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코로나 사태로 단축 운영되는 고속버스 시간을 체크하고 첫차인 6시 40분 버스에 올라탔다. 알람은 5시에 맞춰 놓았고 혹시 깨지 못할까봐 긴장을 해서인지 내가 일어난 시간은 알람이 켜지기도 전이었다.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옷가지를 챙기고 버스를 탔다. 고속버스로 1시간 거리인데다가 농장이 터미널과 멀지가 않아서 출퇴근식으로 일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교통비는 좀 나오겠지만 난 외박을 싫어하는 사람이라 24시간 카페도 이용하지 않아서 내 돈이 조금 더 깨지는 상황이 와도 이게 낫겠다 싶었다. 농사일을 하기 적합한 널널한 스님 스타일의 바지와 마라톤을 뛸 때 사용했던 목 마스크를 여벌로 가지고 갔다. 모자는 야구모자밖에 없었지만 토시와 장갑이나 장화, 큰 모자들을 농가주가 주로 준비해 놓는다고 농촌 일터에 갔다온 사람들의 글을 읽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사지도 챙기지도 않았다. 폭염주의보가 예상되기 때문에 썬크림을 챙겼다.
터미널에서 농협 직원을 만났다. 자신도 이렇게 농촌 중개 일을 하는 게 처음이라고 했다. 친절하고 성실한 사람처럼 보였다. 이렇게 나와 준 게 무척 고맙고 또 안심이 되었다. 나를 태우고 농가까지 간 농협 직원은 일단 일일 8,000원의 교통비를 수급한다는 신청란에 싸인을 하게 하고 농가주를 소개시켜 주었다.
농가주는 만화책에 나오는 도적같이 생겼다. 내 키가 158인데 눈높이가 나와 같았다. 썬크림을 한번도 바른적이 없는지 지나가는 다른 농부 아저씨보다 피부가 검붉었다. 처음에는 그 지나가는 아저씨가 농가주인줄 알고 인사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반갑게 맞아주면서 이런 데를 왜 왔냐고 나한테 물었다. 나는 일하려고요, 라고 대답했고 그 아저씨는 그냥 웃었다. 비웃음은 아니었지만 너 어쩌면 좋니 하는 웃음이었다. 그래도 악의는 없었다. 그 사람이 봤을 때도 내가 이런 일을 처음 한다는 티가 났던 모양이다.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일을 시작했다.
일터에는 이미 3명이 일하고 있었다. 여기 농가 현지에서 사는 여자 두 분, 그리고 남자 한 명이였다. 이 남자도 농협 소개로 온 것이라고 했다. 원래는 농협 소개로 우리 2명을 포함해 2명이 더 와서 도합 4명, 전체 6명이 일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나머지 두 명은 갑자기 연락두절이 되었다고 했다. 그 두 명은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첫째 날 작업은 감자 밭을 덮어 놓은 검은 비닐을 뜯는 일이었다.
전날 비가 와서 흙이 무겁게 변해 있었다. 장화는 없었고 장화가 있지도 않다고 했다. 나는 그나마 등산화를 신고 온게 다행이라고 여겼다. 스니커즈나 운동화를 신고 왔다면 신발이 쓰레기가 되었을 것이다.
퇴비와 비에 젖은 흙 사이를 좍좍 소리를 내며 가로 질러 갔다. 어머님 두 분은 장화가 없는 나를 안타깝게 여기셨다. 마치 5kg 무게를 발목에 묶고 운동을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불평하지 않았다. 여기 사람들은 7시부터 일을 시작했는데 난 고속버스를 타고 와서 8시반에 시작했으니 불평을 할 수 없었다. 운동이라 생각하고 감자밭을 덮은 검정 비닐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쉬운 작업일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비닐은 벗겨내기가 간단치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어머님 두 분도 이런 일을 처음 하시는 거라며 비가 와서 너무 무거웠다는 말씀을 하셨다. 팔과 다리 모두 얼얼했다. 햇빛이 강해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2시간이 지나갔다. 물도 휴식 시간도 없었다. 하늘은 더웠고 눈을 뜰 수 없을만큼 햇빛은 따가웠다. 아스팔트 위에서의 열기만 고통이라고 생각했는데 빗물과 퇴비 범벅인 흙 위에서의 더위는 그것보다 거셌다. 그래도 어쨌든 시간은 갔고, 우리는 밥을 먹으러 갔다.
