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ii): 커플,한국 대학생 2명, 미국 대학생1명

by 지인

2일 (ii)


사람 많은 곳에 사건사고는 필수라더니, 결국 경찰이 오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그리고 농가주가 그 와중에 나에게 뒤집어 씌우려 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농촌에서 일하는 4일 중 2번째 날은 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총 8명이 일했다.

어제도 일한 나, 어제도 일했던 (농협 중개로 온) 남자, 어제도 일했던 정신지체 2급 어머니, (다른 어머니는 힘들다고 안 나오셨다) 이렇게 기존 인원 3명에 새로운 인원 5명 - 근처 대학에서 온 21살 남학생 2명, 20살 남자 미국인 1명, 그리고 서울에서 온, 역시 귀농과 귀촌에 관심이 있고 농협 중개로 온 한 커플이었다.



장소는 어제 첫날 오후에 일했던 감자밭이었다.



먼저 트랙터로 밭을 갈아엎은 후 퇴비 범벅 땅 속에 묻혀 있는 감자를 꺼내 담아야 했고, 그렇게 담은 감자를 다시 종이 박스에 담아 트럭에 옮겨 실어야 했다. 일은 단순했고 사고의 여지는 없어 보였다. 단지 축축한 똥냄새 가득 땅 속 감자들을 꺼내기 위해서는 계속 허리를 구부려야 했고, 쪼그려 앉아야 했고, 그 마저도 힘들면 무릎을 굽혀 흙바닥에 닿거나, 주저앉아 엉덩이로 흙바닥에 닿고 주워야 했다. 그것뿐이었다. 그러나 사방에 퍼져 박혀있는 감자들을 꺼내기 위해서는 그렇게 잠깐 흙바닥에 닿는 무릎이나 엉덩이조차도 5초 이상 있을 수 없었다. 나는 속으로 스쿼트 만 번을 외쳤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주변에는 나무 그늘 하나 없었다. 그나마 날씨가 어제보다 조금 덜 덥다는 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밭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7시 반 조금 전이었다. 어제 보았던 남자는 벌써 나와 일을 하고 있었다. 감자밭에서 걸어서 5분 정도 되는 거리에 농가주의 (물은 안 나오지만 에어컨과 와이파이는 있는) 컨테이너 박스가 있는데, 농가주가 무료이니 거기서 자라고 해서 1등으로 도착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사람을 경계하는 어머님은 다행히 나와 그 남자는 편안하게 생각하셨다. 우리는 각자 한 줄씩 앉아 감자들을 파서 플라스틱 박스에 담기 시작했다. 파리들이 웽웽거렸다. 10분. 20분이 지났을까. 차 2대가 들어왔다. 한 차에서는 커플이 내렸고, 다른 차에서는 남자 세 명이 내렸다. 농가주에게 무슨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더니 들어와서 바로 한 줄씩 잡고 감자를 캐기 시작했다. 커플은 커플이라 같이 움직였고, 21살 대학생 2명은 친구 사이라 같이 움직였고, 미국 남자애 하나는 혼자 와서 혼자 움직였다. 이렇게 도합 8명은 각자 감자를 캐서 플라스틱 박스에 담았다. 인사를 하고 뭐 이럴 시간도, 공간적 여유도 없었다.



또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플라스틱 박스가 얼마 남지 않았다. 스쿼트 만 번을 외치고 시작했는데도 불구하고 발목과 무릎, 허벅지, 허리가 우두득거렸다. 쉬고 싶었다. 그런데 어머님이 쉬지 않으셨다. 물도 드시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엄마보다 10살이나 젊은 어머님은 외모로는 우리 엄마보다 30살은 더 많아 보였다. 그런데도 쉬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런 분 앞에서 내가 먼저 쉬겠다고 나갈 수는 없었다. 고개를 잠시 들어 새로운 사람들을 보았다. 커플은 함께 도란도란 감자를 줍고 있었고, 여자는 벌써 힘들어 보였다. 저 둘은 같이 일하는 데도 속도가 느렸다. 친구로 보이는 남학생 2명을 봤다. 21살 특유의 발랄함과 유쾌함을 발산하며 함께 감자를 줍고 있었다. 커플보다는 속도가 빨랐다. 혼자 온 외국 남자애를 보았다. 한눈에 봐도 자기 스스로 온 게 아님이 분명했다. 나는 다시 스쿼트를 생각하며 일을 계속했다.




"택배 보내 봤어요?”



음?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농가주가 다가와 있었다. 나보다 먼저 대답한 것은 커플로 온 여자였다. 넓은 농부 모자를 눌러쓰고 감자만 캐느라 몰랐는데 어느새 나와 2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감자를 캐고 있었다. 나도 그 여자에 이어 바로 그럼요 보내봤죠,라고 대답했다. 농가주는 지금 플라스틱 박스를 다 써서 종이 박스를 만들어야 하는데 누구한테 시킬까~ 하다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래도 하루 선배라면서. 나는 오늘 일을 시작한 여자에게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면서 두 팔을 하늘로 벌려 예~! 를 외치고 일어났다. 정말이지 허리가 너무나도 아팠다. 그 여자도 아프겠지만, 그래도 이틀 연속 쪼그리고 감자를 주운 나보다는 조금 더 견딜만할 것이라 믿으면서. 나보다는 훨씬 어려 보이니 젊음의 파워를 믿어보자면서(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나보다 1살 어렸다). 농가주는 감자밭에서 나와 도로 쪽으로 올라오라고 했다.




