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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달 Jul 08. 2022

언니들의 괜찮아

나를 자라게 한 시스터즈 

괜찮다고 말하자 정말 괜찮아졌다.  


둘째 아이를 낳은 이후로 손과 발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네 살과 한 살, 두 아이를 데리고 외출할 때마다 손 하나, 또는 발 하나가 아쉬웠다. 


마트에 가는 장면을 회고하자면, 큰 아이와 작은 아이를 차에 태우고 마트에 간다. 둘째를 유모차에 태우고 첫째에게 따라오라고 하며 장을 본다. 장을 본 후 큰 아이는 마트에 있는 공룡 게임기 앞에서 한참을 서성인다. 두 판만 하겠다는 다짐을 얻어내고 게임을 한 후,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집에 온다. 그 사이 차에서 잠든 아이들을 보고 만감이 교차한다. 졸리면 짜증 낼 텐데 잠이 들어 다행인지, 이 아이 둘을 어떻게 데리고 집에 올라갈지. 


이제 그만 일어나라고 깨우는데 첫째가 눈을 감은 채로 칭얼댄다. 유모차를 다시 펴서 큰 아이를 태우고, 장본 것과 짐들은 유모차 바구니에 싣는다. 한쪽 팔에 작은 아이를 안고 한쪽 팔로 유모차를 미는데, 헉 안 밀린다. 자고 있는 둘째를 팔에서 놓칠까, 유모차를 미는 손이  미끄러질까 불안하다.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까지 10m도 안 되는 거리가 100m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나는 자신의 손을 내어 주던 구세주를 잊지 못한다. 나보다 앞서 가서 주차장 입구 문을 가서 활짝 열어주던 그의 모습. 문 턱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 유모차를 앞에서 당겨주던 모습. 연신 고맙다고 쑥스럽게 말하는 나에게, “아우~괜찮아요. 정말 힘들 때죠.” 다시 한번 고맙다고 말하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나에게, “아우~ 괜찮아요. 안녕히 가세요.” 몇 년 후,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구세주를 다시 만났고 우리는 운명처럼 친해졌다.

 

이후로도 내가 어려울 때 언니는 기꺼이 손을 내밀어 주었는데, 고맙다고 말하는 내가 행여 부담을 가질까 밝고 경쾌한 목소리로 “괜찮아~”라고 대답했다. 


직장에 다니면서 아이를 키울 때에나, 가정에 머무르면서 아이를 돌볼 때에나, 힘겹게 애쓰는 데에도 불구하고 얕은 문턱조차 넘기 어려운 순간은 자주 일어난다. 너무 힘이 들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도망가고 싶을 때, “괜찮아.”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정말로 괜찮아져서 문턱을 가볍게 넘어갔다. 달아나고 싶었던 많은 순간, 나는 누군가 나에게 충분히 힘들어해도 괜찮다고 말해주기를, 가볍게 손을 내밀어주기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낳았더니 자라는 아이들     


“너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애 둘을 낳고 키울 수 있어?”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친구들이 하나 둘 아이를 낳았다. 반짝이는 눈동자가 한없이 사랑스러우면서도 이 생명을 내가 어떻게 책임지려나 두려웠던 시기. 그때의 역동을 친구들은 이제 막 시작했다. 


“글쎄, 낳았더니 자라더라고.”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답이었다.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잘 해낸 것은 없었고, 그 과정에서 신비롭게도 아이들은 해마다 커갔다. 고집이 세지는 만큼 키가 자랐고, 요구하는 것이 늘어나는 만큼 몸무게도 늘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과 부모가 바라는 것 가운데서 어떻게 해서든 본인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뛰어난 협상력을 갖추며 아이는 초등학생이 되었다. 


아이들이 사랑스러우면서 어떨 땐 몹시 미웠고, 아이들을 품 안에 꼭 끌어안으면서 때론 밀어냈다. 그러니 책에서나 보았던 현명한 어머니의 얼굴로 아이들을 키운 것이 아니라, 좋아 웃다가도 힘들어 우는 얼굴로 아이들과 푸닥거리를 하다 보니 아이는 커 있었다. 


