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시드니, 첫 커피는 롱블랙

<일주 일기>이면서 <1주 일기>이기도 합니다.

by 지수



4.

뜨거운 시드니, 첫 커피는 롱블랙



시드니의 아침, Pitt st




일교차가 심하다길래 무서운 마음에 겹쳐 입을 겉옷 두 개를 가져왔는데 이 작열하는 태양은 뭘까. 바람이 분다. 그런데 이상하게 뜨겁다. 호주여행 필수품으로 선크림이 있는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호주는 피부암 발병률이 전 세계 1위라고 한다. 뜨거운 건 다른 동남아 국가들도 마찬가지인데 왜 호주가 1위일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있다. 하나는 자외선을 막는 오존층이 파괴된 남극 가까이에 있다는 점. 또 다른 하나는 햇빛을 좋아하는 지역적 특성.



이번 학기, 역학 수업에서 들었던 내용 하나가 문득 떠오른다. 적도 부근에 위치한 나라들 중 의료 수준이나 소득 수준이 높아 피부암 진단율이 훨씬 높을 수도 있겠다. 이건 나의 뇌피셜이다.







뭐 여하간 더운 와중에도 카페는 찾아야겠다. 호주의 많은 카페들은 오후 4시에서 5시면 문을 닫는다. 숙소에서 씻지 않고 뛰쳐나온 이유 중 하나기도 하다. 시간은 오후 3시를 향해 달려간다. 마침 4시까지 하는 카페 한 곳을 찾았다.




cafe「Miss Carter」



cafe Miss carter
Miss Vegan & Black coffee




생각해 보면 이 날 눈 뜨고 첫 끼다. 어쩐지 미친 듯이 허기가 지더라니.

이곳의 비건 샌드위치 메뉴인 Miss Vegan과 롱블랙 한 잔. 샌드위치 빵 사이엔 연어, 아보카도, 가지 등으로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그나저나 비건인데 연어도 있나? 생선은 허용하는 베지터리안을 위한 것일까. 가리는 것 없는 내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몇 입 베어 물고서야 알았다. 그것은 연어가 아닌 연어처럼 보이도록 아주 잘 구운 당근이라는 것을. 당근에 후추 같은 것들이 흩뿌려져 있어서 더더욱 연어처럼 보인다. 당근인 것을 알았음에도 계속해서 연어로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Long Black



롱블랙은 뜨거운 물 위에 에스프레소를 부은 커피다. '그게 아메리카노 아니야?'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아메리카노는 에스프레소 위에 물을 부은 커피다. '넣는 순서만 다를 뿐인데 이름까지 따로 지어주다니 번거롭기도 하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



고압으로 추출한 에스프레소 위에는 얇은 거품막이 생긴다. 원두에서 자체적으로 나오는 이 크림을 크레마라고 한다. 에스프레소 위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크레마가 사라진다. 하지만 물 위에 에스프레소를 부으면 크레마가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크레마까지 즐기는 커피가 바로 롱블랙이다.



호주는 커피 문화가 굉장히 발달한 나라다. 커피에 대한 자부심도 있다. 그래서 그런 걸까. 세계적으로 가장 만만하게 입장가능한 스타벅스를 찾아보기 힘들다. 실제로 호주에 문을 연 스타벅스 중 2/3 이상은 철수했다고 한다. 하지만 오히려 좋다. 이 도시만의 특색 있는 커피와 개성 있는 바리스타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니까!

이런 모습이 어쩐지 내 고향 대구와 많이 닮았다. 대구에도 외부에서 유입된 커피 브랜드보다는 대구에서 시작된 브랜드들이 많다는 점에서 말이다. 어느 여행지에서건 ‘로컬(local) 함’이 중요한 나에게 이런 도시는 대환영이다. 남들이 다 방문하는 장소보다 지역 주민들이 애용하는 곳들을 방문해 그 지역 사람처럼 위장하는 것이 나의 여행 중 취미니까. 이번 여행에서도 끝없이 현지인 위장을 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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