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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산 Feb 05. 2024

기초생활수급자 취업포기자 98년생 대졸 여자 백수

그 사람이 바로 나예요……

작년 10월에 미술관에서 계약직으로 잠깐 일한 뒤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가고 싶은 마음이 0.5%라도 있는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서류 탈락했고 이제 진짜로 어디에서도 주 5일로 일하고 싶지는 않다. 문제는 지금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 취업하고 싶지 않은 건지 아니면 내가 아주 명징한 정신으로 취업하고 싶지 않은 건지 잘 모르겠다는 점이다. 이 두 개는 매우 다르다.


사실 아무것도 안 한 것까지는 아니고 뭘 하긴 했다. 커미션 중개 사이트를 통해 그림을 그려주고 돈을 벌었다. 딱 한 번. 2만 원 받았는데 수수료 빼고는 만 팔천 원. 근데 요즘 일정이 이것저것 겹쳐서 그 뒤로는 안 받았다. 이번 달 안에 이걸로 10만 원은 벌어보려고 한다. (과연……)


그림 카페에 구직 포트폴리오를 올리고 웹툰 어시스턴트 지원을 하기도 했다. 원하는 곳에 메일을 넣었는데 아직 확인도 안 했더라……. 포트폴리오가 영 부족한 탓일까? 게다가 요즘은 어시스턴트를 직원으로 뽑지 외주로는 잘 안 맡기는 것 같았다. 슬픈 일이다. 이것도 어디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주는 학원을 다니는 게 좋을지 고민이다.


주 2~3일 나가는 아르바이트도 4곳 지원했다. 면접은 마침 오늘 1곳에서만 봤는데 과연 붙었을지는 확신이 없다. 한 51대 49로 떨어졌을 것 같다. 솔직히 넣긴 넣었는데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은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일하기 싫은데 돈은 벌고 싶은 마음이 크다. 돈이 부족하다.


글은 꾸준히 쓰고 있다. 그런데 영 속도가 안 붙는다. 1년 반 전에 출간한 웹소설 인세가 꾸준히 들어오고 있기는 한데…… 매우 미약한 수준이다. 뭐라도 빨리 출간해야 할 텐데 게을러서인지 마음처럼 쉽지 않다. 조급해지기만 하고 글 실력은 갈수록 퇴화하는 것 같다.


돈 공부도 불이 붙어서 하는 중이다…… 원래도 했지만 2023년에는 정말 게을러져 있었는데, 여행 다녀와서 통장 상태를 보니 도저히 눈 뜨고 못 봐주겠더라. 카카오톡 26주 적금도 새로 가입하고 미국 지수 ETF랑 주식 몇 개 사고 전체적으로 자산을 리밸런싱 중이다. 매일 가계부도 쓰고 토스 모으기도 시작했다. 수수료는 아깝지만 조금씩 여러 주식을 담을 수 있다는 점이 정말 좋다. 일단 사면 관심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게다가 매일 토스 알림이 시끄럽게 울려대서 확인을 안 할 수가 없다. 토스 들어간 김에 이것저것 건드려 보기도 하고 말이다.


여윳돈이 더 늘어나면 부동산 경매를 해보고 싶어서 공부 중인데 정말 어렵다. 난 평생 무주택자로 살았는데 부동산에 대해 뭘 알겠냐고? 임대차 3법도 맨날 까먹는다. (지금 또 까먹어서 또 검색했다. 계약갱신청구권제, 전월세상한제, 전월세신고제.) 청약을 먼저 공부해야 맞지 않나 싶어서 책은 샀는데(문화누리카드로 샀다. 대통령아 문화누리카드 충전 1월에 바로 해주면 안 되냐? 2월까지 기다리기 힘들어) 청약홈과 공공주택 알리미 어플을 깔아서 주변 행복주택 공고문을 확인해 보니 중도금으로 너무 많은 돈을 내야 해서 겁먹었다. 대출로도 된다고는 하는데…… 그것도 통장에 돈이 있고 나한테 직업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경매 먼저 vs청약 먼저 vs 둘 다 지켜보다가 원하는 매물 뜨는 거 먼저 vs 셋 다 현실가능성이 있긴 한 거냐? 의 싸움이다.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몰라서 영어 공부도 하고 있다…… <영어 필사 100일의 기적>(이 역시 문화누리카드로 샀다.)을 21일 차까지 썼다. 영어 유튜브 몇 개 보다 말았고 스픽를 매일 조금씩 하고 구글 리드어롱은 잠깐 하다 말았다. 디즈니 플러스를 피클플러스로 딱 1달만 결제해서 공주와 개구리, 엔칸토, 라푼젤 같은 걸 영자막으로 다시 봤다. 지금 보고 있는 건 라푼젤 시리즈(tv시리즈로 나온 것)인데 예전에 보다 말았던 거인데도 재밌다. 영자막을 켜고 보면 대충 이해가 가긴 하지만 실력이 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가끔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검색해 보는데 금세 휘발된다. 영어 실력이 몇 년째 제자리걸음인 기분이다. 미국 콘텐츠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왜 영어는 힘들까?


