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태석 Apr 05. 2020

2020년. 우리는 사이버 포뮬러를 볼 수 있을까?

사이버 포뮬러 편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시기, KBS에서 방영을 시작한 한 만화가 뭇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미 비디오 가게에 풀린 작품이긴 했지만 ‘영광의 레이서’라고 이름이 붙여진 이 37편짜리 애니메이션은 큰 인기를 끌었다. 차혜성(카자미 하야토)이 우연찮게 유니콘(아스라다)이라는 사이버 포뮬러 머신의 AI에 드라이버 등록이 되면서 원래 시합에 참가하기로 되어 있던 드라이버 대신 2015년 제10회 대회에 14세의 나이로 참여, 역대 최연소 챔피언이 된다. 이후로 OVA판인 더블 원(11), 제로(Zero), 사가(Saga)에서 주인공으로 활약하며 OVA의 이야기는 1998년 SBS에서 사이버 포뮬러라는 이름으로 방영되기도 했다. 유일하게 OVA의 마지막 이야기인 신(Sin)만은 국내에서 정식 방영된 적이 없다.

  KBS판과 SBS판, 일본판, 비디오판 등등이 모두 성우, 등장인물 이름 등이 다르기 때문에 이후로는 일본판 기준으로 적도록 하겠다. 하야토가 아스라다라는 머신에 타고 참가하게 되는 사이버 포뮬러 그랑프리는 현재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랑프리인 F1을 대체할 미래의 새로운 레이싱 대회로 인공지능 시스템이 탑재되어 최고 시속 700km에 달하는 무시무시한 속도를 자랑하는 머신을 타고 달리는 대회다. 심지어 이 대회가 2006년부터 시작되어 극 중 2015년 10회 대회에 하야토가 참여한다는 점에서 2020년인 현재 어느 정도나 만화에서의 기술이 현실 적용 가능한지 궁금증이 생기긴 한다.

  혹시 현재 진행되고 있는 F1 레이싱 경기를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사이버 포뮬러를 보고 난 이후 가끔 TV의 스포츠채널에서 F1 중계를 하면 보곤 했었는데 도무지 정이 가지 않는다. 도로를 달리는 승용차보다 훨씬 좋은 성능의 포뮬러 머신으로 레이스 전용 서킷을 달리는데 사실 각 팀마다 머신의 성능 차이가 크지 않아서인지 드라이버의 실력이 고만고만해서인지 몇십 바퀴의 레이싱 동안 큰 사고가 나지 않는 이상 순위가 잘 바뀌지 않더라. 그래서 2, 30바퀴쯤 보다 보면 하품이 나와서 채널을 돌리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한때 전남 영암에 F1 서킷이 만들어지고 2, 3년 정도 정규 F1 대회가 열리기도 했지만 애당초 F1에 대한 열기와 수요가 거의 없었던 탓에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지금은 대회가 열리지 않고 있다. 

  사이버 포뮬러는 그런 F1을 대체하는 스포츠로 작가의 머리에서 탄생한 것이다. 이제야 상용화가 되기 시작한 자율주행을 레이싱의 보조 수단으로 활용하여 AI가 자동으로 최적 레코드 라인 탐색 및 운전 보정을 해주면서 머신의 속도가 비약적으로 향상, TV판에서는 평균 속도가 시속 300km 후반이었고 사가, 신에 이르러 아스라다가 에어로 모드에서 2단 부스터를 가동하면 거의 시속 700km에 육박하는 사기급 레이싱이 되어버렸다. 작품상으로 2020년이면 AOI의 머신 알자드와 필 프리츠가 등장해 바이오 시스템과 속도감을 무디게 느끼게 해주는 불법 약물의 사용 등으로 그랑프리 대회를 깽판 놓는 사이에 주인공 하야토는 아스라다가 아닌 가랜드를 타다가 6차전부터 다시 업그레이드된 아스라다와 필살기 리프팅 턴으로 10차전까지 5개 대회 연속 우승을 하던 시즌이 되겠다. 확실히 현실과는 괴리감이 큰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언젠가 미래에는 이런 대회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작품상에서 초창기에 주인공은 어쩔 수 없이 드라이버가 되어 TV판에서 데뷔 시즌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그러나 더블원에서는 성격이 급변. 초반부에 자신이 성적이 안 나온다며 피트 크루들에게 성깔을 부리는 장면이 제법 등장한다. 하야토가 레이스를 질 때마다 이런 방면들이 시리즈 전반에 걸쳐 나오는데 좋게 보면 승부욕이고 나쁘게 보면 갑질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 열광했던 건 아무래도 하야토가 역경과 불리한 조건을 이겨내고 결국 우승을 차지하는 데서 오는 쾌감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른 스포츠 만화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런 하야토의 성장과 애청자들의 성장이 맞물리면서 TV판과 더블원에서 연속 우승을 차지한 하야토. 매년 비슷한 전개를 보일 수밖에 없는 레이스와 스포츠의 특성상 어떻게든 작가는 이야기를 틀어야만 했다. 앞서 통키나 슛돌이가 지역대회, 전국대회, 세계대회 순으로 성장해나가던 것과는 달리 사이버 포뮬러 그랑프리는 매년 똑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OVA 제로부터는 작품의 방향을 하야토의 실력 성장에서 내면의 성장으로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제로의 영역에 들어가면서 큰 사고를 당했던 하야토가 후배인 앙리를 이끌고 레이스를 진행하면서 사고 후유증을 극복하고, 사가에서는 기계나 다름없는 필과 알자드를 이기기 위해 노력하면서 초반부의 어리숙하고 성깔만 부리는 하야토보다는 진정한 레이스를 보여주는 어엿한 선배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마저도 다 이루고 나서 더는 만들 소재거리가 떨어졌는지 제작진은 마지막 OVA인 신에서는 아예 주인공을 바꿔버린다. 하야토의 절친한 친구이자 라이벌인 블리드 카가로 주인공을 바꾸는데, 필과 알자드 사건으로 인해 출전 정지 기간이 끝난 AOI 팀으로 돌아간 카가는 3년 전 머신으로 그랑프리를 시작하고 그의 실력으로도 기껏해야 5, 6위가 한계였다. 그런 그가 알자드의 원형이자 아스라다와 형제 머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오거를 손에 넣으면서 순위가 올라가고, 마침 메인 빌런이 되어버린 하야토의 머신이 잦은 엔진 트러블 때문에 둘의 승점이 비슷해지고 최종전에서 결판을 낸다. 이런 스토리를 쥐어짜 냈다. 마지막까지 과연 사이버 포뮬러를 하는 건 드라이버인가 머신인가 하는 고민만을 남긴 채 말이다. 

  우리는 언제쯤 현실에서 사이버 포뮬러를 만나볼 수 있을까?

이전 04화 슛돌이는 어디에서 뛰고 있을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