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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리스 부인 Oct 02. 2022

부추전

비와 데마 그리고 부추전

먼지가 날리는 건설현장 모퉁이 가건물,  '함바집(현장 식당)'이라 불리는 수진의 식당이 있다. 

아이보리색 플라스틱 패널로 지어진 그곳에는, 일상과 사람, 그날의 이야기 그리고 하루를 버티게 해 주는 음식이 있다.


일명 '노가다', 막일이라 불리는 현장 근로자들의 수입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긴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인부도 하루에 10만 원 이상을 받아가니, 거기에 일수를 곱하면 꽤 짭짤한 벌이가 되지 않겠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 추측은 반 정도만 맞다. 

일의 강도와 현장 상황, 인부를 모집하는 팀장의 형편에 따라 다르지만 완전 초보인 보조요원 기준으로도 요즘 시세인 하루 일당 12~13만 원을 받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하루 일당 12~13만 원에 월 근무일수 20일을 곱해서 나오는 금액이 정확하게 한달 동안의 월 수입이 되지는 않는다.

현장 근로자들의 수입을 결정하는 여러가지 변수가 있다.


먼저 급여가 늘어나는 경우가 있다. 

건설 현장에서는 사람의 작업량을 측정하는 단위로 '공수'라는 말을 쓴다. 사람 한 명이 하루 8시간 동안 하는 일을 1 공수라 한다. 거기에 잔업이나 야근을 하면 시간당 1.5배의 공수를 쳐 준다. 현장에 따라 다르지만 시행사 입장에선 하루라도 공기를 단축하는 것이 더 큰 이익인 만큼, 할수 있는 한 잔업과 야근을 통해 일을 계속하고 싶어 한다. 그런 경우 근로자들이 하루에 받는 임금은 더 많아진다.


반면 줄어드는 경우도 있다.

우선 일이 없어지는 경우가 있다. 약속했던 자재가 오지 않거나 장비가 고장 나는 경우처럼 현장 상황에 따라 일을 못하는 날이 있다. 그런 날, 근로자들은 일을 하지 못하니 당연히 임금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많이 일을 못하는 경우는 날씨, 그 중에서도 비 때문인 경우가 많다. 

경우에 따라 실내 마감 공사만 한다면 모르지만 대부분의 현장은 비가 오면 작업을 중단한다. 특히 여름 장마철 기간에는 현장에 일이 없어 노는 날이 많아져 생활에 곤란을 느끼는 인부도 있다. 

이렇게 여러 가지 까닭으로 일을 못하고 공치는 경우를 현장 근로자들은 '데마'라고 부른다.


근로자 입장에서는 미리 비 때문에 작업이 취소된다는 것을 알면 오랜만에 늦잠이라도 자겠지만, 사람이 그날그날의 기상상황을 다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장 최악의 경우는 새벽에 지친 몸을 일으켜 현장에 나왔는데 그 때부터 비가 오는 날이다. 현장에 따라 한두 시간 임금을 쳐 주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날은 근로자 입장에서는 완전히 공치는 날이 된다.

< 내부 마감공사와 같이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비오는 날 현장에는 일이 없다. >

오늘이 그런 날이다. 어제 저녁까지 맑은 하늘이어서 비가 오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새벽녘에 한두 방울씩 내리던 비가 작업이 시작될 무렵에는 금세 옷을 적실만큼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현장소장이 오늘 작업은 중단된다고 공지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혹시나 해서 남아있는 사람들 십여명만 수진의 식당에 모여든다. 

다들 의자에 앉아 티브이를 보듯이 활짝 연 창문을 통해 내리는 비를 멀거니 바라본다. 비는 이제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세차게 내리고 있다. 비가 플라스틱으로 된 식당 지붕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거참, 일은 공쳤지만 비 한 번 시원하게 잘 내리네"라고 한다.


수진이 부추전을 부친다.

부침가루를 꺼내 소금과 달걀물을 넣어 반죽을 한다. 물에 헹군 부추 두 단을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청양고추와 홍고추도 같이 썰어 놓는다. 미리 준비했다면 오징어나 칵테일 새우를 넣겠지만, 재료가 없는 오늘은 대신 국물용으로 쓰는 건새우 한 줌을 활용하기로 한다.

뜨겁게 달궈진 프라이팬 3개에 식용유를 두르고 반죽을 얇게 펴 부친다. 한쪽이 다 익으면 뒤집어  다른 쪽을 부쳐준다. 

최여사가 다 부쳐진 부추전을 도마에 올려 큼직하게 썰어낸다. 김여사가 청양고추를 넣어 만든 양념장을 테이블마다 하나씩 놓는다.


사람들이 젓가락을 챙겨 모여든다. 비오는 날, 따듯한 부추전이 입에 쩍쩍 달라붙는다.

수진이 막걸리 좀 사다 먹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조반장을 흘겨본다.


구석에 앉은 하얀 머리가 지긋한 인부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비 때문에 돈은 못 벌지만 대신 이런 별미를 맛보네."





@ 수진의 TIP

부추전 반죽을 만들 때, 부침가루를 적게 하고 달걀을 많이 할수록 고소함과 바삭함이 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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