새해를 맞아 다이어리도 열심히 쓰고 있다. 친구들이 생일 선물로 몰스킨 블랙 하드커버 라지 데일리 다이어리를 사줬다. 이것만 쓴 지 4년째다. 일기를 매일 쓴 건 햇수로 5년째고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2020, 2021, 2022 내내 열심히 썼지만 작년은…… 조금 해이했다. 툭하면 밀리고. 빈 페이지들도 있고(이게 너무 자존심 상해서 지금까지도 수시로 채우고 있다). 이번 해에는 절대 그렇게 두지 않겠다고 다짐한지라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다이어리 형식도 조금 바꿨다. 앞에 말머리를 다는 식이다. 돈 얘기를 할 때는 <돈>, 일과 얘기를 할 때는 <일과>, 계획 얘기를 할 때는 <계획>. 그리고 매우 중요한 말머리가 <감사>, <감정>, <리뷰>다.

우선 <감사>는 그날 감사했던 일 세 가지를 적는 것이다. 원래 종종 행복한 일을 세 가지 적고는 했는데 넷플릭스에서 <헤드스페이스 명상이 필요할 때>를 수 차례 돌려보고선 감사한 일을 쓰는 게 좋겠다고 깨달음을 얻었다. 내게 있어 행복은 그 순간에 알아채기 위해선 매우 거대한 양이 필요한데, 감사는 조금만 신경을 돌려도 바로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정>은 심리 상담을 받으며 내가 얼마나 감정을 서술하는 데에 서투른지 깨달았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쓰려고 노력하려 한다. 감정 일기의 좋은 점은 각종 매체를 통해 많이 알랴져 있으므로 생략한다. 또 <리뷰>에서는 4Ls, 5F, KPT 등의 익히 알려진 회고 기법을 사용하여 하루의 전반적인 피드백을 해보고 있다. 예전에도 가끔 했지만 분기별로나 했지 매일 하는 건 처음이다. 이 방식으로 일기를 쓴 지 고작 5일 됐지만 제법 마음에 든다. 원래 쓰던 방식에 말머리만 붙였을 뿐이지만 생각 정리가 한결 수월하다고 해야 하나.

블러 처리하긴 했지만 주의 깊게 보면 앞에 말머리를 붙인 게 보인다. 올해 들어 친구들과 일기 챌린지를 시작했는데, 거창할 건 없고 일주일에 한 번 일기를 썼다고 인증하는 챌린지다. 사실 작년에도 했었는데 다 포기하고 나만 남아서 해체 됐었다. 하하하. 올해는 친구들이 꼭 일기를 함께 써주었으면 좋겠다. 이게 진짜 정신 건강에 좋단 말이다.


요즘 계속 돈 생각을 하다 보니 괜히 우울해질 때가 많다.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지만…… 왜냐면 진짜 심각한 건 저번 게시글이었으니까…… 왠지 해명하고 싶은데 내가 항상 저번 게시글처럼 우울한 상태로 있는 건 아니고 아빠와 아빠의 가족들 관련해서 무슨 일이 있으면 무슨 버튼 눌린 것처럼 괴로워한다. (댓글 달아주신 분 이 글을 보실지는 모르겠는데 감사합니다.)


아무튼 돈이 없는 것 자체는 괜찮은데(평생 없었으므로) 그 부산물이 나를 괴롭게 하는 것 같다. 얼마 전에 엄마랑 수다 떨다가 “엄마는 어릴 때에도 엄마 친구들 사이에서 제일 가난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 말이 참 무섭게 느껴졌다. 나도 친구들 사이에서 제일 가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도 30년이 지나도 친구들 사이에서 제일 가난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게 누구의 잘못은 아니지만…… 내가 친구들 사이에 있을 때 종종 느끼는 박탈감을 평생 느낀다고 생각하면 숨이 막히는 것 같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내 친구들을 앞으로 평생 계속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연말에 친구들이랑 강릉 여행을 갔는데 걔네들이 나보고 너는 왜 힘든 걸 얘기 안 해주냐고… 내가 너라면 힘들었을 것 같다고 외동이라 부담감이 크지 않냐고… 뭐 이런 식으로 걱정해 주고 고마운 얘기를 엄청 해줬는데 그 앞에서 아 말 잘했다 진짜 나 힘들어 죽겠다고 얘기를 털어놓을까 말까 하다가 결국 한 마디도 안 했다. 괜찮아 얘들아 난 익숙해 고마워…… 하기만 했다. 다음 날 되니까 애들은 취했을 때 일을 긴가민가하게 기억하고 있었어서(난 안 취했었다) 분위기에 휩쓸려 말하지 않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말 안 할 것 같다. 상담 선생님은 내게 힘듦을 남에게 털어놓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나는 나 자신을 어느 정도 가리고 위장해야 남한테 멀쩡해 보이는 것 같아서 도통 솔직해지기가 힘들다. 그래서 그냥…… 글로 쓰려고……


이 구렁텅이에 계속 머물러 있지 않게끔 정신 건강 관리가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계획.

1. 돈 관리 제대로 하기 (예산 지키고, 시스템을 구축하기) <왜 정신 건강에 들어가냐면 나는 돈을 허투루 쓰는 게 세상에서 제일 스트레스다

2. 일기 매일 쓰기 (특히 감정 일기)

3. 운동…… 아니 매일 산책이라도 꾸준히 하기


이렇게 쓰니까 바쁜 사람 같은데 많은 시간을 버츄얼 아이돌 보는 데에 쓰고 있다…… 그리고 1월에는 왜 이리 약속을 많이 잡아놨는지 벌써부터 힘들다. 내가 대체 왜 별로 안 친한 사람들이랑 약속을 잡았을까? 후회된다. 앞으로 이런 행동하지 않겠다. 이거 정신 건강 원칙 4번에 적어야 한다. 4. 불편한 약속 잡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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