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게 살길 바란다.'
'착하게만 컸으면 좋겠다.'
'사람은 착해.'
착하게 살고 싶다.
모두가 선했으면 좋겠다.
착함은 늘 재화의 가격 택처럼 삶에 붙어다녔다.
착함과 선함 두 가지의 도덕적 가치관을 마음에 품고 노력한다. 남들도 그러길 희망하며 선한 영향력이 소소하게 퍼져가기를 소망하며 살아간다.
착한 것과 착하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만약 잦은 실수로 누군가 피해를 보고 있지만 "그래도 사람은 착해."라고 말할 때 정말 그 대상은 착한 것일까. 어떤 기준으로 '착함'으로 포장해버리는 걸까.
그동안 착하다고 말했던 대상들의 착함은 어느 기준으로 판단했는지 의문을 가져본다.
착함의 모호한 기준에 나는 부합되는 사람인지.
착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 인지.
늘 '노력 중'이란 단어에서 머물러 있지는 않은지.
"노력이라도 하잖아?"라며 합리화하며 명확하지 못한 어중간한 존재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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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노력.'
보이지 않는 얇은 선을 나 자신에게 둘러치고 영역 안에서 선함을 지키려 노력한다. 그렇지만 얼기설기 둘러진 선의 약함 때문인지 선은 종종 침범 당하고 무시당해 끊어지기 일 수이다.
-
'선을 넘는다. '
모든 것이
물컵의 물이 쏟긴 듯 선을 넘고 왈칵 쏟아진다.
선을 넘으면 그동안 선함과 착함을 지향했던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어 버린다.
선을 넘는 건 악한 것일까. 악함이 있었기에 선을 넘었나, 되려 선의 문제는 아니었을까. 그 기준의 잣대는 도덕이란 마지막 단어 앞에서 심판을 의뢰하면 해결될까.
다시 선을 긋고 내 선을 침범하지 않기를 바라며 나는 다시 선함과 착함의 노력 시작점 앞에 서있다.
선악의 원초적인 본질을 고민한 탓인지 머리가 띵하고 입안이 말라간다. 태초 우주의 시작부터 시작됐을지 모를 영겁의 기나긴 시간 동안 끝나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선악의 치열한 경계선 대립 한가운데 들어간 후유증치고는 약소한 고통일 것이다.
선악의 옮고 그름을 우주의 티끌보다도 작은 먼지 알갱이 같은 존재가 고뇌한들 풀 수 없는 문제라 푸념하며 머리를 일으켜 냉장고 속 퇴근길에 모셔온 에일맥주를 꺼내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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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칙...!'
생각의 종료를 알리는 알림음이 귀에 울린다.
한 모금.
미간이 좁혀온다. 입속 혀 위로 쌉싸래한 황금빛 탄산이 유유히 흐르며 목 안쪽 검은 구멍으로 깊숙이 떨어진다.
씁쓸하다.
혼자만의 선과 악 첨예한 대립.
판단의 모호한 선.
선과 선으로 이어지는 무수히 많은 관계들.
꼬이고 얽힌 선.
그 선 사이를 넘나들며 줄타기 하듯 위태로워 보이는 객체들.
악하면 마음이 편해질까.
선함의 노력을 포기하면 오히려 좋아질까.
지키려 노력하기 때문에 힘이 든 게 아닌지 의문이 든다. 애초에 선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시도조차 악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란 생각에 성악설에 의견을 보태고 싶다.
"아차..!"
또 무의미한 선악의 경계선으로 뛰어들어갈 뻔했다. 기나긴 꼬리의 생각을 확실히 끊기 위해
한 모금 가득, 더 많은 쌉싸래함을 넘긴다.
에일맥주의 쌉싸래한 뒤 여운의 잔향이 머릿속 중앙에서 오래 맴돈다.
탄산의 개운한 맛과 홉의 쌉쌀한 맛이 공존하는 에일맥주의 장점도 어느 쪽이든 지나치게 기울지 않고 두 양면에 걸쳐서 있는 모호한 존재 같아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선악 판단의 모호함, 존재가 불투명한 고민은 목젖을 타고 넘어 위장으로 흘러들어가면서 삭혀진다.
마지막 한 모금.
애석하게도
이마저도 모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