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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오잡 Feb 16. 2024

현실 자각 타임

나는 누규 여긴 오디

언어란 의사소통을 위한 것이고, 영어 언어권에서 살다보면 당연히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상황을 자주 맞이하게 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영어를 쓰게 되지 않을까. 어머,어머,어머!! 나 영어 완전 잘하게 되는 거 아님? 그리고 미국에 도착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나는 깨닫는다. 내가 아는 영어를 하는 미쿡인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을. 느리게 또박또박하게 말해 주는 사람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만나기 힘들다. 당연하지, 그런 사람은 성우니까. 


나 같이 의사소통 안되는 외국인에 대처하는 원어민들은 평범사람과 친절사람으로 나뉘어 졌다.


평범사람 : 용건만 간단히 

친절사람 또는 과한친절사람 : 친절하기 때문에, 친절함으로 인해 너무 많은 말을 하는, 말 참 잘 하는 미국인


친절사람을 만나고 나면 혼이 반쯤 나갔다. 이런 분들의 특징이, 말이 많기도 하고 빠르기도 하고 친절하기도 하기 때문에 농담도 정말 많이 한다. 친절을 친절로, 농담을 농담으로, 말을 말로 알아듣고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싫었다. 그렇다고 평범사람을 만난다고 해서 좋은 점만 있다거나 하는 건 또 아니었다. 평범사람들은 해줘야 할 말을 안해주는 경우가 더 많아서, 밤의 잦은 이불킥의 원인을 제공한 건 대부분 평범사람들이다. 내 집을 나서는 그 순간부터 과하게 긴장했고 그 모든 순간이 피곤했다. 못 알아 듣는 말을 많이 듣고 있는 것도 대단한 고통이었기 때문에, 나는 점점 친절하지 않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라고 강.력.하.게 바라게 되었다. 진심 부끄러운 생각이지만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의사소통에서 매번 의문과 당혹, 혼돈과 좌절이 반복되면 사람이 이렇게 찌질하게 된다. ...진짜다. 


좋은 점이라고 해야할까, 이 엄청난 환경의 변화로, 사납던 성격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나는 영어로 말하는 사람을 만나면 최대한 방긋방긋 미소지었다. 웃는 얼굴에 침 못뱉으니까, 말 못해도 좀 봐주겠지, 하면서. 그 무렵의 나는 최악이었다. 어딜 가도 기가 죽었고, 눈치를 살피느라 어색하게 웃고 있었으며, 마트나 도서관에서 만나는 미국 사람들과는 최대한 눈을 안 마주치도록, 내게 말 걸지 않도록 주의했다. 이 답답함에 스스로가 느끼는 자신의 존엄(?)도 완전히 하락했는데, 2천미터 상공에서 스카이다이빙한 느낌...정말 그때는 미국인을 만나면 최대한 납작 쪼글쪼글 구겨져서...이러면 안될 거 아는데 니 앞에만 서면 나락.


살아오면서 이렇게 많은 좌절과 자기혐오로 가득차서 지냈던 적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언제나 나로 잘 살아왔다. 생각이 짧을 때도 있고, 했던 실수 또 할 때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지나친 자책을 하거나 우울에 빠져 장기간 기분이 안 좋거나 하는 일 따위 없었다. 야근과 특근 사이에서 죽고 싶다가도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덴마크드링킹요구르트는 반드시 사먹는 사람이었다. 악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착하거나 순하지도 않았다. 시험에서 한 자릿수 점수를 받아도, 선생님이 나를 싫어해도, 모르는 선배들한테 불려가도 나는 괜찮았다. 친구가 없어도, 회사에서 왕따를 당해도, 오락실 화장실에서 중학생들을 만나도 나는 쫄지 않았는데. 


한국에서 나는 항상 단순하고 단단하게 잘 살아왔지만, 미국에서 나는 나 답게 살 수 없었다. 한 명의 성인으로서, 인격체로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 어떠한 존재로서의 인정도 힘들었다. 남편 손에 들러붙은 기생수가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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