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달 Jul 09. 2022

도망친다고 마음은 폐기되지 않는다

부스러진 마음 바라보기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나는 열등감과 열패감으로 가득한 사람이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하면 누구보다도 빠르게 현실에 순응하거나 그것으로부터 도망친다. 하지만 내가 외면했던 문제는 언젠가 실패의 얼굴을 하고 일상에서 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어려울 때 회피하는 기제가 있네요.”


대학을 졸업한 지 10년이 훌쩍 넘어서 대학원에 진학하려니 아는 것이 없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가족상담을 전공하고 상담사로 일하는 분에게 상담을 의뢰했다. 대학원 입시 상담 겸 진로 상담이었는데, 여러 이야기를 이어간 끝에 그는 “어려울 땐 회피하는 기제가 있네요.”라고 말했다. 족집게 점쟁이를 만난 듯 놀라웠고, 내 속마음을 들켜 버린 듯 숨고 싶었다.

     



상수의 인생에서는 늘 예상하지도 못한 일들이 벌어져 낭패감 속으로 몰아넣었다. 인생의 대부분의 날들이 상수에게 실패라는 결론을 선언하기 위해 준비된 듯 느껴졌다. 그러니까 공상수 너 실패, 메뉴 선택 실패, 이메일 보안 실패, 언니로 살기 실패, 짝사랑 실패, 해외파견 실패, 팀장 실패, 아주 다 실패.

(p248, 『경애의 마음』)     


나는 때때로 아이가 아무렇지 않게 던진 말에 득달같이 화를 내고 골방에 숨어 펑펑 울었다. 그 말이란 고백하건대 정말 별거 아니어서 그 때문에 울었다는 게 부끄러울 정도의 것이다.      


“엄마는 돈 조금 벌고, 아빠는 돈 많이 벌잖아.”

“아빠는 승진했는데, 엄마는 뭘 잘해?”     


‘그래 이 녀석아, 내가 조금씩 버는 돈으로 너 떡볶이 사주는 거다.’

‘그래 엄마가 이것저것 도전하는데 사실 잘하는 게 없어서 아직도 방황 중이다.’     


그냥 그렇게 말하고 웃어넘기면 될 것을 길길이 날뛰며 청승맞게 혼자 눈물을 짜냈던 까닭은 내가 나 스스로를 ‘아주 다 실패’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아이의 의미 없는 말이 ‘직장 생활 실패’, ‘가정 주부 실패’, ‘좋은 엄마 실패’, ‘하는 것마다 다 실패’라는 패배 의식을 담아 나를 세차게 때렸다.






소설 『경애의 마음』에서 상수는 페이스북 연애상담 페이지 ‘언니는 죄가 없다’의 운영자 ‘언니’이다. 경애는 연인과 이별 후 씻는 일조차 할 수 없던 잔인한 여름을 ‘언죄다’ 페이지에 편지를 보내며 버틴다. 둘은 몇 년 후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직장 반도미싱에서 팀장과 팀원으로 만난다. 이 둘에게는 또 다른 연결고리가 있는데, 1999년 인천 호프집 화재 사건에서 소중한 친구 은총을 잃은 것이다. 1999년 10월 실제 있었던 동인천 호프집 화재 사건은 학생들에게 “돈 내고 가라”는 사장이 문을 잠가버려 56명의 사망자를 낳았던 실제 사건이기도 하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일관적으로 학교가 싫었다. 입학한 순간부터 졸업할 날을 손꼽았다. 내가 졸업한 학교는 서울에 위치한 외국어고등학교인데, 이곳의 모든 아이들이 공부를 잘했다. 학교는 그중에서도 아주 잘하는 아이, 그럭저럭 잘하는 아이, 생각만큼 잘하지 못하는 아이를 석차순으로 줄 세웠다. 교사들은 아주 잘하는 아이들의 이름을 복도 벽에 순서대로 줄지어 놓았다. 물론 나는 아주 잘하는 아이가 아니었기에 그곳에 내 이름이 오른 적은 한 번도 없다.


그곳에 이름이 오르든 오르지 않든 본인의 기대(또는 학교와 부모의 기대)만큼 수능점수가 나오지 않으면 선배들은 재수를 선택했다. 해마다 졸업생 절반의 발걸음은 재수학원으로 향했다. 나는 그런 선배들의 모습을 보며 고3 시절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게 공부했다. 아주 잘하는 아이로 인정받고 싶어서도 아니었고(아무리 노력해도 사실상 불가능했고), 가고 싶은 대학이나 전공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지금도 그렇지만 학교나 전공은 적성이 아닌 성적순), 누군가의 기대에 못 미치면 이 지옥에서 탈출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내가 공부하는 유일한 이유였다.  


산꼭대기에 위치한 학교는 멀리에서 보면 견고한 성처럼 생겼는데, 그곳에 들어가면 감옥에 갇힌 것같이 답답하고 탈출 욕구가 솟아올랐다.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친구들 덕분이다.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몰래 동아리방에 숨어들거나 학교 뒷문으로 살금살금 탈출했던 것도 친구들과 함께였기에 스릴 넘쳤고, 재미있을 거 하나 없는 학교 생활이 즐거웠던 것도 아무것도 아닌 일에 같이 낄낄대던 친구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드디어 탈출이 가능할 것 같던 2003년 10월, 수능을 한 달 앞두고 친한 동아리 선배가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다. 그 선배는 세 번째 수능 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린킨 파크와 신해철의 노래를 CD에 담아 구워주던 선배는 항상 밝았는데, 나는 어느 순간 선배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선배의 이따금 우울한 이야기를 듣는 게 힘들었고, 선배처럼 재수 삼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선배의 장례식에 다녀오는 사람 많은 지하철 안에서 그와 함께 웃고 놀았던 또 다른 친구와 교복을 입은 채로 눈물 콧물 범벅이 된 기괴한 얼굴을 하고 “흐엉, 흐엉” 소리 내어 울었다. “아니 어린 학생들이 왜 저래.”라는 어느 아주머니의 말이 들리긴 했지만 울음이 멈추어지진 않았다.


