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프다
새벽에 잠이 안 와서 브런치를 켰다.
어제는 뭐 했냐면 교보문고 가서 김사과의 <천국에서>(<풀이 눕는다>를 사고 싶었는데 없더라), 조지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 은희경의 <태연한 인생>을 샀다. 전부 신형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읽다가 읽고 싶어진 책들이다. 참고로 아직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다 읽지도 않았다. 변명하자면 그건 정말 하루에 한 페이지만 읽어도 머릿속이 꽉 차는 것 같은 책이라서……. 일부러 천천히 읽고 있다고 해두자.
신형철의 책은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내가 태어나서 한 번도 고민해 본 적 없는 주제로 고민하게 해 준다. 그러면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된다. 글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런 글이 잘 쓴 글이 아닐까. 어떻게 해야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걸까. 언젠가 브런치에 감상문을 쓰고 싶다. 엄두가 안 나기는 하지만. 좋은 글을 읽고 감상을 남기는 건 당연하게도 글 쓰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다.
김사과의 책은 부끄럽지만 오늘에서야 처음 읽었다. 지금까지는 남들이 칭찬하는 것만 들어왔었다. 내 취향이 아니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첫인상이 좋았다. 기본적으로 문장력이 참 좋은 작가구나 싶었다. <풀이 눕는다>가 서점에 없었던 게 다시 생각해도 아쉽다. 그것부터 읽어보고 싶었는데. 이북 미리 보기로 <풀이 눕는다>의 앞부분을 살짝 살폈는데 아무래도 이것부터 읽어야 할 것 같다. 그냥 느낌이 그렇다.
일요일에는 엄마와 함께 뮤지컬 <접변>을 봤다. 개막 첫 주라서 프로모 할인을 받아 단돈 만 원을 주고 감상했다. 끝나고서는 무대인사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내용도 재밌었다. 친절하신 지인 분께서 내 취향에 맞을 거라면서 추천해 주었는데 그 말이 꼭 맞았다. 이래서 주변에 사람을 잘 둬야 하는구나. 날 잘 아는 사람의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구나.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감사했다. 엄마랑 뮤지컬을 보는 게 처음이었는데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엄마랑 앞으로 더 많이 돌아다니고 싶다. (9월에 같이 홍콩을 가기로 했는데 기대된다. 엄마랑 처음으로 떠나는 해외여행이다.)
공모전 결과는 7월 말에나 나온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될 거라는 기대는 안 하지만. 그래도 결과가 나와야 원고를 들고 다른 출판사에 찔러볼 수 있어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속이 탄다.
너무 놀고만 있어서 근처 스터디카페 알바에 지원했다. 이것도 거의 될 대로 돼라 식으로 질렀다.
새삼 태평하게 살고 있구나…….
종종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은 불안이 덮치는 것 말고는 행복하다. 왜냐면 최근 3kg을 감량했고, 닌텐도 스위치 피트니스 복싱 Feat. 하츠네 미쿠를 시작했고, 제로 칼로리 아이스크림들이 맛있고(내 입맛에는 제로수박바가 제일이었다), 포스타입에 오타쿠 글을 쓰면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고, 다이소 미용 용품의 효과를 보고 있고(리들샷, 모델링팩 등), 새로 산 크록스의 지비츠가 귀엽고……. 적다 보니까 거의 다 돈 써서 기분 좋은 거네? 돈을 벌긴 벌어야겠다. 아자아자.
+
뻘하게 생각나는 오늘 있었던 일.
나는 대개 오후 7시에 엄마랑 함께 저녁을 먹는다. 근데 오늘따라 오후 5시쯤에 너무너무 배가 고픈 거다. 못 참고 써브웨이에 들어갔다. 로스트 치킨을 주문하는 내내 이걸 세트로 업그레이드할지 아니면 단품만 먹을지 고민했다. 식단 중이라 쿠키까지 먹기엔 양심이 찔렸지만 정말 심하게 배고팠다. 3주 넘게 군것질을 전혀 못하고 있어서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르기도 했다. 그래서 결국에는 세트를 시키려고 마음을 굳혔거든? 그때 메뉴판이랑 눈이 마주쳤는데, 로스트 치킨 세트가 10,300원이길래, 입맛이 뚝 떨어져서 곧장 단품만 샀다. 마음이 손바닥 뒤집히듯이 뒤집힌 거다. 나로서도 쿠키를 먹고 싶은 마음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그 짧은 사이에 감쪽 같이 허기가 사라졌을 리는 없을 테고. 그냥 10,300원이라는 돈을 주고 먹고 싶지는 않았다. 그랬더니 아쉽지도 않았다. 오히려 단품만 먹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도 쿠키를 먹지 않은 것이 뿌듯하다. '식단 중인데 쿠키를 먹지 않았다'는 사실보다는(이 마음은 기실 한 번 꺾인 것이나 다름없다), '한 끼에 10,300원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자랑스럽다. 이게 좀 황당하게 느껴지기도 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게 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