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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태석 Apr 02. 2020

7개의 구슬을 모으면 소원을 들어주는 구슬이 있다?

드래곤볼 편

7개의 구슬을 모으면 소원을 들어주는 구슬이 있다?

  국민학교 1학년이었을 무렵, 친구 집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만화책이 있었다. 바로 드래곤볼 28권. 토리야마 아키라를 일거에 유명인으로 만들어준 대표작이기도 하다. 당시만 해도 만화는 TV에서 해주던 만화영화만 보던 시절이었던 내게 드래곤볼 28권은 하나의 문화적 충격이었다. 마침 손오공이 프리저라는 빌런과 싸우다가 초사이어인으로 변신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중간부터 봐도 꽤 흥미진진한 내용이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삐죽 머리를 하고 엉덩이에 원숭이 꼬리와 같은 꼬리가 달린 엄청 센 꼬마 손오공이다. 우연히 드래곤볼을 찾던 부르마를 만나 각종 여행을 거치면서 지구 최강의 무도가로 거듭나게 된다. 이후 손오공의 형인 라데츠라는 사이어인이 찾아와 네가 강한 이유가 실은 사이어인이라는 종족의 외계인 때문이라고 알려준다. 이후 무대는 우주로 뻗어나가며 전투 종족 사이어인의 왕자 베지터, 프리저, 셀, 마인부우까지 차례대로 강대한 적을 손오공과 친구들이 쓰러뜨리는 것이 이 만화의 주요 내용이다. 


  지금은 거의 사장되었지만 내가 학생이던 시절만 해도 어느 동네든 꼭 있었던 가게가 바로 비디오테이프를 대여해주는 비디오 가게였다. 출시일과 장르에 따라 다소 달랐는데 드래곤볼의 경우 비디오테이프 하나를 2, 3일 대여하는 데 500원 정도였다. 내가 드래곤볼을 처음 접했을 때만 하더라도 비디오 가게에는 이미 60개가 넘는 드래곤볼 비디오가 있었지만 도저히 빌려다 볼 엄두가 나지 않는 분량이었다. 


  그렇게 멀어질 것만 같았던 드래곤볼과 다시 마주한 것은 동네에 책을 대여해주는 책방이 들어서면서부터다. 책방에서는 만화책 한 권을 1박 2일, 신간이 아니면 2박 3일을 대여해주는데 300원 정도 했다. 비디오로 보기는 너무 길었고, 책을 사자니 용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던 내게 책방은 신세계와도 같았다. 나는 주저 없이 가장 먼저 드래곤볼 1권을 빌려다 보았고, 그렇게 42권으로 완결될 때까지 모두 읽게 되었다. 그리고는 당시 한국 만화들이 대부분 짧았던 데 비해 엄청나게 길면서도 재밌었던 만화책이라며 혼자 자평을 했다. (지금은 42권 분량이 긴 편이 아니다. 원피스나 더파이팅에 비하면 42권은 애교에 가깝다.) 


  다소 깔끔하지 못한 엔딩을 뒤로한 채 완결이 지어진 드래곤볼은 이후로도 몇 번 다시 출간이 되었다. 똑같이 42권 분량으로 무삭제판이 2000년대에 출간되었고, 이후 완전판이라고 해서 34권 분량의 책이 나왔는데 나는 이걸 소장하고 있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일반적으로 흑백에 가끔 칼라가 섞여 있던 드래곤볼을 풀칼라로 내는가 하면 단행본 크기가 아닌 아이큐 점프 판형의 큰 판형으로 출간하기도 하는 등 여전히 현역으로 왕성하게 출간되는 책이기도 하다. 


  드래곤볼의 매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 우선 드래곤볼 자체에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 부르마가 손오공과 만나 드래곤볼에 대해 알려주는 내용이 나온다. 별이 그려진 일곱 개의 구슬을 모으면 용신(드래곤)이 나타나 어떤 소원이든 하나를 들어준다. 물론 뒤에 가면 소원에 각종 제약이 따르지만 말이다. 어떤 소원이든 들어준다는 드래곤볼은 디즈니의 만화 알라딘과 꽤 닮아있다. 요술램프를 문지르면 지니가 나와서 소원을 들어주고, 드래곤볼을 모으면 용신이 나타나 소원을 들어준다는 점에서 말이다. 주인공이 용신에게 소원을 비는 것을 보며 어린 마음에 누구나 한 번쯤은 내게 만약 드래곤볼이 있다면 어떤 소원을 빌까?라는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지 않았을까? 뭐든 될 수 있지만 아직은 아무것도 아니던 어린 시절에 소원을 들어주는 구슬이라니. 부끄럽게도 나는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지금은 돈이 부족하지 않은 어른이 되어 소원을 이룬 것 같다. 아니, 아직도 돈은 부족하다.


  드래곤볼이 수많은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아마 먼치킨적인 요소 없이 손오공이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1권부터 손오공은 꽤 강한 편에 속한다. 그가 처음 만나는 괴물들은 거의 한 방 감이고, 만나는 무도가들을 상대로도 거의 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쉽게 이긴 적은 드물고 항상 천신만고 끝에 가까스로 이겨내는데,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채로 상대를 이기고도 늘 밝게 웃는 손오공의 모습이 우리에게는 묘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 것은 아닐까 싶다.