이른 점심이었다.
11시 조금 전이라 식당은 아직 밥이 준비 중이라고 했다. 식당은 이 근처에서 농사나 건설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인지 간이 컨테이너 박스 안에 설치된 한식 뷔페 스타일이었다. 밥은 정갈했지만 열기에 지쳐서 아침을 먹지 않았는데도 입에 잘 들어가지 않았다. 물과 디저트로 나와 있는 요구르트만 잔뜩 들이켰다. 농가주가 소주를 꺼냈지만 마시는 사람은 오늘 같은 일은 처음이라는 그 어머니뿐이었다. 그 소주값의 1/4밖에 안하는 콜라같은 음료수를 꺼내 먹고 싶었지만 분위기를 보니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농협을 통해서 온 남자도 술을 마시지 않았다. 농가주는 그런 우리를 외계인 보듯 쳐다보더니 소주 반 병을 마시고 컨츄리에는 컨츄리 룰이 있다면서 운전대를 잡았다.
식사는 15분만에 끝났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장마 전 해가 뜨거운 날에는 적어도 1~2시간은 쉬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화장실도 못 가고 우리는 바로 두 번째 일터로 향했다. 첫번째 감자밭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곳이었고 식당에서는 5분 떨어진 곳이었다. 역시나 감자밭이었다. 그 곳은 검정 비닐은 없었지만 캐야 할 감자가 가득했다. 어머님은 물을 찾기 시작했다. 농가주는 물을 사가지고 오겠다고 나갔고, 우리 4명은 또 일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서로를 몰라서 말을 안한다기보다는 말을 하기에는 너무 후덥지근한 날씨였다. 게다가 밭은 500평인데 사람은 넷이니 모두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데다가 가만히 있는데도 숨이 마라톤 뛰듯 턱턱 막혀와서 대화를 할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얼마 후 사장은 2리터 짜리 생수 2병을 가지고 왔다. 컵도 없었고 얼음도 없었다. 빵을 먹으라고 했지만 아무도 먹지 않았다. 이런 날씨는 빵을 먹을 날씨가 아니었다. 나는 슬슬 이 사람이 자신이 말하는 것과는 다르게 농사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늘이 없는데 천막조차 없었고 햇빛이 너무 쨍쩅해서 결국 어머님 중 한 분은 계속 못하겠다고 말씀하셨다. 발목이 너무 아프다고. 너무 힘들다고. 다른 어머님은 아무 말씀도 안하셨다. 농가주는 인심 좋은 사람 표정을 지으면서 외국인 노동자들은 이런거 덥다고 안한다며 연신 베트남과 캄보디아 사람들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우리는 한국 사람이다.
농가주는 내가 1시간 늦게 왔기 때문에 1시간 더 일하라고 했다. 그러나 날씨가 너무 가혹했고 화장실을 못 간지 10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물을 마셔도 땀이 그 이상 나왔기 때문에 화장실 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그게 그렇게 좋은 징조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갑자기 딸꾹질이 시작됐고 멈추지 않았다. 나는 농가주에게 오늘 내 일당을 삭감해도 좋으니 다른 사람들과 같은 시간에 끝나게 해달라고 했다. 장화도 없고 토시도 없고 야구모자에 목 마스크 하나 있는데 일단 집에 돌아가서 내일 제대로 다 사가지고 다시 오겠다고 했다. 농가주는 놀란 표정을 짓더니 알았다고 했다. 만나자마자 자신은 공산주의자라며 레닌과 러시아 얘기를 하고 귀농 귀촌에 대해 정부가 하는 말들과 교육들은 믿지 말라며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던 사람이다. 자신의 직업은 원래 따로 있고 부인은 농협에서 일해서 이런 일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며, 땅 몇 평과 농사일 일 년에 얼마, 그렇게 해서 1년에 1억을 벌 수 있는데 그건 자신이 이 직업 말고 다른 직업이 있기 때문이라며, 정말 귀농을 하고 싶으면 정부 말 믿지 말고 자신처럼 다른 직업을 - 이 근처 대학 교수라고 했다 - 가지고 시작하라고 했다.
