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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달 Jul 03. 2022

샤넬백 보다 작업실

내가 나처럼 힙해지는 방법

2년 6개월, 이기적인 나로 사는 시간


2021년 6월. 대학원에 합격했다는 통지를 받았다. 5학기제이니 휴학 없이 졸업한다면 2년 6개월, 나는 비싼 등록금을 내고 그 이상의 경제적 가치를 가져다 줄지 알 수 없는 공부를 해야 한다. 전직 은행원인 나는 어김없이 현금의 미래가치를 계산하며 선택을 망설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된 이후, 나의 선택은 언제나 '지금 쓰는 이 비용이 미래에 얼마만큼의 효용을 가져다줄 것인가'에 의해 좌우되었다. 가고 싶은 직장보다는 급여가 많고 복지가 다양한 은행을 선택했다. 엄마가 되어서도 이 같은 가치평가는 계속되었다.


가정에서 한정된 자원을 분배할 때, 언제나 나는 나를 가장 뒤로 미루었다. 남편은 가정의 주 수입을 담당하기에 그에게 쓰이는 비용은 언제나 합당했다. 두 아이는 계속해서 성장해나가는 존재이며 이들의 미래는 세상 어느 것과 가치를 견줄 수 없기에, 아이를 위해 쓰는 돈은 절대 미룰 수 없는 것이었다. 합당하고 중요한 것들에 나의 욕구는 언제나 이 순위로 밀리다 지워지고 말았다.


'어차피 동네에서 왔다 갔다 하는데 나는 비싼 옷 필요 없어.'

'집안일하고 애들 챙기려면 액세서리 같은 건 거추장스러워.'

'아이들 챙기느라 기력이 달려서 가방은 가벼운 에코백이 최고지.'


그런데 이런 선택들이 나에게도 효용을 가져왔을까? 대답할 수 없었다. 직장에서는 퇴사했다. 가정에서는 나를 밀어 두고 선택한 것들이 나에게도 어떤 가치를 부여했는지 알 수 없었다. 짜내어 보자면 뿌듯함과 만족감 같은 것이 있으려나? 하지만 경제적 효용과 성과를 기준으로 한 선택에서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대리만족뿐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가혹한 것이었다. 나는 오래도록 신봉해왔던 현금의 현재가치와 미래가치를 계산하는 함수를 해체시키기로 결심했다.(우후~ 해방군이 된 기분이다.)


FV=PV(1+r) ^n

현금의 미래가치 = 현금의 현재가치 * (1+수익률)^기간


*FV = 미래가치

PV = 현재가치

r = 수익률

n = 기간  


*나는 이 함수에서 현금의 가치와 수익률을 전복시키고 나 개인의 가치와 나의 성장률을 대입했다.

나의 FV = 나의 PV ( 1+r )^n
나의 미래가치 = 나의 현재가치 * (1+나의 성장률)^기간

*r = 나의 성장률(돈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 내적 성장은 무언가를 알고 더 풍부해지는 것을, 외적 성장은 운동을 지속했을 때 체력적으로 더 단단해지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n = 시간     


남긴 것은 시간뿐이다. 현금으로 계산되지 않는다고 해서 지금 나의 현재가치를 포기하면, 흐르는 시간만큼 나에 대한 기회비용은 n차 함수로 커지게 된다. 그러니 돈이 되지 않는 공부라도, 몹시 내가 하고 싶은 것이라면 스스로를 풍요롭게 하는 것이라면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유레카! 나는 마치 필즈상 수상자가 된 거처럼 쾌재를 불렀다.)


12년간 항상 뒤로 미루어두었던 나를 가장 앞에 세우겠다고 다짐했다. 대학원에 다니는 2년 6개월 동안만이라도 나는 이기적인 나로 살겠다고 선언했다. 값비싼 등록금을 지불하고 2021년 9월, 나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샤넬백 대신 작업실


12년 동안의 습관은 쉽게 버릴 수 없는 것이라 나만의 공간을 구하는 데 있어서도 수없이 망설였고 끊임없이 계산했다. 비용 부분에서는 더 저렴한 옵션을 탐색했고, 여전히 엄마로서 아이들을 보살피기 위해 물리적 거리에 제한을 두었다. 집에서 걸어서 30분, 차로는 10분. 마을 버스도 다니며, 주차도 가능한 나만의 방 예비 후보 원, 투, 쓰리를 발견했다.


 

옵션 1) 보증금 500만 원 월세 40만 원 상가

장점: 안전한 아파트 단지 내 상가, 저렴한 관리비 2만원

단점: 오랫동안 공실, 노후된 시설, 냉난방 기기/수도 시설/창문 없음


직접 찾아가 보니 벽과 바닥이 고르지 못한 낡은 상가에는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상가의 오래된 화장실 냄새가 이곳까지 풍긴다는 것. 냉난방기를 들이고 벽과 바닥을 고르게 하는 것은 비용이 들지언정 고칠 수는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상가 화장실 냄새는 통제 불가능할뿐더러, 해방의 공간에서 오히려 벗어나고 싶어 절규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옵션 2) 보증금 500만 원 월세 45만 원 오피스텔

장점: 오피스텔, 저렴한 월세

단점: 32년 차 오피스텔, 32년 처음 모습 그대로 손 한 번 대지 않은 듯 순수한 모습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오피스텔의 모습이 아니다. 한 번도 교체한 적 없는 싱크대와 에어컨은 한국 근현대사를 보여주는 유물 같다. 화장실의 경우, 변기는 화장실 안에 있는데 세면대는 밖에 있다. 수건걸이는 청테이프가 감겨 있었는데 그 마저도 떨어져서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전 거주인이 짐만 빼간 방의 벽지와 바닥은 만신창이였는데, 집주인이 새로 해 줄 생각은 없다고 했다. 똑같은 구조의 옆 호실보다 월세가 5만 원 저렴했는데, 부동산 사장님은 43만 원까지 깎아볼 수 있다고 했다.


