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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리스 부인 Oct 02. 2022

계란말이

어린 시절 엄마의 밥상이 생각나는 맛

먼지가 날리는 건설현장 모퉁이 가건물,  '함바집(현장 식당)'이라 불리는 수진의 식당이 있다. 

아이보리색 플라스틱 패널로 지어진 그곳에는, 일상과 사람, 그날의 이야기 그리고 하루를 버티게 해 주는 음식이 있다.


함바식당의 음식 중 어느 누구나 좋아하고 다른 반찬과 잘 어울리는 음식이 계란말이다. 계란말이는 자체로도 맛있지만, 다른 반찬의 맛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특히 매콤한 김치찌개나 오징어 볶음과 함께 먹으면 그 반찬의 맛이 더 배가되곤 한다.

계란말이는 따끈한 계란 속에 햄과 양파, 당근이 잘게 다져 들어가 있다. 방금 말아 접시에 놓인 계란말이를 입에 넣고 베어 물면 뜨거운 김이 나와 '후후' 불어가며 먹어야 한다. 

하지만 수진의 식당에서 계란말이는 밥이나 찌개처럼 따뜻하게 먹는 메인 메뉴라기보다는, 미리 만들어놨다 내놓는 밑반찬 같은 음식이다. (수진도 따뜻하게 막 말아 나온 계란말이가 맛있는 것은 알지만, 시간상 모든 메뉴를 즉석으로 제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계란은 보관기간이 꽤 길고 전이나 튀김 같은 다른 음식에도 항상 사용되는 재료여서 식당 냉장고에 계란이 떨어질 날은 없지만, 그래도 계란말이를 만드는 날은 성진식품 차에서 새 계란을 다섯 판 이상 내리곤 한다. 


커다란 양푼에 계란을 까 넣는다. 이건 최여사가 전문이다. 양손으로 계란을 하나씩 들고 까 넣으면서도 조그만 껍질 하나 들어가는 법이 없다. 

다 깐 계란은 잘 섞이도록 조리개로 젓는다. 김여사가 냉장고에서 꺼낸 양파와 햄, 당근 그리고 대파를 잘게 썰어 다진다. 수진이 계란물에 새우젓으로 간을 하고 냉장고에서 꺼낸 우유를 조금 넣는다. (우유를 넣으면 계란말이가 푸짐하게 부풀어 오른다.)

계란말이를 하기 위해 큰 프라이팬 3개가 동원된다. 수진이 계란물을 넓게 펼쳐 익혀낸다. 계란을 말아 프라이팬에 빈 공간이 생기면 다시 계란물을 붓는다. 계란말이가 점점 더 두툼해지며 익어간다. 최여사가 노릇하게 잘 익은 계란말이를 도마 위에 올리고 듬성듬성 썰어낸다.  


매일 오는 편의점 학생이 보이지 않는다. 

딱히 적당한 호칭이 없어 학생이라 부르지만 실은 대학을 졸업한지도 이 년이 넘었다고 한다. 지금은 편의점에 근무하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른바 공시족이다. 학생 때부터 시작한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벌써 3년째에 접어든다. 인심이 후한 편의점 점장은 수진의 식당에 월 15만 원을 주고 학생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보통 다른 편의점 직원들은 유통기한이 임박한 폐기 대상인 김밥이나 샌드위치로 식사를 때운다고 한다.)

학생이 가장 좋아하는 반찬이 계란말이였다. 학생이 오면 김여사가 유독 반가워한다. 김치찌개가 나오는 날이면 돼지고기가 하나라도 더 담아 주고 싶은 마음에 직접 찌개를 떠 줄 정도다. 최여사 말로는 아마 군대에 가 있는 비슷한 또래의 아들이 생각나서 그런 것 같다고 한다.

학생은 자기는 아직도 초등학생 입맛을 못 벗어나 그런지 햄이나 소시지, 계란말이가 제일 맛있다고 김여사에게 말한 적이 있다. 그런 반찬이 나오는 날이면 김여사는 김 군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곤 한다.


(하루도 빼먹지 않았었는데...) 오늘 학생이 오지 않았다.

김여사는 문을 닫을 때까지 학생이 식당에 오지 않자, 혹시나 해서 따로 빼놓은 계란말이를 냉장고에 집어넣었다.


이 주가 지나도록 학생이 보이지 않았다. 최여사가 출근하다 편의점 점장을 만났는데 학생이 아르바이트를 그만둬서 다른 사람을 구했다고 했다. 학생이 이번에 본 공무원 시험에 또 떨어져 충격이 큰 것 같다고 했다.


며칠 뒤 점심 타임이 끝난 시간, 학생이 박카스 한 박스를 들고 식당에 들어왔다. 계면쩍게 웃는 학생은 내일 고향으로 내려가게 되었다며 그동안 고마웠다는 인사를 했다. 

김여사가 마지막으로 밥을 먹고 가라며 사양하는 학생을 붙잡아 테이블에 앉혔다. 수진이 점심에 냈던 김치찌개를 데우고 나물반찬 몇 개를 식판에 차려낸다.

김여사가 계란 세 개로 계란말이를 한다. 양파와 당근은 넣지 않고 햄을 듬뿍 썰어 넣는다. 


학생이 계란말이를 한입 베어 문다. 입 안의 계란말이에서 하얀 김이 올라온다. 

"이번이 세 번째 떨어진 거였어요. 정말로 이번에는 붙을 줄 알았거든요." 

학생이 처량한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어머니 건강도 안 좋아지시고 해서 집으로 내려가려고요."

김여사가 계란말이가 담긴 접시를 앞으로 밀어놓는다.

"맛있지? 그동안 미리 만들어 놔서 식은 것만 먹였는데, 원래 계란말이는 막 말아서 따뜻할 때 먹는 음식이야."

김여사가 학생의 어깨를 두드리자 학생이 엷은 웃음을 짓는다. 


학생이 나가고, 김여사가 테이블을 치운다.

 "집에 가서 엄마 옆에서 다시 공부해 보겠다고 하네요. 이번에는 지방직 공무원 준비해서, 합격해도 고향에 있을 거라고"

김여사가 테이블을 닦던 행주로 코끝을 훔친다.

"내년에 붙으면 한 번 찾아오겠다고 하네요. 그때까지 내가 여기 있을지도 모르는데."


전표를 계산하던 수진이 고개를 들고 대답한다.

"올 거예요. 방금 말은 김 여사님 계란말이를 먹으러라도 꼭 올 거예요."



@ 수진의 TIP

계란말이를 만들 때, 냉장고에 남아 있는 우유가 있다면 계란물에 조금 넣어보자. 계란말이가 더 풍성하게 부풀어 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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