이 똑같은 레퍼토리가 4일동안 조금씩 더해지고 빠지면서 새로 오는 사람들 앞에서 반복됐다. 그 결과 내가 내린 결론은, 이 사람은 대학 교수가 아니라 아마도 아주 잘해야 시간 강사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었고(왜냐하면 내가 아는 교수들은,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농사 일을 할만큼 시간적 여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연구와 논문, 발표로 여전히 매우 바빴고, 학생들이 학교에 직접 출석하지는 않아도 강의를 하고 시험을 쳐야하기 때문에 아무리 이 농가주 주장대로 1년에 한달도 안되는 기간만 농사 일을 한다고 해도 지금같은 시간은 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부인은 농협을 다니는 게 아니라 농협 마트를 다니는 거고, 1년에 1억을 벌 수 있다고 했지만 현재 자신은 계속 적자이며(4일째 되는 날 남자에게 감자 수확이 계속 적자라고 말했다고 한다), 마치 오래 전에 귀농한 것처럼 말하지만 이 모든 걸 시작한 게 올해로 3년째일 뿐이라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첫 날에는 이런 자신의 귀농 얘기를 정부가 한다는 그 귀농 강의에서 하는 게 어떨까라고 나에게 묻길래 이론 이외에 이렇게 직접 경험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내가 답했는데, 4일째 되는 날에는 아예 자신이 이미 정부에서 하는 귀농 강의도 직접 한 적이 있다는 걸로 바뀌기 시작했다.
일이 끝나고 어머님 두 분은 들어가셨다. 그 중 일하는 틈틈히 농가주에게 힘들다 아프다 오늘 일 너무 힘들다라고 하셨던 분은 발목이 아프다고 하시더니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나오시지 않았다. 나머지 한 분은, 농가주 말에 의하면 정신지체 2급이라고 하는데, 원래 그 다른 어머님이 없으면 챙겨주는 사람들이 없어서 일에 안 나온다고 한다. 그런데 나와 그 다른 남자 한 명이 편안하고 좋다고 하시면서 다른 어머님 없이도 내일 또 나오시기로 했다고 한다.
저녁을 먹으러 갔다.
농가주와 농가주 부인, 농협 소개로 온 남자 분과 나 이렇게 4명이서 먹었다. 원래 저녁은 사 줄 필요가 없는데 자신은 정에 약하고 좋은 사람이라 저녁을 산다고 했다. 물론 그럴 필요가 없는데 일부러 시간과 돈을 써서 우리에게 저녁을 사주는 마음은 고마웠다. 말이 중간중간 바뀌고 언성이 올라갔다 내려가는 일이 잦고 묻지도 않은 담배세가 우리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 등등을 언급하며 자신은 흡연자라 애국자라면서 원래 비흡연자는 차에 동석시키지 않는데, 라며 그와 비슷한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말했지만, 그 말들이 싫지는 않았다.
