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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리스 부인 Oct 02. 2022

라면과 공깃밥

급하게 허기를 메워주고 싶을 때

먼지가 날리는 건설현장 모퉁이 가건물,  '함바집(현장 식당)'이라 불리는 수진의 식당이 있다. 

아이보리색 플라스틱 패널로 지어진 그곳에는, 일상과 사람, 그날의 이야기 그리고 하루를 버티게 해 주는 음식이 있다


현장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 중에 '조공'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조공' 이란 전문 기술자 옆에 붙어 보조 역할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주로 기술자 옆에서 자재를 나르거나 필요한 공구를 갖다 주는 역할을 한다.

파트에 따라 각기 다양한 이름이 붙는다. 철근 조공, 시스템 조공, 배관 조공처럼 큰 분야의 조공도 있고 덕트 조공과 같이 작은 분야의 조공도 있다. 

일단 처음 현장에 나온 사람들은 다 '조공'이라 봐도 무방하다.

가끔 대학생처럼 보이는 청년들이 무작정 현장에 찾아와 일을 시켜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무리 일용직이라 해도 그날 바로 와서 일을 할 수는 없다.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려면 일단 국민안전보건 교육원에서 주관하는 건설업 기초안전보건교육 네 시간을 받아야 한다. 그 이수증이 없으면 일을 할 수가 없다. 또 현장마다 일손이 필요한 분야와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력 소개소나 개별적으로 인력을 공급하는 팀장들을 통해서 일을 하곤 한다.


'조공'에 반대되는 말로 전문 기술을 가진 '기공' 이 있다. 

기술을 가졌다는 의미의 '기공'은 당연히 조공보다 높은 임금과 대우를 받는다. 지역에 따라 그 중간급 인력인 '중공'이라 불리는 인력도 있지만 그리 많지는 않다.


일용직을 많이 쓰는 특성상 기공과 조공의 관계는 사무적이 될 수밖에 없다. 하루 종일 같이 붙어 있더라도 내일 그 사람을 다시 볼 일이 없다고 하면 둘의 관계는 데면데면할 수밖에 없다. 

간혹 젊은 일용직 근로자가 기술을 배우기 위해 기공을 따라다니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기공의 입장에서도 매번 새로운 사람에게 다시 가르쳐야 하는 부담(처음 오는 사람에게는 공구 이름부터 다 가르쳐야 한다.)이 없으므로, 데리고 다니며 기술을 조금씩 가르쳐 주기도 한다.


기공과 조공이 여러 날 같이 있게 되는 경우 눈치 빠른 조공을 만난 기공은 한결 수월하게 작업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장 감각이 무딘 눈치 없는 조공을 만나는 경우, 기공에게 큰 소리로 잔소리나 질책을 받는 경우도 있다. 


"아니, 같이 일한 지가 벌써 며칠 째인데 아직 공구 이름도 모르나?"

목수 기공 김 씨가 안전모를 벗으며 잔소리를 한다. 그 앞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쓴 청년이 죄지은 듯 서있다. 

김 씨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테이블에 앉아 냉장고에서 꺼낸 차가운 보리차 한 잔을 한 입에 들이켠다.

며칠 째 데리고 다니던 청년이 아직 공구 이름을 다 외우지 못해, 김 씨가 공구를 달라고 할 때마다 엉뚱한 공구를 건네주는 바람에 일이 진척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에 서 있는 청년의 이마에 땀방울이 가득하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뚜렷한 직업이 없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이번에 목수일을 배워보겠다고 김 씨를 따라다니는 청년이다.


"점심시간에도 남아서 외운다고 했는데, 아직 다 못 외워서" 

청년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주머니에서 꺼낸 종이에는 공구 이름과 모양, 쓰임새가 빼곡히 적혀있다. 김 씨가 빼앗듯이 종이를 낚아챈다.

"아니 자꾸 만지고 익숙해질 생각을 해야지, 학교에서 시험 보듯 외우기만 하면 어떡혀!"

짜증을 내며 주머니에서 담배를 찾던 김 씨가 뭔가 생각난 듯 말한다.

"뭐여, 그럼 아직 점심도 안 먹은겨?"

못마땅한 표정의 김 씨가 주방에 대고 소리친다.

"여사님, 여기 라면 하나 빨리 끓여주소."


수진의 식당에서 라면은 정식 메뉴가 아니지만, 가끔 식사시간을 놓치거나 힘든 일을 마친 인부들이 요청하면 라면을 끓여 주기도 한다. 

가격은 식사 가격의 절반인 삼천 원을 받거나 식권 반 장으로 처리하곤 한다.

물을 올리고 찬물에 바로 분말수프를 넣는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면을 넣고 이분 가량 센 불에 끓인다. 꼬들꼬들한 면을 건져 그릇에 담고 국물만 남은 냄비에 계란 물을 푼다. 계란이 익으면 썰어놓은 대파를 넣고 불을 끈다. 그릇에 담긴 면 위로 계란이 풀어진 국물을 붓는다.


수진이 쟁반 위에 라면을 올린다. 옆에 공깃밥 반 그릇과 익은 김치도 곁들인다. 


'후루룩, 후루룩' 


"가 있을 테니, 천천히 먹고 오소. 일 제대로 배우려면 밥부터 많이 먹어야지." 

배가 많이 고팠는지 청년이 다 먹은 라면 국물에 밥을 만다. 김 씨가 카운터에 돈을 올려놓는다. 


김 씨가 카운터의 수진을 보고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한다. 

"그래도 요즘 젊은것 같지 않게 배우려고 하는 자세 하나는 기특하네."



@ 수진의 TIP

라면은 조금 덜 익었다고 생각될 때 면만 건져 그릇에 담는다. 남은 국물에 계란물을 풀고 잘게 썬 대파를 넣는다. 계란이 다 익었다고 생각하면 면 위에 국물을 부어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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