  처음으로 드래곤볼을 모아 오룡이 소원을 빈 후 할 일이 없어진 손오공은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스승인 무천도사(거북선인)를 찾아가 크리링과 함께 무예를 배우게 된다. 이때도 뭔가 터무니없는 훈련으로 손오공이 강해지는 게 아니라 우유 배달과 밭 갈기 등을 훈련에 응용했기 때문에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가 강해질 만하다고 느껴졌다. 그냥 하면 훈련이 안되니 엄청 무거운 거북이 등껍질을 등에 매달았지만. 그렇게 훈련하면서 강해진 이후에도 드래곤볼의 수련은 항상 일정한 수준을 유지한다. 거북이 등껍질이 몇 톤의 쇳덩이로 변했을 뿐. 그리고 그 쇳덩이는 문방구나 체육용품을 파는 곳에 가면 구할 수 있는 모래주머니와 모양이 같았다. 


  그래서 드래곤볼을 보고 나도 한 번 손오공처럼 강해져 보겠다며 모래주머니를 사서 평상시에 매일 차고 다녔었던 적이 있다. 그러다 체육 시간에 100m 달리기 측정을 하면 그때만 잠시 풀고 달리는 것이다. 한쪽 발에 3kg씩 6kg을 달고 다니는 생활에 익숙해져 있다가 갑자기 모래주머니를 풀고 달리면 내가 마치 손오공이라도 된 것처럼 미친 듯이 뛰어다니곤 했는데 그래도 실상 기록을 재면 기껏해야 0.1초나 0.2초 정도 빨라질 따름이었다. 그것이 모래주머니를 차고 다녀서인지 아니면 그냥 내가 성장기라서 빨라진 것인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드래곤볼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질 즈음 기가 막힌 소식이 날아들었다. 드래곤볼이 실사 영화로 제작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일본이 아닌 영화의 메카 할리우드에서. 한국의 1세대 아이돌 그룹 중 하나였고 나와 친구들이 가장 좋아했던 god의 박준형이 미국 출신으로 익힌 본토 영어 실력으로 야무치에 캐스팅되었다는 사실도 기대감을 쑥쑥 키웠다. 그리고 개봉 이후 크나큰 기대감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그 이유를 일일이 열거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그때 느낀 교훈은 만화 원작은 실사판을 보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 교훈도 최근엔 디즈니에 의해 어느 정도 무용지물이 되긴 했다.


  어쨌거나 대단원의 막을 내린 것 같았던 드래곤볼은 이후 극장판 신들의 전쟁, 부활의 F로 극장에서 개봉하기에 이르렀다. 신들의 전쟁은 파괴신이 등장해 손오공, 베지터와 싸우고 부활의 F에서는 Frieza, 즉 프리저가 지옥에서 부활하여 돌아와 “천재가 노력까지 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겠다”며 손오공과 베지터를 찾아와 싸운다. 다소 귀여운 골든 프리저로 변신하면서까지 말이다. 가장 최근에 개봉했던 극장판 슈퍼 브로리에서 손오공과 베지터는 아예 새롭게 드래곤볼 세계관을 정립해버린 사이어인 브로리와 싸우게 되는데 주말에 혼자 집 근처 극장으로 영화를 보러 갔었다. 평상시엔 관객이 드문 극장이어도 주말엔 다소 사람들이 차는데 아무래도 극장에 만화를 돈 주고 오는 사람들이 많지 않고, 심지어 어린아이들을 타깃으로 하는 짧은 만화도 아니기 때문에 관객들이 많지는 않았다. 재밌는 점은 관객의 대부분이 내 또래의 남자 관객들 혼자, 또는 나이에 상관없이 남자 여럿. 그도 아니면 커플이었다는 점이다. 내 또래의 남자 관객들이 혼자 오는 이유는 나와 비슷하리라는 생각에 왠지 모를 동질감이 피어올랐다. 


  최근 드래곤볼은 다른 만화가가 드래곤볼 슈퍼라는 만화 작품으로 마인부우 사건 이후를 그리고 토리야마 아키라 작가는 감수 정도를 봐주고 있다. 현재는 드래곤볼을 모으러 다니는 모험이 주가 아닌 손오공과 베지터가 얼마나 더 많은 변신을 하고 얼마나 더 강해지며 우주에 얼마나 더 많은 적이 나와서 손오공과 베지터가 맞서 싸우는지에만 몰두해 있다. 우리가 추억하는 그 옛날, 구슬 7개를 모아 오면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꼬꼬마들의 호기심 넘치는 모험담은 저 멀리 나메크성 너머로 사라진 것이다. 그래도 좋다. 나는 여전히 드래곤볼을 보면서 상상하기 때문이다. 드래곤볼을 모으면 무슨 소원을 빌까. 아무래도 서울의 큰 아파트를 사달라고 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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