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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태석 Jun 15. 2020

로맨스보다 짠한 브로맨스

의천도룡기 편

  자, 드디어 영웅문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의천도룡기>에 도달했다. 사실 필자가 영웅문 중에서 가장 먼저 접한 것도 바로 이 <의천도룡기>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연걸 주연의 영화 <의천도룡기>가 유명한데, 전체 내용의 앞부분 절반 정도를 다루고 있다. 꽤 코믹하고 잔인한 면도 있는데 후편이 제작사의 사정으로 만들어지지 않아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다. 한편 1986년에 제작한 드라마가 필자의 중학생 시절 KBS에서 매주 수요일 밤 11시인가 12시인가에 방영해주었는데 엄청나게 젊은 양조위 배우를 만날 수 있었다. 너무 재밌어서 다음날 학교를 가야 하는데도 밤 늦게까지 드라마를 봤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DVD로 소장중이다.)


  <사조영웅전>과 <신조협려>가 10년 정도의 간격이 있다면 <신조협려>와 <의천도룡기>는 그보다 꽤 긴 간극이 존재한다. <의천도룡기>의 시작은 <신조협려>의 마지막과 맞닿아 있다. 화산에서 구양봉과 홍칠공의 묘에 인사를 한 곽정, 양과 일행은 소림사의 승 각원대사와 장군보를 만난다. 곽양이 장군보에게 무색선사에게 받은 소림 나한권 인형을 주는데 이게 나중에 화근이 된다. 각원대사는 무승이 아닌데, 그의 제자 장군보가 스승 없이 나한권을 배웠기 때문. 제자를 살리고자 각원대사는 곽양과 장군보를 데리고 멀리 도망갔으나 진기가 다해 죽고, 죽기 전 경전을 읊조린다. 그걸 들은 장군보는 후에 무당산에 올라 장삼봉으로 개명하고 무당파를 열었고, 곽양 또한 후에 아미파를 세운다.


  장취산은 장삼봉의 일곱 제자 중 다섯째다. 시, 서에 능한 그는 우연히 왕반산도의 군중대회에 갔다가 도룡도를 탈취하려는 금모사왕 사손과 만난다. 그 자리의 모든 인물들을 사자후로 반병신을 만든 사손은 장취산과 천응교 교주의 딸 은소소만을 데리고 무인도로 간다. 한 번씩 발작하는 사손으로부터 몸을 지키려다가 은소소는 사손의 눈을 멀게 하고, 무인도에서 장취산과 은소소는 결혼, 아들 무기를 낳고부터 사손은 비교적 온순해진다. 장무기가 열 살이 되던 해, 장취산, 은소소 부부는 사손과 이별해 무기를 데리고 중원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사손과 도룡도의 행방을 쫓던 이들에게 장무기가 납치되고, 장삼봉의 100세 생신연에 모인 6대문파는 장취산과 은소소에게 사손의 행방을 추궁한다. 의형의 행방을 밝힐 수 없었던 장취산은 결국 자결을 하고, 그 자리에 몰래 잠입했던 무기의 납치범을 쫓아낸 장삼봉은 다행이 제자의 아들 무기를 구해낸다. 은소소는 그런 장무기를 끌어안고 6대문파 사람들을 가리키며 저들이 아버지를 죽인 거라고, 나중에 꼭 복수하라고 한다. 그리고 남긴 말은 여자를 조심하라는 것이다. 예쁜 여자일수록 더 잘 속인다고. 그리고 남편을 따라 자결한다. 그녀의 마지막 말은 자신의 남편을 속인 자신을 가리키는 말인지, 아니면 후에 장무기가 여러 여자들에게 속는 것을 암시하는 것인지는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다.


