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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리스 부인 Oct 28. 2022

분홍 소시지 부침

옛날 추억의 도시락 속의 주인공

먼지가 날리는 건설현장 모퉁이 가건물,  '함바집(현장 식당)'이라 불리는 수진의 식당이 있다. 

아이보리색 플라스틱 패널로 지어진 그곳에는 일상과 사람, 그날의 이야기 그리고 하루를 버티게 해 주는 음식이 있다.


김상준 씨는 스스로를 전문직이라 부른다. 주변에서는 '신세대 노가다'라 부르며 비아냥 거리는 사람도 있지만 스스로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대학 졸업 후 일치감치 현장을 평생 일할 직장으로 정했다.(그전에 등록금을 벌기 위해 현장에서 일용직 아르바이트는 몇 번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현장에 오기 전부터 전공 분야를 미장(건물 공사 과정에서 벽이나 바닥에 흙이나 시멘트를 바르는 작업)으로 정하고 산업인력공단에서 주관하는 미장 기능사 자격까지 취득했다.


김상준 씨는 출근할 때 정장을 입고 출근한다. 넥타이까지 매는 옷차림은 아니지만, 적어도 구두에 캐주얼 정장 차림으로 출근하여 간이 탈의실에서 작업복으로 갈아입는다. 다른 작업자들이 낡은 군복이나 트레이닝 복을 입고 출근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김상준 씨는 작업복도 항상 깨끗하게 손질해서 입는다. 감색 작업복은 매일 깨끗하게 세탁하여 가볍게 다림질까지 되어 있고 발목의 각반과 안전화도 먼지 하나 없이 관리되어 있다.


수진이 분홍 소시지를 부친다. 

어른 팔뚝만 한 크기의 분홍 소시지는 꺼내 만 놔도 그 크기에 든든함을 느낀다. 수진이 계란물을 만든다. 거품이 난 계란물에 부침가루와 소금을 넣는다. 그 위에 대파도 얇게 썰어 넣는다. 그 사이 김여사가 소시지를 자른다. 수진이 김여사에게 조금 얇게 썰어달라고 말한다. 김여사가 수진이 만든 계란물에 소시지를 넣고 버무린다. 최여사가 큰 프라이팬 3개에 식용유를 두르고 소시지를 부친다. 분홍색 소시지가 노릇하게 익어간다. 부쳐진 소시지가 큰 접시에 차곡차곡 올려진다. 소시지를 부치고 남은 계란물로 만든 자투리 계란말이도 옆에 놓인다. 김여사가 그릇 하나에다 가득 케첩을 따르고 숟가락을 하나 꽃아 넣는다.


조반장이 이른 점심을 마치고 믹스커피 한 잔을 만들어 주방 앞 의자에 자리 잡았다. 오늘 상준 씨가 작업장에서 다른 인부와 무슨 다툼이 있었다고 한다. 

상준 씨가 벽돌을 쌓는 조적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같이 일하는 다른 인부가 쌓은 곳이 수평이 안 맞는 것을 발견하고 다시 쌓자고 한 모양이었다. 다른 인부는 어차피 쌓았으니 수평이 좀 안 맞는 곳은 시멘트를 눌러 티 안 나게 처리하자고 하면서 다툼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와중에 다른 인부가 상준에게 '같은 노가다끼리 거 되게 빡빡하게 구네'라고 하자 상준이 '그런 식으로 하니까 사람들이 노가다라고 부르는 겁니다.'라고 맞받아 치면서 싸움이 커졌다고 한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최여사가 재밌게 보는 드라마의 결말을 미리 물어보듯 말한다.

조반장이 남아있는 커피를 홀짝 마시고는 종이컵을 구겨 쓰레기통에 던지며 말한다.

'거 상준 씨 참 강단 있어, 몇 시간 동안 작업한 거 다 무너트려 버리더라니까.'


상준 씨가 식당으로 들어온다. 식사를 할 때도 상준 씨는 흐트러짐 하나 없다. 접시에 밥과 반찬을 담을 때도 반찬끼리 섞이지 않도록 조금씩 간격을 두고 담는다. 

영양을 고려하는 듯 반찬을 골고루 담는 편이다. 특히 다른 사람들이 잘 담지 않는 생채소나 과일을 신경 써서 많이 담는다.

 

김여사가 최여사의 옆구리를 찌르며 키득거린다. 김여사가 손으로 상준 씨를 가리킨다. 반찬을 평소처럼 골고루 다 담았지만, 분홍 소시지 부침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상준 씨의 접시에는 이미 분홍 소시지가 세 개 담겨 있었는데, 더 먹고 싶어서 그런지 집게로 소시지를 집었다 놨다 하고 있었다.

"상준 씨, 그거 하나 더 먹는다고 무슨 일 안 납니다."

김여사가 웃으며 소리쳤다. 

수진이 김여사에게 눈짓을 주자 김여사가 헛기침을 하면서 행주를 들고 돌아선다.

수진이 상준 씨를 바라본다. 어느새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최여사가 수진 옆으로 와서 묻는다.

"요즘 세대 젊은 사람들은 틀리죠?"

수진과 눈이 마주친 상준이 수진에게 단정하게 눈인사를 한다. 수진이 다시 주방 가스레인지 앞으로 가면서 말한다.

"네, 저희보다 더 나은 제대로 된 젊은 세대 같아요."


@ 수진의 TIP

분홍 소시지는 어육과 밀가루로 만들어져 두껍게 부치면 텁텁한 맛이 난다. 처음 계획보다 조금 얇고 바삭하게 부쳐내면 맛있게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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