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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달 Jul 04. 2022

스스로 잘 사는 사람

우울의 하강나선 탈출하기

2022년 3, 새벽 수영에 등록하고 가지 않았다


"뭐야 너, 지금 설마 책 읽고 있는 거?"

"응, 나 여섯 시에 수영하고 왔."


아이들의 기나긴 겨울방학에 이어 봄방학의 끝. 나는 아이 둘을 남편에게 맡기고, 친구들과 호텔에서 1박을 했다. 어젯밤 분명 우리 술을 마셨고, 고기를 먹었고, 앞다투어 이야기를 쏟아냈고, 지쳐서 침대에 쓰러져 잤는데. H는 살짝 젖은 단발머리를 흔들며 하얗고 보송한 얼굴을 하고 소파에 기대어 책을 읽고 있었다. 이거 설마 유령?


"반달, 내 팔 만져봐 봐."

헉, 사람 맞네. 이게 팔인가 벽돌인가.

"요새 헬스 좀 했더니 힘주면 팔에 각이 지더라고."


각종 운동을 섭렵한 H는 무거운 것을 들어도, 먼 길을 걸어도, 여간해서 지치지 않는다고 했다. 열 시가 넘어 일어난 나는 어깨가 무겁고 다리가 저렸다. 노랗고 부스스한 나의 얼굴이 선홍빛 혈색 도는 H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강인한 체력이 부러웠다.


같은 시간 남편은 대학 친구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떠났다. 여행에서 돌아온 남편과 나는 각자의 여행과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남편은 그의 친구 K가 매일 출근 전에 새벽 수영을 다니고, 아이를 보기 위해 서둘러 퇴근한다더라, K가 참 딸에게 다정하더라, 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게 선배이기도 한 K는 대학 시절 독보적인 3대 술꾼 중 1인이었다. 밤새워 술 마시는 날이 많았고, 다음 날이면 모자를 눌러쓰고 어슬렁어슬렁 과방 입구에서 담배를 피우던 K였다. 그런 선배가 새벽 수영을 하고 어린 딸아이를 살뜰히 챙기는 아빠가 되었다니. 지금처럼 살면 안 된다는 강한 위기감이 나를 엄습했다.


당장 수영장을 알아봤다. 리모델링 공사 중이던 동네 수영장에 가보니 3월에 다시 문을 여는데, 선착순으로 수강료 할인 혜택을 준다고 한다. 내가 수영을 시작하는 것은 예정된 일 같았다. 바로 오전 6시 수영 강습을 등록하고 수영복과 물안경을 샀다.


첫 강습 하루 전, 스포츠센터에서 문자가 왔다. 방수 공사 하자 보수로 1주일 후에 수영장을 다시 오픈한다는 것이다. 조금 실망스러웠으나 괜찮다. 일주일 후에 다니면 되는 거니까. 수영복을 깨끗이 빨아 놓았다. 일주일 후 생리가 시작되었다. 괜찮다. 생리가 끝나고 시작하면 된다. 어느새 수영 강습을 등록한 지 보름이 지났다. 3월 중순, 뉴스에선 코로나 거리두기 완화로 감염자 수가 급격하게 늘었다는 이야기로 시끄러웠다.


괜찮지 않은 것 같다. 수영을 배운답시고 코로나에 감염된다면? 출근하는 남편과 초등학생 두 아이들까지 전염된다면? 절레절레. 수영을 할 수 없는 것은 신이 미리 정한 것처럼 이유가 차고 넘쳤다. 할인가로 등록한 강습비는 환불 또는 연장이 되지 않는 조건이었고, 고민하는 사이 강습기간은 만료되었다.


은행에서는 오전 8시 회의로 업무를 시작했다. 늦지 않으려면 6시 30분에는 일어나야 한다. 퇴사 이후부터 나의 기상은 점점 늦어졌다. 아이들 학교가 5분 거리에 위치한 지금 집에 이사 오면서 일어나는 시간은 빠르면 8시, 어떨 땐 8시 20분이 되었다. 아이들을 보내 놓고 정리 좀 하고 소소하게 하는 일이나 대학원 공부를 하면 어느덧 아이들 하교 시간이 돌아온다. 오후 시간은 아이들 챙기랴, 간식과 저녁 준비하랴, 대학원 수업 들으랴 순식간에 삭제되고 만다. 하고 싶은 것들은 늘어나는데 이를 소화할 수 있는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어떻게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까.






4, 미라클 모닝 일주일 만에 중단했다.