감자밭 도로에는 차가 4대 주차되어 있었다.

왼쪽에는 농가주 소유의 소형차, 그 뒤로 한 5m 떨어진 곳에 농가주 소유의 트럭.

어제도 일했던 남자의 차와 오늘 온 커플의 차는 도로 오른쪽 맨 끝 안쪽 언덕 위에 나란히 주차되어 있었다.



그 트럭에 햇감자 글자가 박힌 하얀 종이박스가 9개 묶음으로 있었다. 땅바닥에도 같은 종이박스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농가주는 나에게 종이 박스 만드는 법을 설명했다. 땅바닥에 놓여 있는 9개 묶음 한 세트를 트럭으로 옮겨 테이핑을 했고, 다 된 것은 그 옆 땅바닥에 놓았다. 그러면 박스가 필요한 사람들이 다가와 가지고 가서 감자를 담았다. 쉬운 작업이었다. 게다가 비록 계속 서 있는 작업이다 하더라도 쪼그리고 허리를 숙일 필요 없는 작업이었다. 감자 캐는 것보다는 훨씬 쉬웠다.



또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쉬는 시간이 되었다.



하얀 트럭 위에서 박스를 담던 나는 그제야 내가 만들었던 택배 박스 옆에 있는 작은 두 박스에 시선이 갔다. 한 박스에는 테이핑에 필요한 여분의 테이프들이 있었고, 그 옆 박스에는 오래된 쓰레기들과 간식 빵들이 있었다. 그리고 랄프 로렌 하늘색 가방이 있었다. 커플로 온 여자의 것임이 분명했다. 나는 내가 가지고 온 등산 가방을 생각했다. 내 가방은 트럭 옆 감자밭으로 들어가는 풀 위에 내가 신고 온 등산화 옆에 있었다. 어제 일하셨던, 그러나 오늘은 아프다고 안 오셨던 어머님이 놓고 간 장화를 신을 수 있어 벗어 놓은 등산화였다. 저렇게 흙과 퇴비 진흙 범벅 등산화를 어떻게 닦아야 하나 벌써부터 걱정이 됐는데 그 옆에 있는 내 가방도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이 여자의 가방은 이렇게 예쁘게 트럭 위 박스 안에 깨끗하게 있는데 나는 저 똥내 나는 등산화 옆에 내 가방을 흙더미 위에 올려놨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내 가방과 신발 둘 다에게 미안했다. 주인 잘못 만나서 고생이네. 남학생들 것으로 보이는 가방들은 내 가방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때는 그 여자의 가방이 경찰을 부르게 될 줄 아무도 몰랐다.





쉬는 시간이 끝났다.

2리터 생수 얼음물, 편의점 얼음컵과 커피들이었다.

커피는 탈수를 일으키는 음료다.




사람들은 다시 감자를 캐러 돌아가고 나도 다시 트럭에 붙어 택배 박스를 테이핑 했다. 그때 농가주가 다가오더니 택배 박스는 충분히 되었고 이제는 박스들을 옮겨 담아야 하니 나 보고는 가서 미국 남자애를 1대 1 코칭을 해주라고 했다. 다들 쪼그리고 앉아서 흙 아래 파묻혀있는 감자를 꺼내는 중에 이 미국 남자애는 서서 발로 휘휘 흙 위를 쓸고 그 위에 올라온 감자들을 박스에 넣고 있었다. 하루 먼저 온 사람에게 1대 1 마킹을 시키다니. 나는 그런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남자애는 미국 국적이긴 하지만 한국말도 했고, 나 역시 그 남자애처럼 그냥 일을 하러 온 사람일 뿐이다. 게다가 고작 하루 먼저 온 내가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지적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농가주지, 내가 아니다. 게다가 지난 이틀간 보아 온 농가주 성격을 그동안 내가 겪었던 많은 사람들과의 경험을 비교해 볼 때 분명 내가 이 학생을 1대1 마킹하면 이 학생이 잘하든 못하든 분명 못한 부분을 들춰 나에게 뭐라고 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이 학생은 자신이 오고 싶어서 온 사람이 아니고, 햇볕은 이제 거세지기 시작했으니 분명 스스로 온 사람들보다 더 빨리 지칠 것이다. 그리고 농가주는 분명 이 학생의 일하는 방식을 내 탓으로 돌릴 것이다. 안 들어도 오디오, 안 봐도 비디오. 나는 사양했다. 하루 먼저 온 내가 뭘 알겠냐며. 저 애가 고작 하루 먼저 온 내 얘기를 듣기는 하겠냐며. 그랬더니 자기 친척이라고 말하고 가르치라고 했다. 택배 박스를 두고 내려갔다. 지적하는 척이라도 해야 될 것 같아서 일단 그 미국 남자애 쪽으로 내려가 그렇게 하면 땅 속에 있는 많은 감자들을 놓치게 된다며 손으로 뿌리가 보이는 풀들을 파고들어 올리면 그 밑에 감자들이 주렁주렁 있는 걸 보게 될 거라고 했다. 미국 남자애는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일어나서 감자밭 끝 쪽으로 자리를 옮겨 감자를 파서 담기 시작했다.