나는 왜 현명한 엄마가 되지 못하는가 방황하고 있을 때, 가수 이적 엄마로 유명한 여성학자 박혜란의 『믿는만큼 자라는 아이들』(2019, 나무를심는사람들/1996년 초판)을 만났다. 시야가 좁은 나는 부모가 된 친구들에게 ‘낳았더니 자라더라.’는 말 밖에 해 줄 수 없었는데, 이 책의 작가는 ‘믿는 만큼 자라더라.’며 깊은 조언을 내어준다.      





아이는 믿는 만큼 자란다


아이들을 키울 생각을 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키우면서 아이들이 커 가는 모습을 그저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는 거다. 그러다 보면 아이도 행복하고 부모도 행복하게 되더라는 이야기이다.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육아휴직을 쓰고 아이와 집에 남겨졌을 때 나는 인터넷에서 살림과 육아를 배웠다. 파워블로거의 포스팅을 열심히 구독했다. 포스팅에는 육아며 살림에 대해 다정하고 자세한 정보가 넘쳐났다. 깔끔하고 단정하게 살림 꾸리는 법을 따라 하다 보면 나도 순식간에 엄마답게 주부답게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결과물은 엉성했고, 노력할수록 지쳤다. 한참의 좌절 후 살림은 나에게 ‘어나더레벨(another level)’임을 깨달았다. 


육아는 어떠한가. ‘엄마표’로 놀이도 학습도 재미있게 할 수 있다는 글을 믿고 ‘엄마표 교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교구의 완성도가 떨어지기 때문이었을까. 아이의 흥미와 포인트가 맞지 않아서였을까. 조잡하게 만든 교구는 집안 구석구석을 배회하다 결국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살림이 재미있어요.’, ‘아이와 성장하는 순간이 행복해요.’라는 블로거의 글을 읽으며, 하면 할수록 고통스러워하는 나 자신이 한심했다.


‘누구나 잘하는 영역이 다르다’. ‘어디에 성취감을 느끼는지도 사람마다 다르다.’는 간단한 사실을 되새기며 ‘살림은 적당히’를 표어로 삼고, 육아는 남편과 양가 부모님, 기관의 도움을 아웃소싱해 해결하다 보니 아이는 학령기에 접어들었다. 


상대적 박탈감을 주는 육아 블로그는 보지 않으면 그만이었지만, 학령기 자녀를 둔 부모에게 책임감은 필연적으로 가중되었다. 특히 아이가 다니는 학원마다 오는 피드백 문자와 전화는 나에게는 중압감을 주었다.


“어머니, 아이가 숙제를 안 해왔어요.”

“어머니, 아이가 아는 문제를 자꾸 실수로 틀리네요.”

“어머니, 알고 계시죠?”

“어머니, 새로운 학습앱 메뉴에 들어가 보셨죠?”

“학원에서는 이러저러한데 아이가 가정에서는 뭐라고 말하나요?”     


세심하고 다양한 학원 교사의 피드백에 나의 답은 일관적으로 ‘아무것도 알지 못함’이다.      


“아, 네 그랬나요.”

“아, 제가 몰랐네요.”

“글쎄요, 아이가 말을 안 해서.”

“한 번 물어볼게요.”     


나는 몹시 궁금해진다. ‘다른 엄마들은 아이 교재를 보고, 학습앱을 검토하고, 아이의 부족한 부분을 파악하고 있는 걸까? 역시 나는 엄마 자격 미달인 걸까.' 길고 자세한 피드백의 결론은 아이가 어떤 부분이 부족했고 어떤 부분을 못 했다는 이야기이다.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어설픈 엄마는 결국 집에 돌아온 아이를 들볶고 만다. 그러다 또 스스로가 한심스러워져 아이에게 묻는다. 

     

“엄마가 하나씩 체크해주는 것이 너에게 도움이 되니? 그래 주었으면 좋겠니?” 

“아니요, 아니요. 절대! 아니요!”     