어느덧 4월이 되었다. 온전한 나의 시간을 갖는 방법을 찾았다. CBS 기자 김연지는 <꿈꾸는 엄마의 미라클 모닝>(2021, 유노라이프)에서 '꿈꾸며 성장하는 엄마로 살아가기 위해 새벽 시간을 떼어 자신에게 주었다'고 말한다. 새벽 시간을 활용한 결과, 그는 기자뿐만 아니라 유투버, 피트니스 대회 수상자, 인스타 인플루언서로 활약하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인플루언서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단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리라 다짐하고 새벽 6시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작가의 조언처럼 확실히 잠에서 깨기 위해 일어나자마자 양치를 하고 물을 마셨다. 귀와 림프절을 마사지하며 몸을 깨웠다.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는 날들이 이어졌다. 어떤 행동을 한 달 동안 계속하면 습관으로 굳어진다는데, 미라클 모닝이 습관이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새벽 6시 글쓰기가 일주일 즈음 이어지던 날, 큰아이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뒤이어 남편과 둘째 아이가 확진이 되었고, 큰 아이의 일주일 격리가 끝나던 다음 날 내가 마지막으로 확진 판정을 받았다. 온 가족이 집에서 하루 종일 복닥대는 2주 동안 아침 일찍 일어나는 기적은 일어날 수가 없었다. 오로지 네 식구가 한 공간에서 공존한다는 자체가 기적이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확진되면서부터는 늦게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기적이 되었다. 머리는 무거웠고 숨은 가빴으며,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하늘이 핑 돌아서 벽을 잡아야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격리 기간이 끝난 이후에도 체력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쉬이 지쳤고 아이들 아침 식사를 차려주고 “힘들다, 힘들다” 신음 소리를 내며 침대에 쓰러지는 것으로 아침 시간은 흘렀다.      





5월, 우울의 하강나선에서 탈출하기로 결심했다.


<우울할 땐 뇌과학>(2018, 심심)은 UCLA 뇌과학 박사이자 우울증 전문가인 앨릭스 코브가 쓴 책이다. 그는 우울증은 '아주 안정적인 상태'라고 말한다. '뇌는 우울한 상태를 계속해서 유지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우울의 하강나선'이라고 일컫는다.



예를 들어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사람이 있다. 갑작스러운 야근으로 운동을 못했더니 기분이 좋지 않아 운동을 갈 수 없다. 운동도 못하고 몸이 피곤하니 더 우울해진다.


나의 경우는 어땠을까. 3월, 수영을 등록하고 가지 않았다. 4월, 새벽 시간을 활용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글쓰기는 코로나 감염 이후로 제자리걸음이다. 4월 9일이 작업실 입주일이었는데 코로나 격리로 인해 4월 말에야 드나들기 시작했다. 코로나 후유증인지 머리는 아프고 몸은 무겁다. 몸을 일으켜 작업실로 향했지만 책상에 앉으면 머리가 멍해져서 도무지 글이 써지지가 않는다. 아무 책이나 펼쳐 활자라도 붙잡으려 했지만, 글은 지우개 가루처럼 흩날리기만 했다. 나의 뇌는 우울의 하강나선에 올라타 있었다.


5월의 어느 날 밤, 나는 <우울할 땐 뇌과학>을 읽으며 지긋지긋한 하강나선에서 탈출하겠다고 다짐했다.


다음 날 아침 6시, 일어나자마자 수영장으로 향했다. 수영장을 향하는 길은 한강 둘레길 방향과도 같았는데, 조깅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수영장에는 사람들로 붐볐다. 운동으로 아침을 일찍 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하니,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7시 강습을 등록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계속 수영을 다니고 있다.


그동안 나는 기적 같은 이야기에 환호하다 빠르게 실망했다. 내 인생에도 미라클이 일어날 것이라 상상하며 누군가의 기적을 따라 했다. 그러다 넘어졌고, 그 자리에서 포기했다. <우울할 땐 뇌과학>에서는 '최선의 결정이 아니라 그럭저럭 괜찮은 결정을 내려라.'라고 조언한다. 8시 넘어 일어나는 내게 6시 수영은 지나친 목표였다. 7시 수영에 등록한 것은 그럭저럭 괜찮은 결정이었다. 새벽까진 아니어도 조금 일찍 일어나 활기찬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이니까. 아주 작은 변화만으로도 하루가 달라진다.


나의 하루는 7시 수영으로 시작한다. 다녀와서 아이들과 아침 식사를 하고 아이들은 학교로 나는 작업실로 향한다. 작업실에서 줌(ZOOM)을 이용하여 상담을 하거나, 주로는 글을 쓴다. 오후에는 아이들을 챙기고 저녁 식사 후에는 남편과 장을 보거나 산책을 한다. 나의 뇌는 상승나선에 올라탔다.


“스스로 잘 사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어요.”     


무기력증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내담자로부터 나와 같은 시기 수영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같은 시기 같은 운동을 시작한 부분이 놀랍기도 하고, 결심하자마자 수영장에 갔다는 내담자의 추진력이 궁금해졌다. “스스로 잘 사는 사람이 되자고 결심했어요.”라고 고백하는 그에게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결심하고 바로 실행할 수 있는지 물었다.


"아주 이례적인 일이에요. 주말 동안 스스로 잘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고, 수영을 등록하고 그냥 바로 갔어요. 활기찬 분위기가 좋았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좋았어요. 그리고 아침 일찍 수영을 다녀오니 아침밥을 먹게 되었고 나의 시간이 생겼죠."     


'함께 수영 강습을 받는 사람들과 다음 단계를 상상하게 되면 수영을 계속해나갈 수 있을 거'란 그의 말처럼, 나도 같은 시간 물에 몸을 맡기고 한강변을 달리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 어떤 에너지가 전해진다. 온몸에 전해진 에너지는 나를 움직이게 한다. 그렇게 시작하는 하루는 어제와는 다르다. 그런 하루가 쌓여 운동을 하고 글을 쓰는 날들이 이어진다. 나는 스스로 잘 사는 사람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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