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리스 부인 Oct 28. 2022

콩나물 무침

어디에나 잘 어울리는 아삭한 식감

먼지가 날리는 건설현장 모퉁이 가건물,  '함바집(현장 식당)'이라 불리는 수진의 식당이 있다. 

아이보리색 플라스틱 패널로 지어진 그곳에는 일상과 사람, 그날의 이야기 그리고 하루를 버티게 해 주는 음식이 있다.


수진이 콩나물을 삶는다.

업소용 콩나물 다섯 봉지를 뜯어 흐르는 물에 담근다. 김여사가 물에 씻은 콩나물을 체로 걸러 큰 들통에 넣는다. 콩나물이 들통이 넘칠 듯 가득하다. 물은 바가지로 두 번만 떠서 붓는다. 콩나물을 데칠 때, 들어가는 물의 양에 따라 콩나물의 아삭함이 결정되기 때문에 물의 양을 맞추는 것도 나름 몸에 밴 감각적 느낌이 필요하다. 최여사가 들통에 천일염 반 줌을 넣고 뚜껑을 닫는다. 콩나물은 3분 내외로 삶는 게 좋지만 수진은 2분이 넘어가면 불을 끄고 뜸을 들인다. 최여사가 데친 콩나물을 찬물에 헹궈 체로 걸러낸다.

그사이 수진이 양념을 만든다. 그릇에 미리 따라놓은 참기름에 썰어놓은 대파와 다진 마늘, 소금을 넣고 버무린다. 양념의 양에 따라 반찬으로 먹을 수 있는 짭짤한 콩나물 무침이 될 수도 있고, 조금 싱거운 콩나물 무침이 될 수도 있다. 

오늘은 조금 싱거운 콩나물 무침이다. 메인 반찬으로 오징어 볶음이 있기 때문이다. 매콤한 음식을 좋아하는 현장 인부들은 오징어 볶음에 콩나물을 양껏 넣고 밥을 비벼 먹을 것이다. 

수진은 평소의 양념보다 소금을 적게 하고, 고춧가루도 넣지 않는다. 대신 참기름과 통깨를 조금 더 추가한다.

하얀 콩나물 위에 초록색 대파가 드문 드문 보인다. 수진이 콩나물이 담긴 배식 통 뚜껑을 닫고 냉장고에 집어넣는다.


오늘은 현장에 새로 들어온 근로자들이 여럿 보인다. 아무리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더라도 일주일 지나면 대략 안면은 저절로 익혀지기 때문에 새로 온 사람은 바로 티가 난다. 아마 오늘은 시스템 동바리팀이 새로 들어온 것 같다.


현장에서 조반장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안전담당인 조반장은 새로운 팀이 들어오면 현장 안전에 대한 주의를 깐깐히 주는 편이라 새로 들어온 근로자와 큰소리가 한 번 정도는 꼭 일어난다.(본인 말로도 잔소리하는 것이 자기 직업이라고 한다. 현장에서 조반장의 잔소리를 듣지 않은 사람은 현장 식당의 수진과 두 여사님들 뿐이다.)

<'시스템 동바리'란 건설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과 같은 작업 전에 굵은 파이프를 엮어 지지대를 설치, 해체하는 일이다.>


새로 들어온 시스템 동바리 팀의 팀원은 8명인데 그중 꽤 연륜 있어 보이는 팀원과 조반장이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새로 온 팀원은 안전모, 안전화, 발목에 찬 각반들을 하나씩 들어 보이며 규정에 맞게 안전장비를 갖췄는데 뭐가 잘못되었냐고 항의하였다. 조반장은 동바리 팀이 작업 중인 비계(작업을 위해 공중에 설치한 발판) 위의 작업자가 안전고리(높은 곳에서 작업하는 사람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를 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대방은 비계의 높이가 2미터도 되지 않은데 너무 깐깐한 것 아니냐고 대꾸했다. 

말다툼은 동바리팀의 팀장이 끼어들며 끝이 났다. 팀장은 높이가 좀 낮더라도 안전고리를 했어야 했다며 조반장의 말이 맞다며 사과했다. 


조반장과 동바리팀이 같이 식당으로 들어왔다. 메뉴를 본 인부들이 비벼 먹을 거니 큰 그릇을 달라고 한다. 밥 위에 매콤한 오징어 볶음을 양껏 넣고 그 위에 하얀색 콩나물 무침을 올려놓는다.

"어, 콩나물 무침이 아주 시원하네요?" 

동바리 팀장이 감탄하듯 말하자 조반장이 대답한다.

"매운 양념이 있는 음식과 어울려야 하니, 콩나물을 무쳐 미리 냉장고에 숙성시켜 놓은 겁니다. 여기 사장님의 준비성이 보통이 아니죠."

팀장이 큰 대접에 밥과 콩나물을 쓱쓱 비비며 말한다.

"매운 음식에 콩나물이 잘 어울리지만, 시원하게 나오니 더 별미일 것 같습니다."

조반장이 별도 접시에 콩나물 무침을 가득 담아 테이블 중앙에 놓으며 큰 소리로 말한다.

"다, 사전에 준비를 철저히 한 식당 사장님 덕분 아니겠습니까."

수진이 얄미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조반장을 째려본다.

동바리 팀장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우리가 오늘 좀 찔리는 게 있지만... 하여간 맛있게 먹겠습니다."



@  수진의 TIP

매운 음식에 들어가는 콩나물 무침은 냉장고에 넣어 숙성시켜 내놓으면 매운 맛을 달래면서 비빔밥의 맛을 한 층 더 끌어올릴 것이다.

이전 05화 분홍 소시지 부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