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20kg

호주 일주 일기 : <일주 일기>이면서 <1주 일기>이기도 합니다.

by 지수


3.

시작은 20kg





위탁 수화물의 무게는 13kg, 기내 수화물의 무게는 7kg



옷 몇 벌을 넣으니 가득차는 소형 캐리어. 캐리어 위에 내 몸뚱이를 얹어야만 겨우 닫힌다. 터질듯한 짐들로 가득 찬 캐리어는 어쩐지 부풀어 있다. 집에 돌아다니던 온갖 샘플 화장품과 세면도구들 -그간 묵혀 뒀던 모든 것들- 을 다 소진하고 올 셈이다. 한국에서 자꾸만 필요한 것 같아 사들여서 뒷전이 되어버린 이전의 것들을.



인천공항 화장실에서 만난 글귀



이번 여행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올 때보다 적은 무게로 돌아오는 것이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 결과는 꼭 이 여행기의 끝에 쓰리라. 친구는 꼭 「비움의 미」를 실천하고 돌아오라고 한다. 확실히 이런 결심을 하고 나니 여행지에서 쓸 데 없이 무언가를 더 안 살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든다. 꼭 구매 전에는 세 번 이상 고민하고 사야지. 나에게는 한 번 고민으론 부족하다. 그 ‘한 번’을 제대로 고민하지 않고 ‘필요한데 사야지. 뭐, 어쩌겠어!’라고 항상 결론이 나버리니까.








배낭 하나와 캐리어를 지고서는 공항전철로 향했다. 시드니 국제공항에서 5개의 정류장만 거치면 도착하는 나의 첫 숙소. T8 트레인을 타고 네 정류장, T2 트레인을 타고 한 정류장. 최종 목적지는 Museum station. T8 트레인을 타고 네번째 정류장에서 환승을 위해 내렸다. 눈을 들어 전광판을 확인했는데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그리고 구글 지도를 다시 열어서 뒤늦게 확인한 「탑승 상태 유지」. 전철 문은 닫혔고, 떠났다.





‘환승도 뭐 이런 환승이 다 있나’ 싶었지만 조용한 중앙역의 풍경에 금새 기분이 좋아진다. 작은 돌들 위로 곧게 뻗은 기차 레일도 예뻐 보이고 푸른 하늘 아래 전선들도 감성적으로 느껴진다. 조용한 역에 울리는 방송 안내 소리도 좋고, 내 눈 앞에 있는 사람들도 다 좋아진다. 이게 여행의 마법인가. 6분 간의 중앙역 감상이 끝나고 다음 기차를 탔다.



시드니 Museum station에서 내려 올라가는



그나저나 역 이름이 Museum이라니. 꽤나 낭만적이다. 전시관람이 취미인 내게는 더더욱. 왜 Museum 역인지는 차차 알아봐야겠다.





「Maze Backpackers」. 시드니에서 5일간 묵을 숙소다. 어쩜 호주의 숙소들은 이토록이나 비싼지 혼자 여행오는 가난뱅이에게 하루 10만원이 넘는 장소는 무리다. 싼 곳 중 가장 괜찮은 곳을 찾아내야지. 하지만 꼼꼼함이나 섬세함과는 거리가 먼 내게 이마저도 무리다. 싼 곳 중 가장 ‘느낌이 좋은 곳’에 가야지. 그렇게 들어선 1인실 호스텔. 언제 빨았는지 모를 카펫, 낡은 옷장과 작은 협탁. 삐걱이는 침대와 알록달록하지만 한 쪽이 터져있는 이불. 이마저도 빈티지로 느껴지는 나는 심각한 감상주의자일지도.





어제 아침 이후로 거진 30시간을 씻지 못해 샤워라도 하고 나가야겠다. 아니야, 시간 아까운데 지금 당장 시드니를 느끼러 갈까? 그래, 머리는 감지 못했고 몸도 찝찝하지만 시간이 더 중요하다. 당장 뛰쳐나가서 시드니의 커피를 맛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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