지하철에서의 울었던 모습보다 더 기괴하게 나는 빠른 속도로 현실에 순응하고 수능 공부에 열중했다. 한 달 뒤 본 수능 점수는 누군가의 기대에 미치는 정도였고 나는 학교와 입시 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상실에 대한 애도의 시간도 없이 맞이한 대학 생활은 숭숭 구멍이 났다. 자유로운 일상에 행복감이 느껴질 때에는 '네가 이렇게 즐거워도 되느냐.'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럴 때면 가슴속에 상실감이 휘몰아쳤고 나는 시린 공허감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슬픔 뒤에는 무거운 죄책감이 ‘너에게 슬퍼할 자격 따위가 있느냐.’고 차갑게 되물었다. 선배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회피했던 나는 슬픈 기억을 누군가와 공유해서도 안 되었다. 나는 그렇게 마음을 어딘가에 폐기하고 스스로 벌을 주었다.


소설 속 경애와 상수는 서로에 대해 알게 되면서 조심스럽게 은총의 이야기를 공유한다. 회피하고 숨겨두었던 기억을 꺼내고 고통을 공유하면서 슬픔에 직면한다. 그렇게 어디엔가 분명히 있었던 어떤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장면에서 소설은 끝난다.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p.176)     


경애에게 헤어진 애인에 대한 마음을 폐기하지 말라는 ‘언니’ 상수의 조언은 모든 상실된 관계에 대한 조언이다. 감당하기 힘들어서 회피했던, 폐기하고 싶었던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한참이 지나도 무거운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경애의 마음』을 읽고 함께 토론하다 나는 은총의 기억을 아카이빙하는 경애의 마음이 무엇이었는지를 물으며 복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오열했다. 버릴 수 없어서 가장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마음은 급작스럽게 폭발했고, 나는 나의 기억을 모르는 이들 앞에서 한참을 울었다. 나는 상수와 경애를 바라보며 선배에게 이야기했다. 내가 혼자 도망쳐서 미안했다고. 그래서 아주 오랫동안 괴로웠다고.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까지 너무 오래 걸려서 미안하다고. 이젠 죄책감을 내려놓고 싶다고.



 




아이의 한 마디에 분노했던 순간에는 ‘내가 어떻게 저를 키웠는데 저런 말을 내게 하나’ 원망의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또 ‘이런 내가 엄마의 자격이 있는 것인가’ 한심스러웠다. 엄마 역할을 그만두고 어딘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나는 왜 매번 도망치려는 것일까. ‘엄마로 살아가는 내 인생이 정말 보잘것없다.’는 자격지심이 숨겨져 있었는데 그걸 들켜버린 순간 나는 분노함으로써 회피하기를 택했다. 내가 스스로 그거밖에 안 되는 실패한 사람으로 여기는 마음을 아주 깊은 곳에 묻어놓았는데, 폐기된 줄 알았던 마음은 예기치 못한 순간 왜곡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서 겨우 8년 차에 그만두고 퇴사했다. 퇴사 후 무언가 새로운 걸 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그저 그런 반백수로 살아가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해야 할 건 많고 내 뜻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다. 이 모든 것들을 난 패배로 인식했다. 잘 해내지 못한다는 열등감을 인정하기 싫어서 화를 내고 도망치려 했다.


지금은 아이가 어떤 말을 해도 화가 나지 않는다. 폐기하려고 또는 도망치려고 할 때마다 오히려 생채기 내는 감정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실패 경험이 많은 사람이다. 많이 도전하지만 도전하는 것마다 대부분은 잘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건 누구나 그렇다. 상수가 메뉴 선택에 실패하듯이 우리는 수많은 선택에 직면하고 필연적으로 실패 또는 성공을 경험한다. 실패가 많았다는 것은 수없이 도전했음을 의미한다. 도전하는 내 인생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다.


“엄마, 이거 확실해요? 엄마가 어떻게 틀릴 수 있어요?”

“응, 엄마도 모르는 거 정말 많아. 알다가도 잊어버리는 게 대부분이야. 그러니까 너도 내 말 믿지 마.”


나는 이제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틀리고 잘못할 수 있는 부족한 엄마임을 인정하려 한다.      


“어려울 때 회피하는 기제가 있네요.”라는 상담사의 말은 회피 기제 아래 숨어있는 패배감과 슬픔을 인식하게 해 주었다. 나는 내가 감당하지 못할 때 도망치려는 습성이 있구나. 그런데 아무리 도망쳐도 마음은 폐기되지 않는구나. 두려움, 불안, 죄책감, 열등감. 내가 감추고 싶었던 마음을 바라보고 보듬었을 때 비로소 오늘을 시작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내 마음이 지금 어렵다고 하는구나. 휴식이 필요하구나. 잠깐 환기가 필요한 거야. 폐기하려던 마음을 드러내고 마주할 때 우리에겐 다시 이야기를 시작할 용기가 생겨난다.

이전 12화 언니들의 괜찮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