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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리스 부인 Oct 02. 2022

수진의 식당 _ 프롤로그

'제가 어디선가 한 번 쯤 있었던 곳이겠죠.'


이 글의 소재가 된 일상과 사람의 이야기에 대해 묻는다면 위의 문장처럼 대답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짧은 옴니버스 소설의 형식을 빌렸지만 한 편 마다 담긴 먼지나는 현장의 일과 사람 이야기는, 오랜만에 다시 펼쳐본 일기장의 한 장면을 수진이라는 주인공의 눈으로 읽어보는 느낌으로 적어본 글입니다.      




먼지가 날리는 건설현장 모퉁이 가건물,  '함바집(현장 식당)'이라 불리는 수진의 식당이 있다. 

아이보리색 플라스틱 패널로 지어진 그곳에는, 일상과 사람, 그날의 이야기 그리고 하루를 버티게 해 주는 음식이 있다.


수진이 네가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은 마치 오케스트라단의 지휘자를 보는 것 같아. 국자로 김치찌개의 간을 보면서, 꽈리고추를 넣은 멸치를 볶으며, 세 개의 넓은 프라이팬에서 익어가는 계란말이를 뒤집는 너의  뒷모습은 각기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단원들을 지휘하는 모습이지. 

식사 시간이 되어갈 무렵, 주방 한편에 나란히 놓인 다섯 개의 밥솥이 동시에 하얀 김을 힘차게 내뿜으면 너의 연주는 절정에 다다르지.


열기로 가득한 주방 조리대 앞의 너,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칼을 이십 대의 젊음과 함께 검은 고무줄로 단단히 묶어 하얀 목 위로 올리고, 삼십 대의 열정은 짙은 색 청바지 위에 받쳐 입은 검은색 티셔츠와 그 위에 걸친 민트색 앞치마로 가리고 있지.


먼지가 휘날리는 아파트 건설현장 한편에 있는 작은 공간, 아이보리색 플라스틱 패널과 간이 컨테이너 한 칸으로 만들어져 있는  '함바식당'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그곳에서 젊은 여사장, 수진이 너는 여사님이라 불리는 중년의 종업원 두 명과 함께, 매 끼마다 120인분의 식사를 하루 세 번 늦지 않게 만들어내고 있지.


하루만 같은 반찬이 나가도 불평이 나오는 손님들을 상대로 매 끼니마다 다른 국과 찌개, 대여섯 가지의 반찬을 내야 하는 버거운 일을 너는 잘 해내고 있어.

 

먼지 가득한 발걸음과 함께 들어오는 현장 인부들, 하지만 수진이 네 식당에는 일상의 그 땀내 나는 피곤과 절망을 달래주는 이야기 같은 음식이 있잖아 


식사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매콤한 김치찌개가 들통에 담겨 배식대로 나간다. 참, 찌개는 따뜻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휴대용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아야 해. 

스테인리스 반찬 배식대의 뚜껑이 열리고 그날그날 달라지는 김치와 밑반찬들이 하나씩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여사님들이 전기밥솥을 들고 나와 배식대 맨 앞줄에 놓고, 흰색 플라스틱 주걱을 밥솥 깊숙이 집어넣어 밥을 뒤집고 있어. 

밥솥 위로 하얀 김이 무럭무럭 올라오고 있네.


수진아, 창문 밖을 봐. 

종일 현장에서 힘들게 일한 허기진 인부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어.


자, 이제 문을 열 시간이야.


어때, 오늘도 잘 해낼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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