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데오잡 Mar 01. 2024

익숙해진다

살다 보면 살고 있다


사람의 적응력이라는 건 정말 훌륭해서, 찌질한 나로 이년을 넘게 살다 보니, 나는 이 모든 상황에 익숙해져 버렸다. 나는 주부였기 때문에 영어를 반드시 해야하는 상황이 많지 않았다. 마트에서는 중학교 때 배운대로 하이, 바이, 땡큐만 하면 되었고(선생님, 감사합니다), 또 세상 어딜가도 돈 들고 가서 돈 쓰는 거 만큼 쉬운 일이 없다내가 영어를 못하긴 하지만, 돈만 있다면 우리 가족이 미국에서 밥 먹고 사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나의 감사한 남편은 돈도 벌어오고, 병원도 예약해주고, 물건 환불도 도와주고, 그 외에 의사소통이 필요한 일을 전부 해줬다. 주위에는 좋은 한국 사람들이 있어서, 영어만 살짝 덮어 밀어 두면 내 하루하루는 즐거웠다. 생활에 부족함과 불편함이 없다보니, 나는 영어에 답답함도 간절함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첫째가 한살이 되기 전에 미국으로 가서 일 년 뒤에 둘째를 낳았으니 나에게는 임신, 출산과 육아로 바빴다는 좋은 핑계도 있었다. 


솔직히,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영어보다 운전이었다. 시골이라 도로도 넓고 차도 없었지만, 운전 경험이 거의 없는 나에게 마트 가는 길은 과호흡에 시달리는 공포의 길이었다. 구글맵을 보며 길을 확인할 여유도 없거니와 볼륨을 아무리 높여도 영어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기 때문에, 어딘가 새로운 곳을 가야할 때는 지도를 전부 외워서 갔다. 좌회전 - 우회전 2번 - 좌회전 - 세번째 골목 - 우회전 3번, 이런식으로. (손발이 나빠서 머리가 고생하는 좋은 예)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차가 많지 않은 길을 골라 다녔고 욕을 먹을 것을 각오하고 차선 바꾸기를 최소화하는 동선을 짰다. 아이를 태울 때는, 나의 운전 미숙으로 혹여 저 작은 생명을 다치게 할까봐 벌벌 떨었다. 시골에서 살 때도 그랬는데 휴스턴으로 이사를 오니 도로 상황은 더 무서웠다. 한동안 운전하기 전에 오늘도 죽지 말고 다치지 말고 돌아오자, 다짐을 하고 출발했다.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운전이라는 것도 자꾸하면 잘하게 된다. 여기는 차가 발이다 보니, 할 수 없이 운전을 해야했던 십년 동안 나의 운전실력은 경이롭게 발전했다. 이제는 굳이 돌아가지도 않고 지도를 외우지도 않으며 하이웨이도 곧잘 탄다. 그렇지만 여전히 가족을 태우고 운전하는 것은 무서워서 아직도 바들바들 떨면서 운전을 하는데, 긴장하고 조심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운전과 건강은 자신하는 게 아니라잖아. 


운전실력만큼 영어실력이 경이롭게 발전했다면 좋았을 텐데, 영어는 늘지 않고 주름이 늘고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