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아니면 살기지!

by 정예슬

살랑이는 커튼, 속삭이는 바람.


와 이게 얼마만이지? 아이들이 방학이라 종일 붙어지내다 어제부터 태권도와 피아노학원에 보내기 시작했다.


어제는 두통을 추스르고 북토크를 준비하느라 두 시간의 행복을 누리지 못했는데. 오늘은 아무런 계획도 없이 무료함을 즐기고 있다.


돌돌돌 세탁기 소리도

턱턱턱 식기세척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앞뒤 베란다 창문을 모두 열어두고

누군가의 슬리퍼 끄는 소리

이름 모를 새가 지저귀는 소리

자동차 바퀴가 내는 소리들을

가만히 듣고 있다.


평화롭다.


그러다 피식,

점심 때 있었던 일이 떠올라 웃고 만다.

때마침 걸려온 엄마의 전화에 한창을 떠들어댄다.


"세상에 엄마!! 내가 점심 때 미역국에 올려둔 불을 깜빡한 거야!! 애들이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해서 가봤더니... 냄비가 타고 있더라고. 막 연기도 나고. 그래서 내가 소리를 지르니까 00이가 헐레벌떡 나가버리는 거?!?!?"


"놀랐나 보네~~~"


00이는 아홉 살 난 첫째 아들이다. 연기를 보고 나도 모르게 불난 거 아니냐 호들갑을 떠니 너무 놀라서 집 밖으로 뛰쳐나가버린 거다.


"아들!! 아무리 그래도 너무 한 거 아냐?! 119에 신고를 하든 같이 불을 끄든 해야지!!"


"엄마!!!! 죽기 아니면 살기지!!!!"


"뭐어어어어??!?!"


"허..... 그래..... 너라도 살아야지....."


"아니.... 나도 너무 놀라서...."


한바탕 소동이 있었는데

고작 몇 시간 지났다고 홀라당 까먹고 있었네.

탄 냄비도 그대로고.

하하.


너무도 안온한 지금과 비교되는 그 시간이

딴 세상 이야기였던 것 같아 우습다.

인생이란~


오르락이 있으면 내리락이 있고.

이런 날이 있으면 저런 날도 있고.

한바탕 쏟아졌던 잔인한 비는 온데간데없고

푸르른 하늘이 멀겋게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러니 어쩌리.

죽기 아니면 살기.

살기 아니면 죽기.

살기로 했으니 사는 거지.

살아가니까 사는 거고.

이왕 사는 거 즐겁게 살자.


오랜만에 시원한 바람과

뽀송한 이불의 감촉에

잔뜩 충만한 기쁨을 누리며

지금 이 순간의 기록을 남겨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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