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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리스 부인 Oct 02. 2022

제육볶음

매콤하지만 입 안에서 녹는 달달한 맛

먼지가 날리는 건설현장 모퉁이 가건물,  '함바집(현장 식당)'이라 불리는 수진의 식당이 있다. 

아이보리색 플라스틱 패널로 지어진 그곳에는, 일상과 사람, 그날의 이야기 그리고 하루를 버티게 해 주는 음식이 있다.


수진의 식당에서는 일주일에 두 번씩 제육볶음을 메뉴로 내놓는다. 단백질이 풍부하면서도 재료비가 크게 들지 않은 제육볶음은 먹성 좋은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같은 이유로 다른 건설 현장의 함바 식당에서도 제육볶음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나오는 인기 메뉴이다. 현장 생활을 오래 해서 입맛에 까다로운 사람들이 식당을 결정할 때 기준으로 삼는 음식도 김치와 제육볶음이라고 한다.

< 함바식당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필요한 설비와 자격요건을 갖춰 임시 영업 허가를 받아야 한다.>

최여사가 찬물이 가득한 고무대야에 돼지 앞다리살을 넣는다. 해동을 하면서 핏물도 빼려는 것이다. 앞다리살은 워낙 단가가 저렴해 웬만하면 국내산 돼지고기를 쓴다. 이틀에 한 번 꼴로 식자재를 갖다 주는 성진식품 김 사장도 앞다리살은 국내산만 취급한다. 

그 사이 수진이 양푼에 간장을 따르고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 그리고 설탕과 고추장을 넣고 양념장을 만든다. 

수진은 재료 손질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도 음식의 맛을 내는 소스와 양념장은 항상 직접 만든다. 

고춧가루를 많이 넣는 것을 보니 오늘 요리는 매콤한 제육볶음이 될 것 같다. 고춧가루를 빼고 맛간장으로만 조린 달달한 돼지불백이 맛있다는 사람도 있지만, 역시 인기는 매콤한 제육볶음이 압도적으로 높다. 

식당에 오는 손님들은 메뉴로 제육볶음이 나오면 밥을 비벼먹곤 한다. 김여사가 거기에 곁들일 콩나물을 데치고 있다.


여기 현장에서 매 끼 식사를 하는 식수 인원은 최소 100명에서 최대 130명 정도이다. 테이블 열 개로는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을 한 번에 다 수용하기 어려워, 현장에서는 식사시간을 3개에서 4개 조로 나눠서 편성하곤 한다. 


세 번째 조가 식사를 마친 오후 한 시, 두 테이블에 대여섯 명의 근로자들이 늦은 식사를 하고 있다.


"혹시 일반인도 식사되나요?" 

문 앞에서 들리는 말에, 설거지를 하던 김여사가 앞치마로 손을 닦으며 나온다. 출입구에는 남루한 옷차림에 헝클어진 머리를 한 중년 남자가 대여섯 살 돼 보이는 남자아이의 손을 잡고 서있다. 

수진의 식당에서는 외부 손님을 받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구내식당이 없는 근처의 작은 회사나 자영업자들이 월식이라는 이름으로 한 달치 식비를 선불로 계산하고 식사를 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드문드문 찾아오는 일반 손님은 받지 않는다. 외부 손님을 받으면 매일매일 들어오는 식자재를 가늠하기가 어려워 음식이 남거나 모자라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일반인은 안 받는데."

김여사가 곤란한 듯 말한다. 남자가 아이의 어깨를 감싸며 말한다.

"이번 한 번만 어떻게 안 될까요? 근처에 제대로 된 밥을 먹일 곳이 없어서 그럽니다." 


구석에서 인기척이 났다. 의자 세 개를 붙여놓고 누워있던 조반장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난다.

"다 일반인이지, 그럼 뭐 여기 연예인 있나?" 

크게 하품을 한 조반장이 싱글거리며 수진을 향해 미소 짓는다. 수진이 못마땅한 눈빛으로 조반장을 째려본다.

현장 책임자인 조반장은 젊지만 서글서글한 성격으로 식당 여사님들에게 인기가 높다. 큰 키에 검은 비니를 쓰고 다니는 모습이 항상 눈에 띄는 사람이다. 서울의 꽤 알아주는 대학의 토목공학과를 중퇴했다는 그는 여사님들이 무거운 식자재를 나르기라도 하면 어떻게 알았는지 부리나케 달려와 도와주곤 한다.


쭈뼛거리던 김여사가 수진의 눈치를 본다.

"사장님 오늘 한 번만 드시라고 해도 되나요?" 

수진이 배식대의 남은 음식의 양을 가늠해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남자가 배식대 가까운 곳에 아이를 앉힌다.

남자가 플라스틱 접시에 음식을 가득 담아온다.

 '아빠, 나 고기'

아이가 아빠를 쳐다보면 말한다. 남자가 접시 가득 제육볶음을 담아 온다. 

고기를 먹은 아이가 매운 듯 손으로 입을 부채질한다. 남자가 제육볶음을 콩나물국에 헹궈 아이에게 먹인다. 


수진이 주방으로 들어간다. 냉장고에 양념하지 않고 남은 고기를 꺼내 맛간장과 설탕만 넣고 고기를 버무려 빠르게 볶아낸다.

김여사가 달콤한 간장소스에 볶아진 수진의 돼지 불백과 계란 프라이 두 개를 아이 앞에 놓아준다. 

아이가 볼이 미어터지게 고기를 먹는다. 


"얼마를 드리면 되는지"

남자가 주머니에서 두 번 접힌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낸다.

"전에 외부 손님은 한 끼에 육천 원씩 받기는 했는데"

김여사가 설거지하던 손을 앞치마에 닦으며 말한다. 남자의 얼굴에 당혹한 표정이 나타난다. 


"뷔페에서는 초등학생은 반값 아닌가?"

아직도 가지않고 카운터에 기대 믹스커피를 마시던 조반장이 장난기 있는 말투로 말한다. 수진이 다시 매서운 눈빛으로 조반장을 째려본다. 


아이가 조반장에게 묻는다.

"아저씨, 여기가 뷔페예요?"

조반장이 싱글거리며 대답한다.

"그럼, 여기 뷔페지, 한식 뷔페라고 한단다."


수진이 남자한테 만원짜리 한 장을 받아 계산대에 넣고 천 원짜리 네 장을 꺼내 돌려준다.

"우리 뷔페에서 초등학생은 무료예요."

 

문밖에서 남자가 수진을 돌아보며 인사를 한다. 아이의 손에는 김여사가 챙겨준 요구르트 두 개가 쥐어져 있다. 

모퉁이를 돌아 사라질때까지 그 둘의 뒷모습을 보던 수진이 앞치마를 다시 매고 주방으로 들어간다.



@ 수진의 TIP

제육볶음을 할때, 양파의 양과 설탕은 반비례한다. 볶은 양파에서 단맛이 나오므로 양파를 많이 넣으면 설탕의 양을 줄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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