휴, 다행이다. 아이가 사실 엄마 도움이 필요했던 거라고 답했다면 눈앞이 깜깜했을 거다. 지금도 하루가 짧고 체력이 달리고 읽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게 많은데, 아이가 학원 숙제까지 도와달라고 했다면 내가 먼저 “미안하지만 절~대 아니오!”를 외쳤을 거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부모님은 나의 공부에 알지 못함의 자세를 견지하셨다. 대신 “네가 스스로 잘해주어 고맙다.”라며 무한한 지지를 보내주었다. 고백하건대 학습지 선생님이 초인종을 누르면, 있는데도 없는 척 선생님이 돌아갈 때까지 숨 죽였다. 밀린 학습지는 다락방 한 곳에 쌓아두었다가 학교에 폐품 가져가는 날 몰래 갖다 버렸다. 학교에서 시험을 보고 부모님 사인을 받아 가야 할 때면, 잘 본 시험지는 보여드렸고 못 본 시험지는 사인을 위조해 가져 갔다. 부모님은 잘한 것만 알고 계시니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항상 칭찬이었다. 만일 부모님이 내 모든 공부와 스케줄을 체크하고 못한 부분만을 지적했다면, 아후 상상도 하기 싫다. 분명 다 때려치우겠다며 집을 뛰쳐나왔을 것이다. 


내가 그랬듯 나의 아이들도 어떤 때에는 숙제든 학원이든 빼먹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이 공부를 내가 왜 해야 하는지 아직 동기조차 없는 초등학생 아이가 스스로 열심히 한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믿는 만큼 자란다는 박혜란의 말을 가슴에 새기며 일단 나 자신부터 키우겠다고, 그래도 괜찮다고 안심했다. 





최선의 엄마 노릇은 엄마나 잘 사는 것


박혜란 식 교육 철학의 수혜를 받았다며 스스로를 ‘박혜란 빠’라고 부르는 편집자 이영미는 그의 책 『마녀엄마』(2020, 남해의봄날)에서 최선의 부모 노릇은 '엄마나 잘 살자'라고 주장한다. 나 같은 불량엄마가 안도하고 잘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이 같은 시스터즈 덕분이다. 육아는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나를 키우는 것()이라니. 불안하고 초조한 엄마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이영미 작가처럼 '생기 넘치고, 하고 싶은 거 하고, 도전하는 엄마'로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너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애 둘을 낳고 키울 수 있어?”라고 다시 묻는다면, 지금은 좀 다르게 대답할 것이다. 언니들의 괜찮아 덕에 아이들이 자라며 나도 자랄 수 있었다고 말이다. 


아이 교육 잘 시키고 남편 뒷바라지 잘하면서 살뜰하게 살림 꾸리는 인생은 아무리 생각해도 내 능력 밖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살림이나 다정한 엄마표 교육이나 나에게는 모두 어려운 것들이다. 실제로도 짧은 다리로 현모양처 따라가려 하지 않기로 했다. 멀쩡한 두 손으로 아이에게 박수나 한 없이 쳐주기로 다짐한다. 내 인생부터 열심히 살고, 아이에게 삶이란 도전하고 실패하고 노력할 때 의미 있다는 걸 몸소 보여주고 싶다. 


엄마 역할이 내게는 너무 어려워서 하나씩 놓으려고 할 때, 자꾸만 도망치고 싶어 죄책감이 들 때, “그래도 괜찮아”라며 손을 내밀어 준 언니들 덕에 막막했던 문턱을 사뿐히 넘어갈 수 있었다. 자기 자신을 먼저 키우고 아이에게 열렬한 박수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잘 자란다는 말에 아이가 자라며 나도 함께 성장했다. 언니들의 열렬한 지지 덕에 '엄마 노릇 제대로 못한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났다. 대신 나에게 집중하고 아이에게 박수를 보낸다. 

  

지금이 너무 힘든 엄마에게 '충분히 힘들 때이다. 힘들어해도 괜찮다.'고 전하고 싶다. 엄마 역할에서 벗어나 나로 살고 싶은 누군가에게 '그래도 괜찮다. 엄마부터 잘 사는 게 우선이다.' 응원을 보낸다. 자라나는 아이와 엄마 모두에게 열렬한 박수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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