그 말들이 어디서 온 것이든 - 우월감이든 동정심이든 관종이든 열등감이든 자격지심이든 허세든 뭐든 간에 - 어쨌든 멀리 수도권에서 온 우리들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해서 진심으로 고마웠다. 하지만 나는 딸국질이 멈추지 않았고 속에서 약간의 구토기가 느껴져서 저녁보다는 콜라나 이온음료를 마시고 샤워 후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농가주는 자꾸 외국인 노동자들 이야기만 하며 전혀 쉬지 않은 우리들을 자신이 없을 때 농땡이를 친 사람인 것마냥 말했다. 저렇게 사람을 못 믿는 사람이라면 진짜 그냥 설렁설렁 일할 걸 괜히 신물이 올라오도록 일했나 하는 후회가 약간 들려던 찰나, 어쩌면 이 사람은 자신이 트랙터같은 기계는 몰았을지 몰라도 (게다가 트랙터 안에는 놀랍게도 에어컨이 나온단다) 직접 밭에 씨를 뿌리고 수확을 한 적이 없어서 일의 강도를 전혀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해 그 후회를 물리쳤다. 그래, 모를 수 있지. 모르니까 물이나 천막의 중요성, 간식도 빵을 사오는 실수를 하지. 그리고 그게 실수인지도 모르는 거고. 한편으로는 저렇게 현실 파악이 안되는 상태에서 앞으로 사람들을 어떻게 부릴려고 하는건지 조금 걱정이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2리터짜리 생수를 돌아가며 마실 수 없다고 일회용 컵을 사 오라고 두 어머니 중 한 분이 그렇게 말했는데도 결국 사오지 않았다. 찌그러진 일회용 컵 2개만 꺼냈을 뿐이다. 3일 일하기로 했는데 벌써 남은 2일이 염려되기 시작했다.
원래는 빨리 돌아가려고 했다.
고속버스 시간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코로나로 인해 단축 운영하는 버스는 이제 저녁 6시반과 7시반, 이렇게 2대만 남아 있다. 1시간 안에 도착하니 먼 거리는 아니다. 나는 그만 들어가서 내일 일할 때 필요한 토시나 넓은 챙 모자 등등을 사오겠다고 말하고 일어서려고 했다. 그런데 농가주가 그렇게 출퇴근을 할거면 갑자기 내일부터 일을 나오지 말라고 했다. 아니 그럼, 그 얘기를 처음부터 내가 오기 전에 하지 지금 하루 끝나고 하는 건 뭐야. 3일동안 출퇴근을 할 거라는 걸 미리 농협 측에도, 농가주 측에도 말하고 시작했었다. 그들은 알았다고 했었고 나도 그래서 모든 게 완벽한 소통 속에서 시작된 거라고만 믿었다. 내가 오늘 일한 게 마음에 안드시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건 아닌데 출퇴근을 하면 시간이 너무 뺏긴다며, 차라리 찜질방에서 자라고 했다. 찜질방비를 자신이 주겠다면서. 외박을 싫어하는 나는 찜질방이고 어디고 밖에서 자는 게 싫었지만, 그렇다고 3일 일한다고 해 놓고선 하루만 하고 가는 건 더 싫었다. 어차피 딱 3일인데 뭐. 3일만 하자. 여자 혼자 온 것도 있고 하니 (아마도 불쌍해서) 찜질방비도 준다는데 뭐, 그래도 이렇게 배려해 주는 게 어디야.
혼자 온 나를 두고 농가주 부인은 귀농에 관심있냐, 어떻게 여자 혼자 왔냐, 특이하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마음씨 좋은 언니나 선배처럼 챙겨주었다. 그 챙겨줌에 가식은 없어서 진심으로 편안함을 느꼈지만, 특이하다라는 말이 이상하다라는 말과 같은 말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대단하다라는 말도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연장선이라는 것도. 그래도 기분이 상하다거나 불쾌하지 않았다. 내 나이면 일단 일반적으로 다들 결혼을 하고 애가 적어도 하나는 있을 나이다.
연예인 송은이나 김숙, 이다혜 기자나 기타 방송에 출연하는 사람들이 언젠가 ‘우리들이 결혼을 선택적으로 안하고 싱글의 삶을 만드는 첫 한국 여성 세대다’라고 말한 걸 기억한다. 그래서 후대에 같은 선택을 할 여성들에게 원하든 원치 않든 ‘사례’가 되어 있을 거라며, 그 ‘사례’가 어찌 되는지 의미가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첫 세대 주자로서 그 역할의 중요성도 내비쳤다. 동의한다. 결혼을 ‘못’한 게 아니고 ‘안’한 세대. 남자에게 선택을 받지 ‘못'해서 결혼을 ‘못’한 세대가 아니라 그냥 굳이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결혼을 ‘안’한 세대. 오히려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결혼 생활의 장점과 단점을 잘 알고 있어서 결혼을 왜 안했냐고 묻지도 않았고 설령 묻는다 하더라도 무척 조심스러워 했다. 그러나 어서 결혼하라고 결혼은 너무 좋은 거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가정의 무게는 직장의 무게보다 무겁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다.