옵션 3)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60만 원

장점: 20년 차 오피스텔, 벽지와 에어컨 교체 예정

단점: 단점 1은 비싼 월세, 단점 2는 옵션 중 가장 비싼 월세


옵션 1은 치명적 단점인 냄새로 인하여 제외. 월세가 저렴한 옵션 2를 계약해서 열심히 쓸고 닦고 사용할 것인가, 부담이 되더라도 옵션 3을 선택해서 아늑한 나만의 공간에서 평안한 시간을 보낼 것인가. 수없이 고민해도 결론을 내지 못하던 나는 본가에서 나와 잠깐 오피스텔에서 생활했던 친구에게 조언을 구했다.

 

“서울에서 오피스텔 월세 60만 원이면 비싼 것도 아니야. 나는 80만 원이었어. 도심이라 관리비도 비싸서 월 백만 원 정도는 오피스텔 비용으로 나갔지. 나야 차는 없었지만 차가 있으면 주차비용도 별도로 나가. 비용을 좀 더 지불하고 그만큼 생산성을 내고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돼. 돈 좀 아끼려다 아예 안 가고 돈 버리지 말고 갈만한 곳을 구해."


"그런데 너는 왜 다시 본가로 들어갔어?"


"응, 월세만큼 생산성이 나오지 않더라고."

     

그래! 내가 생산성을 마구마구 발휘하면 되는 것이다. 일단 비용이 투입되니 아까워서라도 글을 쓰게 된다면. 책이 출판되어 인세를 받고 북토크 등 강연에 나가게 된다면. 벌써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것처럼 가슴이 벅차올랐다.


하지만 아이 둘의 엄마인지라 가슴 벅찬 상상에서 헤어나오는 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아이들 학원비, 지금 나의 대학원 등록금. 이런 걸 생각하면 도무지 작업실은 나에게 사치였다. 사치! 그래 바로 그 사치! 나는 2년 6개월 동안 나를 위한 사치에 관대하리라 결심했었지. 지금이 바로 그 사치를 부릴 때이다. 오랜 시간 갈팡질팡 고민했던 것이 무색하게, '사치'라는 단어 하나에 후보군 중 가장 사치라고 생각한 옵션3을 작업실로 정했다.  


1년 동안의 월세와 관리비를 계산해보니 대략 천만 원 정도의 비용이 예상되었다.     

60만 원 *12 =720만 원 + 관리비 =1000만 원       


"너도 샤넬백 사."

"그래 볼까? 나야 동네에서 돌아다니는 게 다니까 남들 사는 클래식은 싫고 백팩을 살래. 블랙핑크 제니가 캐주얼에 샤넬 백팩을 멘 사진을 봤었는데 힙해 보이더라고."


10주년 결혼기념일, 괜찮다고 하면 없던 일이 될까봐 남편을 이끌고 샤넬 매장에 갔더랬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남편은 알고 있었던 걸까? 들어가고 싶다고 아무나 매장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기를 걸어놓고도 순서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식사를 하고 백화점을 한 바퀴 돌아도 순서가 오지 않았다. 지친 얼굴로 남편이 집에 가자고 했다. 남편에게 지쳐보이니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마시라고 했다. 커피를 들고 주차장으로 향하던 순간, 드디어 우리 순서가 되었다는 카톡알람이 왔다. 이제 나도 제니처럼 힙해지는 건가. 이런... 제니가 메고 세상 힙함을 뿜어냈던 그 가방은 제니처럼 힙해지고 싶은 너도 나도 이미 사갔는지, 내가 간 매장에도 없었고 전국 어느 매장에도 재고가 없다고 했다.


어디에도 없었기에 샤넬백을 사려던 시도는 없던 일이 되었는데, 2년이 지난 지금 가격이 오르고 올라 천만 원이 넘었다나. 샤넬 백팩을 멘다고 내가 제니처럼 힙해질 순 없기에, 나는 내가 나처럼 힙해지는 데에 1000만 원을 쓰기로 결정했다.


가방을 메는 잠깐 동안의 기쁨보다 오피스텔을 사용하는 1년 동안의 기쁨이 더 지속적일 것이다. 나만의 공간을 구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나는 이미 나의 세계에서 힙스터가 되었다. 계약이 끝나더라도 나는 나만의 공간을 쟁취하였던 누군가로 남을 것이기에 공간이 주는 즐거움은 1년을 넘어 지속될 것이다. 나는 나답게 멋진 사람이 되어 임대차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샤넬백보다 힙한 작업실을 선택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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