, 그리고 어떤 놈이 알 수 없는 말로, 아마도 어떤 동양 언어를 흉내 내는 것처럼 놀리고 지나간 것 외에는 각자 즐기기 바빠서 자그마한 아줌마가 고무줄바지에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고 들고 다니는 양산 따위엔 눈길을 두지 않았다. 사실 내게는 그것보다 더 큰 걱정이 있었는데 그건 대마초였다. 주최 측의 입장은 간단하다. 합법적으로 구매한 것만 갖고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대마, 즉 마리화나를 피워대고 있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심해져 간혹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오히려 고마울 지경이었다.

천사 날개처럼 피어오르는 대마 연기

캐나다가 대마초를 합법화한 이유

2018년 캐나다는 G7국가로서는 처음으로 대마, 즉 마리화나를 의료용만이 아닌 기호품으로서 사용할 수 있도록 법안을 발표했는데 그 이유는 오직 하나,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접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범죄조직에 들어가는 돈을 막고 정부에서 컨트롤해서 세수를 확보하겠다는 거였는데, 이제는 합법이라는 이유만으로 담배보다 중독성이 약하다느니 하는 말로 합리화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하기만 하다. 대마는 엄연히 마약이고 결국에는 뇌에 영향을 미친다. 코카인, 펜타닐까지 안 가도 대마를 피우면서 삶이 무너지는 모습을 캐나다에 살면서 여럿 보아왔기에 공연장을 메운 사람들 사이로 피어오르는 연기를 바라보는 마음이 편치 않다.

   

오징어게임 OST를  샘플링한 DJ, Zedd의 무대

   잠시 쉬려고 강가에 자리를 잡았는데 몬트리올 구시가의 야경이 눈에 들어왔다. 관람차와 태양의 서커스 천막이 강 건너에 반짝이고 그 뒤로 빌딩숲이 보였다. 그보다 더 예쁜 건 비 온 뒤 맑은 하늘에 둥싯 떠오른 반달. 그래서 봉긋하게 솟아오르는 내 마음.


표를 미리 사두길 잘했다. 아니었다면 올해도 어물쩍 넘어갔을 여름이었다.

강건너로 바라보는 올드 몬트리올
일기예보가 틀리진 않아서 폭우가 중간에 내렸다
핸드폰으로 만든 QR 코드
카우보아 모자 삼형제와 일소닉 기념 티셔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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