농가주는 자꾸 내 나이를 물었고, 숫사자 암사자 이야기를 하면서 이 곳에서는 숫사자들을 다 놀고 암사자들은 다 나와 일을 한다며, 도시에서는 여자가 그렇게 힘들게 밖에서 일하고 들어가면 남자가 밥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해 놓고 기다리겠지만 여기는 그렇지 않다며 올바른 여성상이 무엇인지 알겠지 않냐고 나에게 반문했다.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말로는 공산주의자에 평등주의를 외치지만 사실은 완전 반대인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만 했다. 실제로 동독이나 CIS 출신 여자들과 서독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란 유럽 여자들은 남녀 평등에 대해 무척 다르게 배우고 느끼며 살았다는 걸 종종 느꼈었다. 재밌게도 남녀평등이 명확했던 사회는 공산주의 사회였다. 농가주는 자기 편리한 대로 이 이론에서는 이것만 빼고, 저 이론에서는 저것만 빼서 마음에 드는 것만 믿는 모양이었다. 밥을 먹으면서 소주를 시키더니 비우기 시작했다. 운전대를 잡아야 해서 부인이 말릴 줄 알았는데 원래 이런 사람이라며 오히려 같이 소주를 마셨다.
저녁을 먹고 농협 소개로 온 다른 남자는 드디어 쉬러 가고, 갑자기 외딴 곳에서 1박을 하게 되어 아무것도 없는 나를 위해 찜질방에 데려다 주고 (불쌍하니까) 속옷을 사주라고 농장주가 부인에게 말했다. 24시간 찜질방은 저녁 식사를 한 곳에서 약 3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몸에서는 땀 냄새와 퇴비 냄새가 범벅인데 근처에 맛있는 커피숍이 있다며 디저트로 커피를 마시자고 했다. 신물이 올라와 저녁도 거의 먹지 못했는데 거기에 커피라니, 아무리 커피를 좋아하는 나라도 마시면 바로 토할 것 같았다. 빨리 씻고 콜라나 환타나, 아니면 포카리같은 이온 음료가 먹고 싶었다. 딸국질이 계속 났다.
가까운 시장에서 내 속옷을 사고 근처 커피숍에서 자리를 잡은 후 농가주는 계속 내 나이와 내가 무엇을 했고 내 직업은 무엇인지, 그리고 귀농과 귀촌에 대해 정부가 하는 말은 거짓이며 그게 현실적으로 어떤지 또다시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분명하게 말하지만 나는 귀농과 귀촌에 대한 그의 열변이 싫지 않았다. 같은 정보라도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의미 파악이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듣고 싶었다. 농가주의 말은 분명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었다. 다만 4일동안 (나는 결국 3일이 아닌 4일을 일하게 된다) 그 내용이 조금씩 살이 덧붙여지고 빠지는 과정을 보면서 과연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 건지 그 신뢰성에는 조금 의구심이 들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경청하고 또 경청했다. 그러다가 나에 대해서도 무슨 일 하냐, 무슨 일 했었냐, 어디 사냐라고 묻길래 사실대로 말했더니 - 갑자기 나보고 부자라고 말했다. 그리고 표정이 변했다. 아마 내가 자신이 말하는 공산주의나 레닌이나 러시아나 담배세나 기타 등등에 대해, 가만히 듣고 있기는 했지만 분명 반박하려면 충분히 반박할 수 있는데 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알아서 그런 건지, 그도 아니면 오늘 내내 혼자 농사 일 하러 온 결혼 ‘못’한 불쌍한 도시 노처녀가 한순간에 브루주아 고학력 여성이 되어 있어서 그런건지, 묘하게 틀어진 얼굴을 보면서 알았다. 아 찜질방비 못 받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