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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태석 Apr 02. 2020

입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

오덕후의 이야기 - 프롤로그편

  일본어로 ‘오타쿠(オタク)’라는 말은 누구나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상대방, 혹은 제삼자의 집을 높여서 부르는 말인 귀댁(お宅, おたく)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특정 취미나 사물(특히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나 다른 분야의 지식이 부족하고 사교성이 결여된 인물이라는, 약간은 부정적인 의미로 쓰였다. 


  지금 한 번 오타쿠라고 했을 때 떠올려지는 이미지를 상상해보자. 혹시 키가 작고 배가 불록 나와 덩치가 있는 체구에 반드시 안경을 쓰고 있는 그 남자를 떠올리지는 않았는가? 그것이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오타쿠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물론, 게임 축제나 캐릭터 페어 등에 가보면 안경을 쓰고 모습이 비슷비슷한 남자들이 평상시보다 자주 눈에 띄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분 탓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이미지의 남자들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오타쿠라는 말은 오덕후라고도 불리다가 지금은 덕후라는 표현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지금은 본래 의미보다는 어느 특정 분야에서 비전문가이지만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뽐내거나 한 가지 분야에 파고드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더 널리 쓰이고 있다.


  나도 지금까지 언급한 덕후의 요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전문가 수준의 지식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심히 의심스럽지만, 남자이며 안경을 썼고, 평범하며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기 때문에 주변에서 나에게 덕후라는 표현을 자주 쓰곤 했다. 언젠가 회사 워크샵에서 OX 퀴즈에 ‘걸그룹 AOA의 멤버는 8명이다.’라는 문제에 전 직원이 나를 쳐다보며 답을 기다리는 웃지 못할 일이 있었다. 


  왜일까? 내가 덕후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물론 가장 어린 남자 직원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결혼 후에는 가급적 덕후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하지만 여전히 내 책상에는 마블 캐릭터인 그루트와 로켓이 자리하고 있고, 곳곳에 카카오 프렌즈, 특히 라이언이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다.


  게임계에 이런 말이 있다. “와우는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쉬는 것이다.” 마찬가지이다. 덕후의 세계로 입덕은 할 수 있지만 덕질을 그만두는 탈덕은 없다. 다만 덕질을 하는 빈도가 줄어들거나 관심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을 뿐이다. 연예인에 대한 큰 관심 뒤에 관심이 사그라져서 덕질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관심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걸음 물러나서 멀리서나마 지켜보겠다는 태도를 견지하는 것일 뿐. (트와이스 다현에 대한 관심은 확실하게 접었다. 와이프와의 연애 후 확실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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