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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달 Jul 05. 2022

마흔을 앞두고도 진로 고민

작업실 상담소 

'저도 제가 뭐가 되어야 할지 고민입니다만...'


소리 내어 말하지는 않았다.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은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상담자인 내가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나도 여전히 '앞으로는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 중인데. 마땅한 직업이 없는 반백수인 나만 이럴까? 직장에 다니는 이들도 매한가지이다. 남편은 매일 같이 마흔이 되면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한다. 현재 그의 나이, 서른아홉이다. 직장을 그만두면 무엇으로 먹고살아야 하나 고민 중이시다. 사업을 하면 괜찮을까? 셰어하우스, 취업스터디, 에어비앤비, 코로나 소독업체까지. 하는 사업마다 트렌드에 맞추어 빵빵 잭팟을 터뜨리는 친구는 매번 넥스트 비즈니스를 고민한다. 하는 것마다 오래가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퇴사를 고민하는 친구가 최근에 읽고 있다며『40세에 은퇴하다』(김선우, 2019, 21세기북스)를 소개했다. 동아일보 기자였던 저자는 40세에 직장을 그만두고 아내와 첫째 아이가 있는 미국으로 떠난다. 저자는 한국에 있는 아파트를 팔아 미국에 월세 나오는 부동산을 사고, 아내 그리고 두 딸과 함께 시골 마을 이동식 주택을 사서 자급자족의 생활을 한다. 생활비는 월세로 충당하고 평균적으로 월 100만 원을 쓴다. 오~ 소름. 얼마 전 보았던 『오히려 최첨단 가족』(박혜윤, 2021, 책소유)과 내용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두 책의 저자는 부부였다.



『오히려 최첨단 가족』의 저자 박혜윤은 그의 책에서 바라던 삶을 이뤄도 혹은 이루지 못해도 어느 순간 '나 잘 사는 건가?'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p.197)고 말한다.    


돈을 벌게 되면 굉장히 뿌듯할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내 길이 아닌 것 같다. 가정을 꾸리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때때로 불행하다고 느낀다. 승진하면 대단한 성취감을 맛볼 줄 알았는데 여전히 월급쟁이인 현실이 허무하다. 내 집 마련에 성공하면 돈에 대한 걱정에서 해방될 줄 알았는데, 세상에 부자는 많고 상대적 빈곤감에 잠이 안 온다. 값비싼 옷과 시계, 차를 사고 나면 내 인생은 풍요로울 줄 알았는데, 원인 모를 결핍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루고 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인생에 대한 회의와 의심이 똬리를 트는 건 무엇 때문일까.      




인생의 가치는 자신의 의미를 써가는 과정에 있다.  


대학시절 고시를 준비하는 제자에게 어떤 교수가 쓴 칼럼을 보고, ‘인생은 해결해야 할 문제나 숙제가 아니라, 살아야 하는 과정임을 그때 알았다’고 박혜윤은 말한다. 나는 오로지 결과와 성과에 집중하는 시대에 살았다. 대학 입시라는 빠듯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수험생들에게 교사와 부모는 ‘대학만 가면 네가 원하는 것을 모두 다 할 수 있다’며 채찍질한다. 해방의 문이라고 생각했던 대학에 입학하고 나면 또 다른 관문이 이어진다. 스펙 쌓기, 취업, 고시, 공시. 언제 끝날지 모를 과업을 해결하다 보면 꿈꾸었던 자유나 행복, 삶에 대한 만족감이 있기나 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지금 상황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난다면 조금 더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나요?”

 “시험만 통과하면 좀 행복해질 거 같아요.”


취업을 위해 자격시험을 준비한다는 대학생의 답이다. 마흔을 앞두고도 여전히 진로 고민 중인 나를 본다면, 바라던 것을 이룬 이후에도 헤매는 이들을 본다면, 시험을 통과한 자리에 행복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 우리가 찾는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작가가 인용한 교수의 칼럼에서처럼 '끊임없이 자신의 의미를 써가는 과정에 진정한 삶의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결국 삶의 의미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구해가는 과정에서 선명해지는 나를 찾는 데 있는 것이다.     




