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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태석 Apr 04. 2020

피구의 왕이 되려는 자

피구왕 통키 편

  지금의 지상파 방송사를 물으면 당연히 ‘MBC, KBS, SBS, EBS’라는 대답이 따라온다. 문화방송 MBC, 한국방송 KBS, 교육방송 EBS처럼 다들 공기업 또는 정부의 자본이 들어갔던 방송사들과는 달리 SBS는 90년대 초반에 서울방송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개국을 한 신규 민간 방송사였다. 그리고 일본의 여러 애니메이션을 전격 수입하여 한국 상황에 맞추어 현지화를 하여 방영을 하면서 개국 초기, 아이들에게 만화 맛집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이것’을 방영할 당시에 골목길에, 놀이터에 아이들이 없어 텅 비었다는 우스갯소리를 지금도 회자하게 만드는 만화가 있었다. 그렇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작품이다. 드래곤볼 주인공의 초사이어인 변신을 연상시키는 위로 삐죽 솟은 머리에 빨간 머리색. 그리고 어린 손오공을 연상시키는 아주 작은 키의 초등학생이 남자 주인공인 만화. 피구왕 통키다.

  통키는 드래곤볼에서 손오공이 초사이어인으로 변신했을 때의 머리 스타일과 비슷하게 위로 솟구친 머리를 하고 있는데 다만 머리색이 빨간색이며 키가 작고 왜소하여 운동을 하기는 어려워 보이는 모습이다. 상대적으로 숙명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타이거는 잘생겼고, 적당한 키와 금발까지. 아마 통키를 모르는 세대에서 둘의 이미지만 주고 주인공을 골라보라면 누구나 타이거를 주인공으로 꼽지 않을까?

  작품의 배경은 국민학교 피구부였다. 아버지가 유명한 피구 선수였던 통키는 태동 국민학교 피구부에 들어간다. 그리고 지역대회에서 도끼슛의 장도끼가 있고 타이거가 속해 있었던 상아 국민학교, 회전 회오리슛의 민대풍이 있는 백아 국민학교, 태백산이 파워슛을 던지는 암산 국민학교 피구부까지 모조리 제압하고 우승을 한다. 이후 타이거가 유럽 선발팀을 이끌고 돌아와 통키를 비롯하여 장도끼, 민대풍, 나한상, 태백산 등으로 역시 올스타팀을 만들어 경기를 치르고 종영되었다. 

  초롱초롱한 어린 시절의 눈으로 보았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과연 이들이 국민학생들이 맞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한다. 통키와 맹태, 미나는 누가 봐도 국민학생처럼 보이는데 이들과 맞붙어야 하는 상대팀들은 왠지 통키보다 강해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장도끼와 민대풍은 그렇다 치고 나한상은 누가 봐도 액면은 고등학생처럼 보였다. 한술 더 떠서 태백산이 있던 암산 국민학교는 아예 불량학생들이 학교를 점령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통키가 약자의 포지션에서 그런 선수들을 상대로 경기를 하고 승리하면서 더 열광했던 것 같다. 원래 사람들은 약자를 응원하는 법이니까.

  피구왕이 되기 위해 험난했던 역경들 속에서 메인은 역시 불꽃슛이었지만 여러 필살기들이 등장한다. 초반에 통키의 태동 피구부가 타이거의 상아 피구부와 겨룰 때 타이거는 스카이슛을, 장도끼는 도끼슛을 던졌다. 스카이슛은 높이 뛰어올라 던지는데 현재 초등학생 나이에 서전트가 NBA 선수들만큼 뛰어 높은 위치에서 공을 던진다. 그에 비해 도끼슛은 힘으로 던지는 슛이라서 다소 그럴듯했다.

  지역대회에 들어서면서 필살기는 점점 비현실성을 더해가기 시작했다. 백아 피구부와의 경기에서 나한상은 스위치슛을 던지는데 공을 머리 뒤에서부터 양손으로 잡아 던지는 슛인데 요는 ‘내가 던지는 손이 오른손이게 왼손이게?’였다. 그리고 민대풍의 회전 회오리슛은 몸을 비틀었다가 한 바퀴를 돌면서 던지면 공도 막 회오리처럼 회전하는 기술이었는데 그나마 비교적 만만하게 따라 해 볼 만한 기술이어서 실제로 많이들 따라 해 봤다. 그리고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초등학생들의 작은 손으로 스위치슛을 던지면 공이 제대로 안 잡혀 머리 뒤에서 나오던 공이 엄한 곳으로 가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회전 회오리슛은 던지다가 내가 어지러워서 넘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역시, 만화는 만화일 뿐이다.

  태백산의 파워슛은 공을 원반처럼 납작하게 만들어 힘으로 던지는 기술인데 아이들이 공기가 가득 찬 탱탱볼 수준의 공을 무슨 재주로 그렇게 한단 말인가. 우리는 파워슛을 위해 바람이 좀 빠진 공을 찾아 파워슛 흉내를 냈다. 물론 그 공으로 피구를 하는 것은 무리였지만. 그리고 후에 등장하는 통키의 불꽃슛과 타이거의 번개슛은 그냥 입으로만 외치면 불꽃슛이었고 번개슛이었다. 따라 할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 

  당시 통키는 골목길 평정은 물론이고 학원 시간표를 전부 비우게 만드는 현대판 모세의 기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으며 당시 축구 일색이었던 학교 운동장을 전부 피구로 바꾸게 만들었다. 문방구(문구점)에서는 배구공보다 약간 작은 사이즈의 오렌지색 피구공이 불티나게 팔렸으며, 거기에 불꽃 마크라도 인쇄되어 있다면 가격이 더 뛰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불꽃 마크에 작은 고사리 손가락을 맞춰 잡고 30cm 정도 뛰어올라 던지는 불꽃슛은 당시에 가장 힙한 세레모니였다.

  아까 서두에 SBS가 서울방송이라는 언급을 했던 이유 중 하나는 당시 개국 초기만 하더라도 SBS가 송출되는 지역은 서울과 일부 수도권에 한정되었었다. 때문에 지방에서 SBS를 보려면 방송을 송출해주는 유선 방송을 통해 시청하거나 비디오테이프 버전의 만화를 보는 것이었다. 광케이블이 전국에 보급된 지금을 생각해보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당시에는 이렇게 문화를 접근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나는 덕질을 위한 기초를 성심성의껏 닦고 있었다는 것이 놀라운 따름이다.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불꽃 마크의 피구공. 그 공은 다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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