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첫 번째 유서 편지에 무슨 내용을 적을까 고민하다가 반려견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려고 해.
엄마도 어릴 때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서 늘 졸랐단다. 9살 겨울까지 엄마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사셨던 주택 2층에 살았는데, 그 덕에 강아지를 키울 수 있긴 했어. 세네 살 정도로 아주 어릴 때라 사실 기억은 잘 나지 않아.
이름이 뽀삐였고 새하얀 강아지였다는 것이 나의 온전한 기억인지 사진에 부연한 어른들의 설명인지 헷갈리거든. 그런데 유독 많이 짖었던 기억이 나. 결국 그 서슬에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1층 야외 화장실 옆 개집에 묶여 있었던 것도...
뽀삐랑 놀았던 기억은 전혀 없어. 심지어 그리 오래 같이 살지도 못했대. 어느 날 대문이 열린 틈을 타서 도망을 갔다더라고. 목줄을 어떻게 풀었는지가 미스터리라는데... 나가고 싶은 욕망이 정말 컸던가 봐.
그 이후엔 나도 더 이상 강아지 타령을 하지 않았고 아파트로 이사를 가며 바쁜 초등생활을 살아내느라(?) 정신이 없었어. 새로운 동네, 완전히 달라진 친구들... 그러나 중학생이 되었을 때!!!! 아빠가 골든리트리버 강아지를 안고 집으로 왔어. 아주 영특하고 꽤 몸값이 비싼 아이란 걸 그땐 몰랐어. 마냥 귀여웠지. 그런데 얘가 날이 갈수록 몸집이 비대해지는 거야. 내가 학교 다녀오면 반갑다고 달려오는데 무섭기까지 했어. 짖거나 그래서 무서운 게 아니라 날 쓰러트리기라도 할 기세였거든. 침은 또 얼마나 묻히는지. 엄마 침대에서 같이 자기도 했단다.
어느 주말 아빠는 삼천포 할머니 댁에 리트리버를 데리고 갔어. 처음부터 목적지는 여기가 아니라 거기였는데 너무 작기도 하고 나와 남동생이 좋아할 거 같아서 집에 데리고 있었던 거래. 할머니댁에 가니 커다란 개집이 뒷마당에 놓여 있었어. 그날부터 바깥 생활을 시작하게 된 거지. 헤어짐이 아쉬워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어.
그로부터 얼마 후 리트리버가 보고 싶어서 할머니댁이 갔는데... 정말 그때의 충격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
"으아!!!! 웬 똥개야?!??!?!!"
밖에서 온갖 음식물 처리를 담당하며 흙에 뒹굴었는지 온 털이 시커메진 리트리버는 그 종을 알 수 없는 시골 똥개처럼 변해있었어. 오 마이 갓~~~ 그래도 얼마나 영특한지 오랜만에 보는 나를 보고도 짖지 않고 반가워하더라♡.♡
이후 반려견을 키우자는 이야기를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어. 사느라 바빴지... 엄마가 서울로 임용고시를 치르고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던 엄마의 남동생이자 너희들의 외삼촌과 외할머니까지 세 명이 한 집에 모여 살게 되었어.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살림만 할 수가 없었어. 대학생 아이 둘을 키워야 하니 생활비를 벌기 위해 서울에 오자마자 집 앞 요양병원에서 근무를 시작하셨지. 간호사로 1년 정도 일하자마자 바로 결혼을 하게 되어 경력도 없지만 면허증 하나로 취직이 된 게 다행이라며...
그때만 해도 40대였던 외할머니는 고된 3교대를 하느라 힘들 틈도 없이 쓰러져 자기 바쁘셨어. 그렇게 3년 꼬박 일만 하시던 외할머니가 어느 어버이날 말씀하셨어.
"이번 어버이날에는 받고 싶은 게 있는데... 집에 강아지를 키우면 어떨까?"
엄마는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어. 대학생 동생이 고시 공부를 한다고 고시원을 얻어 나갔고 엄마도 한참 대학원 다니느라 정신이 없어서 외할머니 혼자 집에 계시는 날이 많았어... 외할머니의 고향은 남해야. 학창 시절부터는 줄곧 진주에 사셨고... 그러다 남편(외할아버지)과 사별 후 진주에서 더는 혼자 살 자신도 없고 새로운 곳에서 자녀들과 새 삶을 시작하셨는데 많이 외로우셨던 것 같아...
그렇게 반려견을 키우게 되었어. 그게 바로 너희도 잘 아는 모모란다. 사람 나이로는 80이 훌쩍 넘은 할아버지 노령견이지. 모모가 어릴 땐 솜뭉치 같았어. 떼굴떼굴 굴러다니는 것 같았지. 첫 산책을 나갔을 때가 기억나. 아주 낮은 턱 하나도 내려오지 못해서 엉덩이를 뒤로 하고 뒷발부터 내려오는 게 꼭 아기 같았어.
지금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지? 점프도 잘하고 턱쯤이야 아무렇지 않게 다니니까. 작년부터 심장이 조금 안 좋아서 약을 먹는 것 빼곤 이 나이 먹도록 참 건강한 편이라 다행이다... 했는데... 최근에 가슴 아래 앞다리 시작 부분에 어마어마한 종기가 나서 병원에 가 보니 암일 가능성이 크대ㅜㅜㅜ 이번에 미용을 1달 반쯤 지나서 하는 바람에 털에 묻혀 이제야 발견한 거야. 자주 쓰다듬어주었는데 전혀 몰랐던 거 있지... 나이도 많고 괜히 수술했다가 번지거나 예후가 좋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해서 지켜보기로 했어. 혹시나 사그라들지 않을까 기대를 하면서......
"내 생에 마지막 반려견이지... 이젠 안 키울 거야."
외할머니가 가끔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 들었니? 여행 갈 때도 신경이 많이 쓰이고 평소 출근할 때도 그렇고... 갑자기 구토나 설사를 해도 그렇고...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는 거지. 같이 늙어가는 모습에 덜 외롭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인간보다 수명이 짧으니 먼저 아프고 먼저 보내야 할 텐데... 그건 그 거대로 얼마나 마음이 아플지 벌써부터 걱정이긴 해.
요즘 젊은 사람들 중에는 물건처럼 강아지를 샀다가 병들거나 귀찮아지면 내다 버리는 사람이 많다고 하더라. 특히 휴가철에 버려지는 강아지가 그렇게 많대ㅡ 가족 같은 강아지를 어떻게 버릴 수가 있는지...
솔직히 엄마는 너희가 반려견을 키우고 싶다고 하면 반대!!!야. 생각보다 신경 쓸 일이 정말 많거든. 외할머니가 여행 가실 때 우리 집에 모모 맡기면 어때? 수시로 대소변을 누는데 한 번만 안 치워도 온 집에 냄새가 진동을 하잖아. 화장실 바닥 청소도 수시로 해야 하고 몸도 잘 닦아줘야 하고. 양치도 잘 시키고 산책도 매일 시켜줘야 하고 다녀오면 깨끗이 씻겨줘야 하고...
정말 정말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반려견이든 반료묘든... 키워야 한단다. 그걸 꼭 명심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모모가 좀 더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하길 같이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