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보면 몇 달은 떨어져 지낸 줄 알겠지? 남편이 제주도로 출장을 가서 우리가 떨어져 있었던 기간은 고작 3일, 정확히 만 이틀하고 여섯 시간 남짓이다. 온몸에 애교를 장착하고 태어난 둘째답게 아빠 배에 얼굴을 부비며 달려들었다. 상봉의 기쁨보다 허기짐을 달래는 것이 우선이었던 나는 며칠 전부터 남편이 알아봐 둔 흑돼지 집으로 가길 재촉했다.
맛집에서 웨이팅은 필수 조건이지만 어쩐 일로 딱 한 자리 남은 테이블을 차지했다. 한창 고기를 굽다 창 밖으로 늘어 선 줄을 보자 '행운'이라는 두 글자가 절로 떠올랐다. 남편이 얹어준 고기를 상추에 싸 먹으며 흑돼지의 졸깃함과 입 안 가득 퍼지는 숯불 향에 미소가 절로 났다. 행복이 별 건가.
배 두드리며 식당을 나오자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내일의 해수욕을 위해 미리 자리를 봐 두고 소화도 시킬 겸 함덕 해수욕장을 향했다. 해가 떨어지는데 여전히 바다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춥지도 않나? 저러다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순식간에 바다로 뛰어든 아들들은 발목을 지나 어느새 엉덩이까지 푸욱 젖었다.
"그만 들어가!! 추워!!"
"아니야 엄마~ 엄청 따뜻해~"
그럴 리가! 얼마 전 영종도 바다에 발을 담갔다가 찬 기운에 소스라치게 놀랐던 기억이 나 순순히 믿을 수 없었다. 의심을 가득 품고 바다로 향했다. 해가 떨어질 때까지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별종 취급하면서. 선뜻 발을 넣지 못하고 머뭇거리는데 파도가 슬몃 내 발가락을 간질였다. 응? 다음 순간 제법 큰 파도가 철썩이며 따뜻한 물이 발을 감싸 안자 나도 모르게 신발을 내동댕이쳤다.
부드러운 모래, 살랑거리는 바람, 따뜻한 바다. 일몰은 볼 수 없지만 다채로운 색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하늘까지. 남편과 나는 서로의 어깨와 허리에 팔을 두르고 그 순간을 만끽했다. 모든 게 완벽한 여름밤이었다.
"어디 어디???"
남편이 자기 발등을 가리키며 꽃게가 있다고 소리쳤다. 모래를 파도에 집어던지는 놀이에 심취해 있던 아들들이 달려왔다. 양손 가득 모래를 움켜쥔 채. 어느새 캄캄해져 발등 위의 생물체를 보려면 쭈그려 앉아야만 했다.
"어?? 이거 벌인데?!?!?"
깜짝 놀라 소리치는 내 눈앞에 모래가 내던져졌다.
둘째가 벌이라는 말에 놀라 쥐고 있던 모래를 던졌는데, 그대로 벌이 남편 발등을 쏴버린 것이다. 남편이 비명을 지르자 둘째는 울기 시작하고 남편도 아프다며 한 발로 깽깽이를 시작했다. 이런 난리통이 없었다.
그 와중에 떠오른 카. 드. 며칠 전 2학년 여름 책에서 여름철 안전사고와 관련한 수업을 했다. 벌에 쏘이면 바로 벌침을 제거해야 하는데 신용카드 같이 딱딱한 것으로 밀면서 빼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빨리 벌침을 제거해야 하는데 발등에 모래가 한가득이라 식별이 어려웠다. 급한 대로 바닷물로 모래를 씻어내고 벌침 찾기에 나섰다.
"이거 같은데... 잠시만!!! (카드로 밀면서 쏘옥~) 나왔다!!!"
"어디 어디?"
"벌침 보이지? 새카맣고 짧은데 생각보다 굵네!!"
둘째는 벌침을 보자 가까스로 멈췄던 울음을 다시 시작했다. 자기 때문에 아빠가 벌에 쏘였다고. 이제 아빠 죽는 거냐고. 대성통곡을 하는 것이다.
"아니야~~ 아빠 이제 괜찮아! 엄마가 침 빼줬잖아. 들어가서 쉬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
그렇게 남편은 한 여름밤 아들에게 벌, 아니 벌침을 선물 받았다. 살면서 벌에 쏘인 적도 벌에 쏘인 사람을 본 적도 그날이 처음이라 이후에 어떤 조치를 더 취해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다만 말벌처럼 치명적인 독을 가진 벌이 아니니 괜찮지 않겠냐는 무사안일을 꿈꿀 뿐. 샤워를 마치고 나온 남편은 비상약으로 가져온 알레르기 약을 먹은 후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다음날 조금 부어오르고 걸음이 불편하긴 했지만 괜찮다는 남편의 말에 안심하며 계획했던 해수욕을 즐기기로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점심을 먹고 튜브까지 빌려 제대로 물놀이를 시작한 우리. 남편은 컨디션이 좋지 않다며 캠핑 의자에 앉아 낮잠을 잤다. 오후 네 시쯤 되었을까? 아이들과 간식을 먹으러 뭍으로 나왔다가 남편이 다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병원 가야 하는 거 아냐?!?!"
