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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태석 Apr 05. 2020

슛돌이는 어디에서 뛰고 있을까?

축구왕 슛돌이 편

  골목길을 점령했던 피구왕 통키가 종영되고, 후속작으로 SBS가 택한 작품은 다름 아닌 축구왕 슛돌이였다. 이 역시 일본 만화였는데 지상파에 방영되면서 적절한 현지화와 더빙이 이루어졌다. 통키의 후광을 받아 슛돌이 역시 인기가 많았고, 지금은 어린 축구 소년들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처럼 쓰이기도 한다.

  피구왕 통키의 주인공이 통키이듯, 축구왕 슛돌이의 주인공은 강슛돌이다. 한국인으로 이탈리아 제노바에 축구 유학을 간 슛돌이는 제노바의 산포데스타 팀에 들어간다. 이 팀의 주장은 프랑스 출신의 쥴리앙. 역시나 지금도 유럽 리그에서 가장 인종 차별이 심하기로 유명한 이탈리아답게 한국인인 슛돌이 역시 엄청 무시를 당한다. 이에 슛돌이는 팀에서 나와 알버트 의사 선생님(의사지만 전 축구선수 출신) 밑에서 훈련을 한다. 그러다가 무용을 하는 캐서린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데 쥴리앙의 여동생이다. 하지만 걱정 마시라. 이 작품은 만화이지 러브 스토리가 주가 되는 드라마는 아니니 말이다.

  콜롬버스팀에 들어가 여느 스포츠 만화들과 마찬가지로 지역대회 – 전국 대회를 우승한 슛돌이는 유럽 대회에 가야 할 차례가 되었다. 하지만 이곳은 이탈리아였고 슛돌이는 한국인, 쥴리앙은 프랑스인이었다. 당연히 이탈리아 유스팀으로 뽑힐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이에 알버트와 코치는 아예 제이윙스라는 외국인 혼합팀을 만들어 유럽 대회에 참가하고 세게 청소년 선수권 대회까지 나가 우승을 한다. 

  만화니까 가능한 이야기이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설명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세계의 모든 축구 대회는 FIFA 소관이고 그 밑의 각 대륙별 축구협회와 국가별 축구협회 소관이다. 그렇기에 저렇게 외국인 혼합팀을 만들어 국가 대항전에 참여하는 건 성공 가능성 0%다. 혹시 올림픽이라면 IOC 주관이니까 남북단일팀처럼 한시적인 혼합팀이 가능할 수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슛돌이나 쥴리앙처럼 18세 전에 이탈리아에 가서 5년 정도 뛰면 이탈리아 귀화도 가능할 것이다. 물론 인종 차별 때문에 불가능했겠지만.

  통키처럼 슛돌이도 필살기라는 기술이 존재한다. 일단 시저의 총알슛과 슛돌이의 독수리슛이 있는데, 독수리슛이 총알슛의 자세를 보고 따라한 만큼 두 기술은 같은 자세를 가지고 있다. 발을 뒤로 높이 들어 올렸다가 차야 하는데 최근 축구의 흐름과 같이 수비수들이 공격수들을 밀착 마크하는 현대 축구에서 그런 동장은 어서 내 공을 태클해 빼앗아가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혹시 축구를 할 기회가 있다면 해보면 알 것이다. 슈팅을 하도록 그렇게 긴 시간을 공격수 혼자 남겨두는 수비수는 없으니 말이다. 다만 당시의 축구 스타일은 지금보다는 개인기에 의존하는 경향이 더 컸기 때문에 이런 만화도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고 이 필살기들이 마냥 비현실적인 것만은 아니다. 먼저 시저의 총알슛은 그냥 강슛이다. 다만 청소년이 차기에 비정상적으로 강한 슛일 뿐. 막다가 선수가 날아가는 그런 슛은 일본 축구만화에서 종종 등장하는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현실에도 강슛은 종종 볼 수 있다. 

  쥴리앙의 도깨비슛은 사실 현실적으로 구현이 불가능하다. 이건 공이 흔들리는 수준이 아니라 분신술처럼 공이 여러 개로 보이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와 비슷한 슛을 꼽으라고 하면 포르투갈의 축구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무회전 프리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야구에서 투수가 던지는 너클볼과도 관련이 있는데, 공에 회전을 걸지 않고 던지거나 차면 공기의 저항과 흐름에 따라 공이 불규칙하게 흔들리는데, 이것을 확대 재생산한 것이 도깨비슛이 아닐까 싶다.

  슛돌이의 독수리슛은 똥볼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축구에서 이야기하는 똥볼은 공중으로 아예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버리거나 또는 맥없이 골키퍼에게 안겨지는 약한 슈팅,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찬 공을 뜻한다. 하지만 독수리슛은 찰 때의 파워가 공이 떨어질 때도 약해지지 않고 유지가 되어 필살기가 된다. 일반적으로 좌우 변화보다 상하 변화에 더 적응하기 힘든 사람의 눈의 구조를 생각하면 독수리슛은 좋은 필살기이다. 축구에서 보면 드라이브슛과 비슷한데, 공을 찰 때 회전이 앞으로 걸리도록 강하게 높게 차면 회전에 의해 슛이 뚝 떨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독수리슛은 거의 직선에 가까운 포물선 궤도로 날아가는 드라이브슛에 비해 더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고 있다.

  통키의 방영과 함께 운동장과 골목을 장악했던 피구의 열풍은 뒤이어 방영된 슛돌이의 방영과 함께 다시 그 패권을 축구에 내주어야 했다. 그리고 마침 1994년 월드컵이 뒤이어 벌어지고, 당시 스페인, 볼리비아, 독일 등과 치열한 경기를 펼치면서 축구의 열기는 높아져 갔고, 많은 아이들이 축구에 입문하게 되었다. 현실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던 피구와는 달리 축구는 프로 축구, 실업 축구, 월드컵이라는 많은 실제 경기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축구에 더 쉽게 입덕 할 수 있었다.

  슛돌이의 열풍도 잦아들 즈음, KBS의 한 예능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다. 그 이름도 유명한 날아라 슛돌이. 유명 축구 선수들의 2세들이 참여한 유소년 축구에 대한 예능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은 단연 이강인 선수였다. 그리고 2020년 현재. 이강인 선수는 17세 이하 청소년 월드컵에서 MVP로 선정되었고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에서 뛰고 있다. 그의 클럽팀은 아쉽게도 이탈리아가 아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발렌시아라는 강팀이다. 만화가 아니라 진정한 축구왕의 꿈을 이뤄가고 있는 슛돌이를 우리는 현실에서 만나고 있다. 

  문득 궁금해졌다. 슛돌이는 커서 유럽의 어느 클럽팀에 들어갔을까.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벤투스? 파리 생제르망? 바이에른 뮌헨? 그렇다면 우리에게 세계 축구라는 큰 무대를 보여준 것은 사실 박지성 선수가 아닌 슛돌이는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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