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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론 Apr 21. 2024

꽃을 주고 싶은 날

봄이 되어 벚꽃이 피고 지니 그다음을 형형색색의 꽃들이 뒤따라 나온다. 벚꽃의 밝은 분홍빛을 시작으로 조팝나무의  흰색, 라일락의 연한 보라, 철쭉의 진한 자주색, 길가 민들레의 노랑 빛까지. 세상의 채도가 높아지는 계절이다.


사실 나는 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식물을 잘 키우지도 못할뿐더러 꽃도 예쁘게 장식할 줄도 모른다. 그걸 잘 알고 있으니 그저 길가의 꽃들을 보며 감탄하는 정도가 내가 꽃을 즐기는 수준이다.


이런 내가 꽃을 샀다. 임용고시를 보고 합격해 발령이 난 친구를 만나러 가는 날이었다. 오랫동안 아이를 키우면서 교사가 되기 위해 수차례 임용고시를 보고 좌절하면서 힘들었던 친구였다. 드디어 시험에 합격하고 발령을 받아 친구가 근무하는 지역으로 찾아갔다. 너무 기뻐 직접 만나 축하해주고 싶었다. 선물과 함께 뭔가 마음 그득한 기쁨을 안겨주고 싶었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내내 생각했다. 이 환하고 벅찬 마음을 무엇으로 전해줄까. 역에 내려 친구와 만날 장소로 가면서도 내내 생각했다. 선물로는 뭔가가 아쉬웠다. 그러다 역 앞의 꽃집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앗! 이거다!


꽃집으로 홀린 듯 들어갔다. 주욱 훑어보고는 마음에 들어오는 꽃들을 골랐다. 이름은 모르지만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을 가득 담아 부탁드렸다.

“뭐 좋은 일이 있으신가 봐요. 표정이 정말 즐거워 보여요.”

“친구가 시험에 합격해서 축하해 주려고요.”

“어머, 진짜 기쁘시겠어요. 축하해 주러 오셨구나.”

꽃집 주인은 고른 꽃들을 예쁘게 포장해서 내 품에 안겨주셨다. 화창한 날씨와 벅찬 마음으로 꽃다발은 더욱 풍성하게 빛났다.


친구와 만날 장소로 가니 저 멀리 손을 흔드는 친구가 보였다. 나도 함께 손을 흔들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친구를 보자마자 꽃다발을 안겼다.

“축하해!”

“어머, 이게 뭐야?”

급작스런 꽃다발 선물에 친구는 놀라면서 얼굴이 환해졌다.

“어머! 내가 리시안셔스 좋아하는 줄 어떻게 알았어?”

친구가 놀라며 말했다.

“그래? 몰랐네. 그냥 내 마음에 들어오는 꽃들로 골랐는데 좋아하는 꽃이었구나!”

분홍색 리시안셔스처럼 친구 얼굴도 상기되었다. 더욱 좋아하는 친구의 표정을 보며 나도 덩달아 행복했다.



우리는 친구 집으로 가서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꾸러미를 풀고 그렇게 밤새 나누었다. 친구는 화병이 없다면서 유리꿀병을 가져와 꽃을 꽂았다. 진하진 않지만 은은한 꽃향기가 거실에 가득해졌다.


효율성을 따지자만 꽃만큼 비효율적인 선물이 있을까? 며칠 지나지 않아 시들어 버리고 어느 순간 쓰레기봉투로 들어간다. 그게 아쉬워 화분으로 선물하기도 한다. 하지만 경제적인 효율성을 떠나 가장 기쁘고 축하하는 마음을 온전히 담아 전달할 수 있는 건 꽃다발만 한 게 있을까? 꽃을 사지 않던 내가 친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미 친구에게 건넨 꽃은 시들어 버려졌겠지만 건네던 그 순간의 나의 마음, 친구의 기쁨과 행복감은 화분의 화초보다 훨씬 더 오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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