"아니... 나 좀 들어가서 쉴게..."
아이들과 물놀이를 마치고 뒷정리 후 숙소에 들어갔더니, 남편의 신음 소리가 들렸다. 체온계에 39도를 찍고서 오한이 든다며 덜덜 떨고 있는 게 영락없는 감기 몸살이었다. 전날 저녁 벌에 쏘인 것과 연관이 있는 걸까? 평소 잘 아프지 않던 사람이 저러고 있으니 현실감이 떨어져서 뭘 어찌해야하나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저 잘 먹고 푹 쉬는 수 밖에 없겠다는 결론에 이르자 죽을 포장하러 나설 수 있었다.
7월 11일과 18일 일주일 간격으로 생일인 우리 두 부부의 생일 기념 제주도 여행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다음날 오전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된다. 남편과 출장을 같이 간 사람들이 코로나에 걸렸다는 것. 속속들이 들어오는 코로나 확진 소식에 어이가 없었다. 벌도 몸살도 아닌 코로나19 감염이었어?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생각했다. 아들이 준 벌(침)이 어쩌면 선물일 수도 있겠다. 그날 벌에 쏘이지 않았다면 우리 가족은 밤늦게까지 바다에서 놀았을 것이고 그 분위기에 취해 남편과 맥주 파티를 벌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남편이 벌침에 쏘이자 우리 가족은 초저녁부터 휴식 모드였고 이른 시간 잠자리에 들었다. 덕분에 다음 날 점심 무렵까지 남편은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조금이라도 가질 수 있었다?!
비단 이번 일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일이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래서 더 살맛 나는 인생 아닐까? 내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이 척척 흘러간다고 마냥 좋은 삶은 아니더라.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생기고 그것에 걸려 넘어지다가 다시 일어서는 모든 과정이 있기에 인생이 더 찬란하게 빛난다.
남편이 아파서 누워 있는 동안 온전히 두 아이의 보호자로 책임을 다 하며 남편과 아빠의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도 가졌다. 집안일을 아무리 분배해도 내가 맡은 일이 더 많다고 생각해왔는데...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던가? 그동안 남편의 작은 손길이 일절 끊어지자 그 공백이 무척 크게 느껴졌다.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음을.
자가격리 1주일이 지나고 남편이 안방을 나서며 말했다.
둘이 오랜만에 진한 포옹을 했다.
이후 일주일은 '폭풍'이라는 말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밀린 업무로 새벽 출근과 야근을 일삼는 남편의 얼굴은 코빼기도 보기 어려웠고, 방학을 앞두고 각종 업무들로 빠듯한 나 또한 하루 24시간이 모자랐다. 생전 없던 눈 염증까지 덮쳐 독서와 업무에 차질이 생길 정도.
신기한 건 이 와중에 마음이 평온하다는 것이다. 예전엔 나 혼자 모든 짐을 떠안고 산다고 생각했다. 나 혼자 애쓰고 있다 생각하니 분통이 터지고 억울했다. 퇴근 후 돌아오 남편이 어질러진 집안 꼴을 보며 집에서 뭐했냐 소리라도 질렀다면 차라리 한바탕 싸우기라도 했을 텐데. 말 없이 휘 둘러보고 그저 자기 할 일에 열중하는 남편을 보며 천하태평에 미련곰퉁이라며 비꼬아 생각했다. 집구석이 마냥 답답했다. 남편의 어떤 점이 좋아 결혼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엉망이었고 불만 투성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모두가 자기 인생에 진심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그러니 마냥 상대에게 짜증을 내고 화풀이할 수가 없다. 그 사람도 나름의 방식으로 애쓰고 있음을 알기에. 그저 이해하고 보듬는다. 그리고 이 남자의 어떤 점이 좋았는지도 안다. 나는 그의 둔감함이 좋았다. 본인이 맡은 업무나 의무에 대해서는 칼 같았지만 그 외 모든 것에 예민하지 않은 태도. 그럴 수도 있지. 괜찮아. 그 말들이 참 다정했다. 무엇보다 서울말로, 경상도 사투리로 느낄 수 없는 자상함에 반했다.
스물여덟 가을에 처음 만났던 남편과 어느새 십 년.
나도 조금은 그의 좋은 면에 물들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서른여덟의 여름, 우리 부부는 꽤 괜찮은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