현금 말고 온전히 나의 가치


대학원을 다니니 여러 이야기를 듣는다.


"그거 공부하면 돈이 되나?"

"뭐 돈 되려고 공부한 건 아닌데. 꼭 돈이 되어야 하나?"

"당연히 돈이 되어야지. 인풋이 있으면 아웃풋이 있어야 할 거 아냐."

"어 이제 그만 끊자."


친(애하는)오빠와의 대화이다.


"그거 공부해서 무슨 일 하려는 거야? “


이런 질문은 정말 자주 마주친다. 솔직히 어떤 일을 하기 위한 포부로 공부를 시작한 것은 아니다. (남편, 미안하다. 회사 쭉 다녀야겠다.)


퇴사 직후에는 어떻게든 돈을 벌려고 안달이었다. 첫 직장이 은행이었던 것은 큰 자산이었다. 넓고 얕은 금융 지식 덕에 대박은 아니어도 소박은 칠 수 있었으니까. 압구정 자본가가 되진 못했지만, 대학원 학비 정도는 부담 없이(내고 싶지만, 낼 때마다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낼 수 있으니까. 여전히 돈은 삶을 윤택하게 하는 도구라고 믿는다. 다만, 가치판단의 최우선 기준으로 두었던 '돈'을 가장 끝으로 미루고 그 자리에 '나'를 대신 세웠다.


인생의 기회비용을 현금의 가치로 환산하던 습관에서 벗어나, 나 자신에 오롯이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대학원 공부는 ‘나 자신’과 ‘내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이해하고 싶어서 시작한 것이며, 이것은 나에게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주어진 시간, 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에너지를 쏟고 싶어 시작했다.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결심은 없었다.


공부가 너무 재미있어서  열심히 하게 되고, 심리 상담이 직업, 수입으로 확장된다면 좋겠지만, 아직 구체적이고 큰 그림은 없다. 이십 대에는 항상 빅픽처를 그렸다. 그에 이르기 위한 계획에도 plan A 와 plan B가 있었다. 그렇지만 뜻대로 굴러가지 않는 현실에서 늘 괴로웠다. 놀라운 사실은 계획대로 되지 않더라도 삶은 이어진다는 것이다. 


은행원이던 때, 미래를 위해 복리의 마법을 이용하여 열심을 돈을 모아 스노볼을 만들어야만 한다고 믿었다. 돈은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지라, 어느 정도 성과가 나면서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선뜻 그 돈을 스스로에게 쓰지 못하는 나를 발견했다. 돈의 대부분은 아이들에게로 가거나 가정의 자산 형성에 기여했는데, 아이들이 고마움을 아느냐고 묻는다면 No! 미래를 위해 돈을 모았는데, 그 미래에는 나도 없고 나의 노고에 감사하는 가족도 없다. 바란 적은 없지만 허무하다.


나는 이 순간 내 삶의 과정에 있다. 원하던 것을 이루지 못해 괴로웠던 경험에서도 꿈을 꾸고 노력하는 과정은 언제나 즐거웠다. 결과에 집중하다 보면 그 결과를 이루지 못해 괴롭고, 이루더라도 굉장하고 지속적인 행복이 내 앞에 펼쳐지진 않는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이 이어질 뿐이다. 하지만 그 과정을 돌이켜보면 노력하고 분투했던 기억들이 즐거움으로 남는다. 본인이 하고 싶어 선택한 일이라면 더 큰 만족감이 과정에 있다.


진로를 고민하는 청년을 보며 나를 다시 본다. 나는 50대가 되어도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무엇이 되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은 즐거울 것이다. 노력하고 도전하는 과정에서 내 개인의 의미는 보다 풍성하고 뚜렷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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