  천하 제일 고수 장삼봉조차 치료하지 못한 한독을 가진 장무기는 마교라고 불리는 명교의 접곡의선 호청우에게 치료를 받으러 간다. 다행히 그가 명교의 지파라 할 수 있는 천응교 백미응왕의 손자이기도 했고, 장무기의 독이 호청우의 호기심을 당겼기 때문. 그러나 그조차 치료하지 못한 채 금화파파에게 죽고, 장무기는 기연을 만나 구양신공을 모두 익혀 한독도 치료하고 내공의 고수가 된다. 뒤이어 또다른 기연으로 명교의 신공 건곤대나이를 익혀 광명정에서 6대문파의 공격을 막아내고, 그 공으로 명교교주에 추대된다. 역대 최연소 교주. 이 전투까지 장무기는 은리, 소소, 주지약이라는 세 명의 여인들과 엮이게 되고 누구나 다 주지약과 잘되거나 또는 주지약, 소소 모두와 잘되는 결말을 상상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몽고의 소민군주 조민이 등장한다. 처음부터 장무기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녀. 하지만 그녀는 몽고인이고 몽고 왕부의 왕족이다. 반면 장무기는 몽고족을 몰아내려는 반군의 수장.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이기도 하다. 후에 은리는 죽고(마지막에 보면 안 죽었지만 반쯤 미쳐있다.) 소소는 페르시아로 떠났으며 주지약은 흑화해 어쩔 수 없이 조민과 이어지는 면도 없잖아 있긴 하지만 네 명 사이에서 고민이 많았던 장무기는 결국 조민을 택한다. (네 명 모두와 같이 사는 꿈을 꾸기도 한 장무기였다.) 소림대회에서 사손의 숙적 성곤의 무공을 파괴한 사손은 본인의 무공도 폐하고 소림으로 출가하며, 장무기는 명교 교주를 내려놓고 조민과 은거한다. 그리고 명교의 반군을 이끌던 주원장은 결국 몽고를 몰아내고 명나라를 세운다. (재주는 장무기가 부리고 돈은 주원장이 챙겼다.)


  <사조영웅전>에서 곽정은 황용과 화쟁 사이에서 고민했지만 그것은 대의명분과 신의의 문제였다. 만약 그가 금도부마가 아니었다면 1도 망설이지 않고 황용을 선택했을 것이다. <신조협려>에서 양과는 정영, 육무쌍, 공손녹악, 곽부, 야율연, 완안평 등 여러 여자들이 그를 흠모했음에도 오로지 소용녀만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장무기는 은리(사촌동생), 소소(하녀), 주지약(어렸을 때 친구), 조민(새로운 여자)을 두고 고민한다. 나중에 은리와 소소가 떠나지만 조민을 선택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주지약을 놓고 고민하기도 했던 장무기였다. (그래서 드라마에서는 보통 그냥 조민만 선택하는 방향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이 작품에서 우유부단한 장무기의 로맨스보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브로맨스다. 명교 사대호법이었던 금모사왕 사손과 무당파의 장취산은 의형제를 맺었다. 정파와 사파 사이의 우정은 후에 사손의 행방을 쫓는 정파 사람들에게 그의 행방을 알려주는 대신 죽음을 택하는 장취산을 통해 보여진다. 물론 그 자결에는 다른 이유도 있다. 그의 아내 은소소가 사실 자신의 사형인 무당삽협 유대암을 불구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 또한 사형제간의 브로맨스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광명정에서 그렇게 치고 받던 명교의 광명좌사, 사대호법, 오산인들을 멸망 앞에서 초연하게 서로 의지하고 화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정파의 공격을 장무기가 막아내고, 마지막에 장무기가 '은육숙'을 부르며 쓰러지자 은이정이 급히 그가 무기임을 확인하고, 무당파는 바로 6대문파가 아닌 장무기의 편으로 돌아설 태세를 취한다. 그렇게 장취산의 아들을 챙기던 그들이었고, 그런 그들은 무당칠협 막성곡의 시신과 함께 있던 장무기와 조민을 보자마자 그들을 공격한다. 애지중지하던 장무기조차 사형제들의 우애를 뛰어넘을 순 없었던 것이다. 후에 그것이 대사형 송원교의 아들 송청서의 짓임을 알게 된 후 송원교가 자신의 아들을 죽이려고 하는 데서도 그들의 우애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브로맨스만이라고 하기엔 대의명분이나 체면도 중요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장무기가 명교 교주직을 내려놓지 않았다면 명나라 초대 황제는 주씨가 아니라 장씨가 될 수 있었을까?(물론 픽션이니 실제로 그럴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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