농가주는 21살 대학생 남자 두 명과 하얀 트럭 위의 물건들을 치우더니 감자밭 안으로 차를 몰고 들어와 채워진 박스들을 담기 시작했다. 들리는 소리는 트럭 소리와 감자 박스를 그 위에 담는 소리뿐이었다. 중간중간 빈 박스가 필요하면 내가 다시 올라가 빈 박스를 만들었고, 다시 내려와 나도 감자를 담았다. 말할 기운도 없는 날씨였다. 축축한 흙 위로 열기와 똥냄새가 올라왔지만 그래도 어제보다는 날씨가 조금 나았다. 그 사실 하나만이 위안이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미국 남자애가 쪼그리고 감자 캐는 것에 지쳤는지 일어서서 발로 휘휘 흙을 좌우로 쓸었다. 나는 다가가 같이 옆에 앉으며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그러면 감자가 많이 나오지 않는다면서 같이 감자를 캐기 시작했다. 쪼그리고 앉아서 하기 힘든 건 알겠는데 그러면 그냥 차라리 똥냄새 때문에 좀 거슬리기는 해도 엉덩이로 앉아서 감자를 캐는 게 좋을 거라고. 남자애는 일단 드디어 말동무가 생겨서 신난 것 같았다. 미국이라면 자신이 직접 직업을 알아볼 텐데 한국말이 약해서 엄마가 대신 전화해준 거라는, 묻지도 않은 말을 하며 팥빙수가 먹고 싶고 서울에도 놀러 가고 싶은데 코로나 때문에 못 가서 아쉽다는 말을 했다. 그냥 전형적인 만 19살, 20살 대학생 남자애였다. 나보고 대학교 2학년, 아니면 3학년이냐고 물었다. 아이고 고마워라.




그리고 역시. 농가주가 소리를 질렀다.

일을 그렇게 하면 어쩌냐고, 놀러 왔냐고, 그게 일하는 거냐고.



하아. 분명 미국 남자애는 나와 같이 감자를 캐면서 속도가 더 붙었고 박스 안 감자 수는 많아졌다. 나는 예상한 일이라 놀라지는 않았다. 당신이 하는 소리를 예의 바르게 조용히 다 들어줄 수는 있지만 내가 하지 않은 일을 한다고 뭐라 한다면 그건 선을 넘은 거다. 그리고 그건 내가 단 하루를 일한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 없는 선이다.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일 가르치라고 했지 누가 놀라고 했냐고 욕만 안 들어간 욕을 잔뜩 질러대는 농장주에게 “논 적 없습니다 없는 말로 몰아치지 마세요!”라고 같이 소리 지른 후 다시 감자밭 끝 쪽으로 갔다. 그러게, 내가 1대 1 마킹 안 한다고 했지.








점심시간.

어제 먹었던 그 컨테이너 박스 안 한식 뷔페식당이었다. 밥은 맛있어 보였지만 나는 이온음료가 먹고 싶었다. 어머님 옆에 앉아서 물을 챙겨드렸다. 어머님은 요구르트를 4개나 더 가지고 오시더니 나에게 주며 마시라고 하셨다. 어제도 오늘 아침도 먹은 게 없는데도 밥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차라리 이렇게 에어컨 나오는 곳에서 10분만 가만히 앉아 있고 싶었다. 농가주는 또 소주를 들고 와 사람들에게 마시라고 했다. 아무도 마시지 않았다. 농가주 혼자 소주를 비웠다.





15분 만에 점심시간이 끝났다.

또 쉬는 시간 없이 바로 복귀.





누구는 트랙터를 몰며 감자들 캐기 쉽게 밭을 갈아엎고,

누구는 계속 감자를 꺼내 박스에 담았으며

누구는 농가주를 도와 감자 박스를 트럭에 옮겨 실었다.




빈 박스를 달라는 소리에 다시 올라갔다.

내 뒤로 커플이 따라왔고, 농장주가 트럭으로 감자를 다 옮기고 다시 트럭을 몰고 내 옆으로 왔다.




이때 남자가 농가주에게, 여자 가방에 있던 핸드폰이 깨지고 휘었다며, 트럭이 밟고 지나간 것 같다고 말했다. 사람이 밟아서는 이런 식으로 핸드폰이 부서질 수 없다면서. 농장주 표정에 당혹감이 지나갔다. 일단 알았다고 했다.





그 뒤로 경찰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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