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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리스 부인 Oct 02. 2022

두부조림

곰방 일을 하는 정 씨와 구 씨

먼지가 날리는 건설현장 모퉁이 가건물,  '함바집(현장 식당)'이라 불리는 수진의 식당이 있다. 

아이보리색 플라스틱 패널로 지어진 그곳에는, 일상과 사람, 그날의 이야기 그리고 하루를 버티게 해 주는 음식이 있다.


정 씨와 구 씨는 '곰방'이다. 

건설 현장에서 '곰방'이란 모래나 시멘트, 벽돌 같은 자재를 등에 지고 필요한 곳까지 나르는 일이나 사람을 말한다. 겉보기에는 쉬워 보여 초보자들도 많이 지원하는 분야이나, 지원자 대부분이 하루 이틀 만에 그만두는 어려운 직종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일이 안 풀릴 때 '에이 공사판에 가서 벽돌이나 나르지.' 하며 아무나 할 수 있는 직업처럼 말하곤 하지만, 이 일을 오래 한 사람들은 곰방 일이 기술과 요령 없이는 할 수 없는, 이른바 전문직이라고 말한다. 


정 씨와 구 씨는  '곰방' 분야의 전문가다.


정 씨의 말에 의하면 곰방은 무엇보다 같은 팀 간에 호흡이 잘 맞아야 한다. 

단순히 벽돌이나 모래 같은 자재를 (요즘 큰 현장에서는 대부분의 자재를 크레인으로 옮기고 있지만 아직도 크레인이 들어가지 못하는 현장 구석구석까지 나르는 일은 곰방이 맡아하고 있다.) 현장까지 나르는 일은, 얼핏 보면 각자 하는 일처럼 보이지만 현장의 어떤 일보다 같이 하는 파트너와의 협력이 필요한 분야이다. 

< 벽돌과 시멘트 외에도 타일과 석재 등 곰방으로 나르는 자재는 여러가지가 있다. >

현장 소장의 말에 따르면 정 씨와 구 씨는 일할 때 서로 말을 안 한다고 한다. 어떤 자재를 어느 순서로 어디에 가야 하는지 서로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 둘이서 맡게 되는 구역의 곰방 일은 다른 구역에 비해 배나 빠르게 일이 마무리 된다고 한다. 


하지만 정 씨와 구 씨는 일하는 것만 빼고는 어느 하나 의견이 일치하는 법이 없는 사이다. 둘의 관계를 보면 식당에 들어와 접시를 드는 순간부터 시작해서 마무리로 믹스커피를 타서 식당을 나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 상대방을 향해 못마땅한 소리를 내뱉곤 한다. 그런 둘을 보고 조반장은 '톰과 제리' 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키가 큰 정 씨는 술을 좋아하고 음식도 매콤한 것을 좋아한다. 김치찌개나 콩나물 김칫국같이 해장이 되는 국물을 아주 좋아한다. 

반면 좀 작지만 몸이 다부진 구 씨는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는다. 그는 계란말이나 호박전 같은 담백한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다. 

둘의 식성이 완전히 갈리지만, 그래도 둘이 다 좋아하는 음식이 하나 있다. 

바로 두부조림이다.


수진은 두부조림을 좀 매콤하게 조리하는 편이다. 

먼저 그날 아침에 납품받은 판 두부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놓는다. 손질된 두부는 물기를 빼기 위해 키친타월을 깔아놓은 쟁반 위에 삼십 분 정도 놓아둔다. 수분이 빠진 두부는 좀 더 바삭하게 부쳐질 것이다. 식당에 따라 부치기 전에 소금으로 밑간을 하기도 하지만 수진은 별도로 밑간을 하지는 않는다. 

김여사가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 두부를 넣고 노릇노릇하게 부쳐낸다. 두부를 너무 얇게 썰면 바싹 구워지고 너무 두껍게 썰면 두부에 힘이 없어 흐물거리기 때문에, 알맞은 크기로 준비해야 한다. 

두 번 정도 뒤집으며 부치다 보면 어느덧 두부가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져있다. 

그사이 수진이 양념장을 만든다. 간장에 고춧가루와 설탕, 참기름과 다진 마늘을 넣고 빠르게 휘젓는다. 그 위에 미리 썰어놓은 청양고추와 대파, 홍고추를 넣고 마지막으로 통깨를 한 줌 뿌려 완성한다.

프라이팬 세 개에 나눠 굽던 두부를 한 프라이팬으로 모으고 그 위에 양념장을 바른다. 고춧가루를 넣지 않으면 달콤한 맛의 두부조림이 되겠지만, 수진은 좀 매콤한 맛의 두부조림을 더 많이 만들곤 한다. (현장 사람들은 몸이 힘들고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지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정 씨와 구 씨 두 사람 다 두부조림을 좋아하지만 먹는 방식은 각각 다르다.

매콤한 음식을 좋아하는 정 씨는 양념이 많이 올라간 두부를 골라 흰 밥 위에 올려놓는다. 정 씨가 양념이 많이 올라간 두부를 숟가락으로 잘게 부숴 밥과 같이 비벼 두부 비빔밥을 만든다. 가끔은 거기에 그날 나온 나물반찬이나 무 생채를 같이 넣어 비비기도 한다. 

반면 구 씨는 가급적 양념이 적게 들어간 두부를 골라 식판 위에 가지런히 놓는다. 숟가락으로 양념장을 거둬내고 두부 본연의 맛을 음미한다. 


현장에서 구 씨가 다쳤다.

건물 삼 층에서 내려오다 넘어지며 발을 접질렸는데, 병원에서는 인대가 많이 늘어났으니 최소 일주일간은 쉬어야 한다고 했다. 

혼자 다니는 정 씨의 어깨가 많이 처져 보인다. 새로 같이 일하게 된 사람과 손발이 맞지 않는다며 불평하는 소리도 들린다.


일주일이 지나, 구 씨가 왔다. 일은 내일부터 하기로 했지만 근처에 있는 병원에 다녀오다 들렀다고 했다.

안전모를 든 정 씨가 식당에 들어오다 테이블에 앉아 있는 구 씨의 모습을 보고 반색을 한다. 환한 표정과는 다르게, 평소 내 말을 안 들어 다친 한심한 놈이라며 잔소리부터 늘어놓는다. 구 씨도 지지 않고 오랜만에 봤는데 저 놈은 변한게 하나도 없다고 맞받아쳤다.


둘이 식판에 음식을 담아 자리에 앉는다. 정 씨가 식판 위에 양념이 거의 없는 노릇한 두부를 담아 왔다.

구 씨가 정 씨의 식판을 보며 묻는다.

 "뭐야? 오늘은 두부 안 비벼 먹어?"


정 씨가 바싹 구워진 두부 하나를 집어 구 씨의 숟가락 위에 올려놓는다.

"그간 일도 못 나오고 갖혀 있던거 아니냐, 이제 출소한 기념으로 두부 주는 거니 많이 먹거라."  

구 씨가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두부 한 점을 젓가락으로 들어 올리며 말한다.

"네 녀석이 이제야 어른을 공경할 줄 아는구나."




@ 수진의 TIP

두부를 굽기 전, 키친 타월 위에 30분 정도 두부를 올려두면 물기가 빠져 단단하고 식감있는 두부구이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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