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달 Jul 07. 2022

서래마을 도사님

닫는 이야기

“이상해요. 결혼한 이후로 되는 일이 없어요.”     


어느 여름날, 고급빌라가 굽이굽이 이어진 서래마을 언덕길을 올랐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빌라에서는 신묘한 기운이 흘렀다. 용하다는 사주 도사님이 머무르는 곳이라고 했다. 광활한 응접실에서 내 순서를 기다리다 상담실로 들어갔다. “반포동입니다.”라고 전화를 받을 것만 같은, 아침 드라마에서나 보았던 고급 주택에 등장하는 거대한 앤틱 테이블 끝에 도사님이 앉아계셨다.      


내가 궁금한 것은 단 하나였다. 내 운이 혹시 남편에게로 다 흘러간 것은 아닌지. 언제 나의 운을 되찾을 수 있을지.      


‘못났다! 못났어!’ 지금은 이렇게 생각하지만, 그땐 진지했다. 분명 집안 어른들이 대단한 사주라고 잘 키워야 한다고 부모님께 당부했다는데. 나를 낳고 아빠의 사업이 승승장구했다는데. 여태껏 노력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졌는데. 왜! 도대체 뭐 때문에!! 결혼 이후로 되는 일이 없는 걸까.      


남편은 결혼 이후로 뛰다 못해 날아다녔다. 이직을 거듭하며 직급과 연봉이 계단처럼 올랐다. 진심으로 축하할 수 없었다. 배가 아팠다. 솔직히는 많이 부러웠다.     


“반달 씨, 달 씨는 가을 태양이에요. 가을 태양이 어때요? 거대하고 따뜻하고 모든 것을 풍요롭게 해 주지요. 사주는 음양오행의 조화를 이야기해요. 남편은 땅이에요. 땅은 어때요? 태양이 있어야 과일과 곡식과 생명을 일구어내지요. 가을 태양이 땅을 비옥하게 하는 건 당연해요.”     


‘오,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그럼 내 운은 언제 다시 시작한다는 거야?’     


“그런데 지금 반달 씨는 겨울에 와 있어요. 물이 아주 부족해요. 생명이 살아가려면 태양과 함께 물이 필요하잖아요? 음... 이벤트가 필요한데... 내가 아주 긴밀하게 지내는 스님들이 계세요. 이분들이 기도해주시면 반달 씨가 지금 겪고 있는 차가운 겨울을 따뜻하게 녹여줄 수 있지요.”     


‘엥? 이벤트라고?’     


도사님이 말한 이벤트는 굿을 하라는 것이었다. 용하다는 도사님을 뵙는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내가 가을 태양의 사주를 타고났다는 말에 훅 넘어갔다. 지금 겨울을 겪고 있다는 도사님의 말에 푹 빠져들었다. 스님의 기도로 겨울이 지나고 젖과 꿀이 흐르는 토지의 거대한 태양이 될 수 있다는 말에 ‘개뻥이구나.’ 정신을 차렸다. 도사님을 다시 찾지 않았다.           




이 글을 쓴 시작도 ‘못난 마음’에서였다. 서점이나 도서관에서는 ‘엄마의 성공기’가 넘쳤다. 일하는 엄마가 새벽 시간을 활용해 일과 육아,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이야기. 엄마표 영어로 아이를 키웠더니 아이가 영어 영재가 된 이야기. 살림에 애정을 갖고 온라인에 공유하다 인플루언서가 되고 수익 창출까지 이어진 이야기. 배가 아팠다. 나는 살림도 육아도 운동도 만년 초보에 머무는데, 성큼성큼 나아가는 그들을 보니 몹시 부러웠다. 현실에는 엄마의 성공담보다는 실패담이 더 많지 않을까? 아무도 실패담을 내어놓지 않으니 내가 먼저 내어놓자.      

못난 마음에 나를 드러낸 것이 <샤넬백 보다 작업실>의 시작이었다.     


“그래서 작업실에서 네가 이룬 게 뭐야?”

<샤넬백 보다 작업실>을 읽고 재밌게 잘 썼다는 친구에게 냉정한 피드백을 강요하니 뼈 때리는 질문을 내어놨다.


“작업실... 응? 정리했어. 하하하.”

친구가 민망해하지 않게 크게 웃었다. 사실은 내가 민망했다.


그렇게 도망친 작업실에서 엄청나게 무언가를 이루었다,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6개월 만에 방을 뺐다. 대단한 걸 이루기에는 짧은 시간. 역시 또 실패담인가. 1년간 작업실 유지비용으로 천만 원을 예상했는데, 절반만 사용했으니 500만 원을 아낀 것이라고 우겨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500만 원(정확히는 400만 원)을 쏟아 얻은 것이 있는가.   


열등감, 누군가와 비교해 스스로를 부족하게 여기고 평가절하하던 나를 발견했다. 못난 마음, 잘난 그들을 보면 어김없이 나타나던 복통이 사라졌다.      


지난 6개월 간, <샤넬백 보다 작업실>을 쓰면서 100권이 넘는 책을 읽었다. 더 잘 쓰고 싶어 글쓰기책을 읽었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썼는지 궁금해서 에세이책을 읽었다. 내 마음이 왜 이런 건지 궁금해서 심리도서를 읽었고,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 전공서적을 읽었다. 감정에 부드럽게 다가가고 몽글몽글하게 표현하고 싶어 수많은 그림책을 읽었다. ‘왜 나는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만인 거지?’ 이해할 수 없던 내가 선명해졌다. ‘지금과는 다삶을 살고 싶었던 거야.’

     

줌(ZOOM)으로 상담할 때면,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작업실을 찾았다. 내담자(상담을 받는 사람)의 비밀스러운 심리적 문제에 같이 직면했고, 그들이 길을 찾는 과정을 함께 했다. 어려운 가운데 희망을 찾는 내담자의 놀라운 생명력에 감탄했다. ‘왜 나는 계속해서 어딘가로 도망치고 달아나는 거지?’ 비겁해 보였던 내가 용감하게 보였다. ‘원하는 것을 찾아 멈추지 않고 도전했던 거야.’   

  

실패 거듭하는데도 어떻게 끊임없이 시도할 수 있는 걸까. 나란 인간, 너무 멋지다. ㅎㅎ     

     

상담사로 일하기 위해 다섯 군데에 지원하면 한 군데 정도 답이 온다. 승률 20퍼센트! 이전에는 실패 확률 80퍼센트 보였다. 에 압도되어 오래 망설이고 때로는 멈추었다. 지금은, 더 많이 일하고 싶으면 다섯 군데가 아니라 백 군데로 N 수를 늘리면 그만이다. ‘내 글이 책이 될 수 있을까.’ 글을 쓴 시간보다 머뭇거린 시간이 더 길었다. 계속 쓰면 된다. 공모전에 제출하고, 출판사에 투고하고. 계속 쓰다 보면 현생에 책 한 권 출판할 수 있겠지.


작업실에서 6개월. 나는 '무엇으로부터' 탈출하는가 보다 '무엇을 향해' 탈출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벗어나고 싶은 현실보다 닿고 싶은 소망, 그곳을 향해 눈을 돌리면 나는 씩씩하고 용감해진다. 샤넬백 보다 작업실, 정말 힙한 선택이었어!

이전 18화 결국, 자기가 결정하는 삶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