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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쁨작가 마드쏭 Oct 22. 2022

불안을 없애 준 한마디

인생은 NO답. 나와 당신을 응원합니다. 

"제가 앞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전공이 정해지는 대학생이 되면 더 이상 진로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도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대학생이 되자 고민은 깊어졌다. 오히려 16년간 학창 시절의 최종 결과물이 나와야 되는 현실이 가까워져 마음은 더 조급했다. 그래서 선배들이나 교수님의 상담을 받았다. 

'진로에 대한 걱정은 취업하면 끝나겠지?' 

착각이었다. 길어지는 수명에 비해 정년은 큰 변화가 없었고 공무원 연금도 부모세대처럼 든든하지 않았다. 정년까지 한 직장에 계속 다닐 것인가도 고민되었고 퇴직 이후의 삶도 준비해야 했다. 



 칠순이 넘어서도 회사에 다니시는 아버지. 몸이 건강하시니 일할 수 있을 때까지 하신다고 말씀하시지만 그 연세에 육체적 노동이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퇴직 이후 일하지 않아도 돈이 들어오고 건강하게 여행 다니면서 의미 있는 일도 하며 살고 싶다. 그러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될까? 고민되었다. 직장에서 승진 가점으로 권장하는 자격증들을 따고 아이들이 커가면서 같이 하고 싶은 것들의 관련 자격증들을 취득하기도 했다. 그러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는 시기가 되자 마지막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그땐 퇴직 이후를 준비해야 되는 기분이었다. 맞벌이 소득에서 수입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휴직 3년을 계획했지만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을까? 생활에 어려움은 없을까?' 배우고 싶은 것들이 많은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치면 좋을지 고민했다. 마침 코로나 19까지 확산되어 다니던 문화센터도 모두 끊고 외식은 월 1회 배달음식으로 줄였다. 아이들이 배우고 싶어 하는 것은 가능한 방과 후 수업 월 2개씩으로 제한했다. 그리고 체험단으로 외식비나 아이들 도서 구입비라도 줄여보고 싶어 블로그를 시작했다. 






 온라인으로 쇼핑만 했던 내가 블로그를 통해 많은 온라인 강의들을 접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노후엔 무엇을 하며 살까?'를 넘어 '내가 진짜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를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지금 제대로 잘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누군가가 '넌 이 일을 가장 잘해. 너의 길은 이거야. 이 방법으로 하면 성공할 수 있어.'라고 분명히 말해주길 바랐다. 그래서 온라인에서 알게 된 여러 코치들에게 물었다. 옳은 길을 알고 싶었다. 그렇게 여러 사람들에게 묻고 있는 나를 보며 '나는 왜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남에게 답을 찾으려 할까?' 답답했다. 




 내가 나에 대해 잘 알면 남에게 답을 구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에니어그램을 배웠다. 나 자신에 대해 좀 더 이해하고 싶었다. 에니어그램을 배우며 나를 가르쳐준 선생님과 일대일 상담을 했다. 그때 나를 미로에서 벗어나게 해 준 한마디


선생님 안에 이미 답이 있어요.



 눈물이 났다. 내 생각대로 자신을 믿고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를 믿지 못해 이 사람 저 사람 의견을 구하러 다녔다. 그렇다고 그들이 해주는 말을 적용하지도 않았다. 다시 다른 이를 찾으러 다녔다. '내 안에 답이 있다.'는 이 한마디를 듣기 전에는 내가 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 하는지 몰랐다. 불안해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그건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는 이를 찾고 있었던 게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고 원하는 대로 그냥 하면 될 것이 아닌가? 애써 다른 사람들로부터 그 말을 듣기 위해 시간낭비, 에너지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내 안에 이미 답이 있다는 말을 들은 이후에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묻는다. 그러나 예전보다 그 횟수가 1/10로 줄었고 더 이상 거기에 집착하거나 불안해하지 않는다. 나의 생각은 이런데 다른 사람 생각은 뭘까? 참고만 한다. '내 안에 답이 있다'는 말을 문장으로만 접했을 때보다 밖에서 답을 찾으려고 애쓰던 상황에서 직접 말로 들으니 그동안의 불안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인생은 NO답이라고 하는데 시험지의 정답이 있는 것처럼 답을 알려고 애썼다. 설령 어떤 선택으로 넘어져도 그로부터 배우고 깨달으며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걸어가면 된다. 뭐가 그리도 두려웠을까. 중도에 내가 포기만 하지 않으면 매 순간이 배움이고 성장의 과정일 뿐인데. 오히려 실패했다고 느끼는 그 순간이 가장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인데 잠깐이라도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기를 썼다. 아이가 처음 걸음마를 시작하고 뛰기 시작하면 넘어지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걱정스러운 마음 뒤에는 '옳지, 잘한다~잘한다.' 잘 걷고 잘 뛰게 될 것을 응원하고 기대하는 마음도 있다. 이제는 걱정 대신, 넘어지면 더 잘 걷고 더 잘 뛸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는 경험치가 늘어났음에 기뻐하고 싶다. 멈추지 않고 다시 일어나 씩씩하게 걷고 뛰어갈 나와 당신을 열렬히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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